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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한국의 명장

한국적 돌조각의 비밀은 신비한 화강암의 힘

석장 이재순

  • 글·한경심 │한국문화평론가 사진·박해윤 기자

한국적 돌조각의 비밀은 신비한 화강암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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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공장에서 쫓겨나 석굴암으로

이처럼 그에게 찾아온 인연은 훌륭한 석수가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인연이란 자신이 갖고 있는 의지가 인(因)이 되고 주변 조건이 연(緣)이 된다. 바깥 조건은 이렇게 완벽한데 그의 의지는 어땠을까?

“사실 처음에는 돌에 별다른 애착이 없었지요. 낮에는 돌 공장에서 일했지만 밤에는 야학에 다니며 진학할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김진영 선생님 밑으로 들어오자마자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솜씨 좋고 치석도 할 줄 알았던 어린 그가 선배들보다 일을 잘하니 밉보였던 것 같다. 사소한 실수가 빌미가 되어 쫓겨난 뒤 딱히 갈 곳이 없던 그는 그저 구경이나 해볼까 싶어 석굴암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돌의 매력에 사로잡히고 만다.

“돌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돌이 가진 비밀을 풀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서 돌에 전념하자는 결심을 하게 됐지요.”



이렇게 큰 발심까지 했으니 곧장 공장으로 돌아간 그가 어떤 마음으로 돌을 다듬었을지, 그리고 어떻게 곧 김진영 선생의 눈에 띄고 어린 나이에 공장장으로 오르게 됐을지 짐작이 간다.

“석굴암에서 언젠가는 나도 이런 석불을 꼭 만들어봤으면 하고 바랐는데, 훗날 대만에서 석굴암과 비슷한 부처님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아 그 소원도 이루어졌습니다.”

앉아서 입적한 대만의 유명한 자항대사를 기리는 자항기념관에 안치할 아미타불상을 조성하기 위해 신도들이 세계의 석불을 다 보고나서 “역시 석굴암이 최고”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에게 청탁을 해와 석굴암 본존불의 1.7배가 넘는 거대한 불상을 만들게 됐다. 1995년 배로 옮겨 안치하는 날, 서방정토를 대표하는 아미타불이 서쪽을 향해 앉자 마침 구름이 걷히고 석양빛이 불상을 비춰 대만 신도들이 탄복을 했다. 석굴암 부처님의 영험이었는지, 아니면 그가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의 인생은 신기한 대목이 참 많다. 오죽하면 그 자신도 놀랄 때가 많다고 할까.

세계기능올림픽

그가 정말 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있다. 1977년 네덜란드 유트레히트에서 열린 세계기능올림픽 대회에 참가했는데, 본래 석공 분야는 국제대회 참가 자격조차 주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저는 국제대회가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부산에서 열린 전국기능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고 참가자들과 함께 올라오면서 모임을 만들었는데, 제가 스물두 살로 나이가 많은 편이어서 회장이 됐어요. 그 모임에서 국제대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시는 기계 분야의 기술력을 키우는 데 주력하던 때라 석공 분야는 세계대회에 내보내지 않았다. 그는 국제기능올림픽 한국위원회에 찾아가 석공도 보내달라고 했지만 예산이 안 된다는 소리를 들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낙선 전 국세청장이 새로 회장으로 오면서 “이번에는 세계대회에서 종합우승을 해보자”며 참가 부문을 늘리게 됐다. 이낙선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5·16을 함께한 사람으로 당시 가라앉은 국내 분위기를 살려보려고 이런 구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재순은 자신이 조르고 부단히 노력한 덕택에 이런 행운을 만난 것이라 믿는다. “달걀로 바위 치기 같아 보이는 일도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바위가 깨질 때가 있다”며 웃었다.

이렇게 기적 같은 행운을 만나 참가한 세계대회에서 그가 받은 과제는 기하학적인 도형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런데 재료로 나온 돌이 화강암과는 반대로 아주 무른 석회석이었다.

“도쿄에서 열린 그전 대회에 대리석이 나왔다는 말을 듣고 대리석은 만져봤지만 석회석이 나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지요. 연장부터 맞지 않으니 당황할 수밖에요.”

하루 여덟 시간씩 사흘에 걸쳐 완성해야 하는데, 첫날 그는 자신의 연장을 석회석에 맞게 가늘고 뾰족하게 다듬는 데 하루를 다 썼다.

“첫날 작업은 하나도 못하고 저녁에 숙소로 돌아오자 인솔자들이 저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금메달 가능성이 있는 친구들만 챙겨주더군요. 서러웠느냐고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섭섭하기도 했지만 당시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차분하게 작업을 구상하고 정리하는 편이 더 좋았습니다.”

한국적 돌조각의 비밀은 신비한 화강암의 힘

스물두 살, 세계기능올림픽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종합우승한 기념으로 청와대에서 훈장을 받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공고에 직접 와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기능에 관심이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당시 모습이 앳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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