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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한국의 명장

한국적 돌조각의 비밀은 신비한 화강암의 힘

석장 이재순

  • 글·한경심 │한국문화평론가 사진·박해윤 기자

한국적 돌조각의 비밀은 신비한 화강암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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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돌조각의 비밀은 신비한 화강암의 힘

돌 조각은 자연스럽게 그를 불교로 이끌어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에서 불교미술을 공부했다.

다행히 나머지 이틀 동안 작업을 마칠 수 있었고 결과도 좋아 은메달을 받게 됐다. 그런데 심사위원들이 돌아가며 서명할 때 한국 측에서 이의를 제기했다.

“금메달은 유럽 참가자가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작품에 흠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그 대회에서 심사 결과가 바뀐 것은 이때가 유일할 정도로 드문 일인데, 제가 운이 좋았지요.”

그 작품은 유트레히트 박물관에서 달라고 해서 흔쾌히 기증했다고 한다. 종합우승한 참가자들은 귀국 후 청와대에 들어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직접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는데, 그 자리에는 당시 퍼스트레이디 노릇을 하던 박근혜도 있었다. 37년이 지난 올해 숭례문 낙성식에서 그는 대통령이 된 박근혜를 봤고 얼마 뒤 청와대에 초대받아 가서 이번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기념촬영을 했다.

우리 문화재의 7할이 돌로 된 것이다보니, 그는 문화재를 복원하거나 수리, 재현하는 일을 많이 하게 됐다. 월정사 경내 탑 앞에 앉아 있는 유명한 보살좌상과 원주 거돈사 터의 아름다운 원공국사의 사리탑 등 보물을 재현한 것도 그다. 지금은 고달사 터에서 나온 멋진 구양순체의 원종대사비를 재현하고 있다. 2005년 일본에서 돌아온 북관대첩비의 지붕돌과 기단도 그가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재미난 사연이 있다.

북한 국보가 된 북관대첩비



“임진왜란 때 함경도 의병장 정문부의 전승을 기념한 비(碑)인데, 러일전쟁 때 일본군이 가져가 야스쿠니 신사 뒤쪽에 처박아두었답니다. 기단과 지붕돌은 없이 몸돌(탑신) 위에 커다란 자연석을 얹어놓고요. 유홍준 당시 문화재청장이 이를 돌려받을 생각을 하고 제게 지붕돌과 기단을 준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내어줄지 어쩔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선뜻 응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만약 돌아오지 못하면 예산이 집행되기 어려워 그 부담을 그가 다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런 일이 저에게 온 것은 영광이고, 비가 돌아올지 못 올지는 하늘에 달린 거니 모든 걸 하늘에 맡기고 해보겠다고 했지요.”

사실 일본은 비를 내줄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본래 북한 것이니 북한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한국에 이를 허락할 리가 없다고 본 것이다. 이에 유 청장은 북한에 “서울에 몇 달 둔 다음 북한에 돌려주겠다”고 약속했고, 이 제안을 받아들인 북한이 일본에 요구하자 일본이 어쩔 수 없이 내주게 된 것이다.

“유 청장의 묘안이었지요. 그전까지 문화재 환수는 거의 불가능했는데, 이를 계기로 환수 움직임이 활발해졌으니 대단한 일을 해낸 겁니다.”

때마침 용산 중앙박물관 개관에 맞춰 한국으로 돌아온 북관대첩비는 국내 전시 후 그가 만든 지붕돌과 기단과 함께 북한으로 보내졌는데, 북한에서 비를 세우려고 땅을 파니 마침 기단이 출토되어 기단은 원래 것을 쓰게 됐다. 지금 북관대첩비는 북한의 국보193호로 지정됐다.

문화재 일을 하면서 감격스러웠던 순간은 또 있다. 숭례문을 복원할 때 나온 상량문에서 ‘도석수’가 표시돼 있어서 역시 도성을 지키는 성문에서 중요한 것은 화려한 문루가 아니라 이를 떠받치는 육축임을 확인했다. 그가 생석회를 발로 이겨가면서 쌓은 성곽 역시 자연스럽게 남산 쪽으로 용틀임하며 올라가는 모양을 하고 있어서 조각가 최종태(전 서울대 교수)의 칭찬을 들었다. 최 교수는 가톨릭 관련 조각을 하면서 함께 작업한 인연이 있다. 그는 또 조각가 김영중과도 생전에 인연이 깊었다.

“김 선생님이 동아문화센터에서 조각을 가르치던 시절, 제가 7년 동안 배우러 다녔습니다. 우리 전통 조각에 부족한 해부학적 인체 비례 지식이나 인물도상을 관상학과 연결해 해주신 이야기는 재미도 있고 유용했습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은 전통 조각 특유의 넉넉함과 서양 조각의 깔끔하고 세련된 조형미를 동시에 지녔다. 그는 창작품으로 전시회도 자주 열면서 야외에 두던 화강암 조각이 실내에도 어울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의 작업장에는 작은 조각도 많지만 역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관촉사 은진미륵불을 닮은 큰 입상이다. 2007년 중요무형문화재가 되면서 문화재 보존위원회의 기록용 작품을 만들 때 그는 평소 만들고 싶었던 이 미륵불에 착수했다고 한다.

“이렇게 큰 작품을 손으로 다 한다고 하니 다들 말렸지요. 사실 여섯 달 만에 해내려니 너무 힘들어서 후회도 했지만, 결국 해냈습니다!”

가분수처럼 하체가 살짝 짧은 은진미륵불의 무엇이 그렇게 매력적이었는지.

“하체가 짧아서 땅에서 솟아나온 힘찬 느낌을 줍니다. 머리가 큰데 옆에서 보면 얇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부담스럽지가 않지요.”

불상이나 보살상은 그 시대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담았다. 신라시대의 세련된 불상이 고려시대 선불교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고 토속적으로 바뀌어가는 경향을 보여주는 이 불상은 그렇게 자유롭고 자연스러워 더욱 사랑스럽다고 한다. 관세음보살로 만든 것인데도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온다는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불로 불리는 이 불상이 조각가의 눈에는 이 시대에 가장 이상적인 모습인가보다. 그런데 그의 손으로 재창조된 미륵불은 지나가는 스님의 눈에 띄어 안산 연암사로 갔고, 지금 작업장 마당에 있는 것은 다시 만든 것이라 한다. 이번에는 기계의 힘도 좀 빌렸지만, 이 큰 걸 또 만들다니 대체 돌에 무슨 재미가 있어서 그런 걸까.

“돌이 매력적인 것이, 무심하게 때리면 무심하게 나오고, 화가 나서 때리면 화난 모습으로 나옵니다. 돌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아, 그러고 보니 그의 작품은 죄다 그의 마음을 본뜬 것이었다.

신동아 201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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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한경심 │한국문화평론가 사진·박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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