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김영미 PD의 지구촌 현장

수니파 무장단체의 이슬람 국가 건설 보복 부른 시아파 정권의 무능과 부패

이라크 내전

  • 김영미 | 분쟁지역 전문 PD

수니파 무장단체의 이슬람 국가 건설 보복 부른 시아파 정권의 무능과 부패

2/5
평범한 이라크 사람들은 종파 간 갈등을 원하지 않고 종파를 초월한 새로운 정치 세력을 원했다. 지식인들 사이에서 종파 갈등을 없애려는 노력도 시작됐다. 그 결과 ‘이라키야’라는 시아파와 수니파를 망라한 연합 정당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 정당은 이라크 국민에게 화합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2010년 치러진 이라크 총선에서 이라키야는 알 말리키의 ‘법치연합’(시아파)을 누르고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종파 갈등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라크 국민의 간절한 바람이 담긴 결과였다.

그러나 이내 반전이 일어났다. 알 말리키 총리가 종파 갈등을 부추겨 시아파 소수정당을 모두 규합해 자신의 총리 연임을 밀어붙인 것이다. 이렇게 정권을 쥔 알 말리키는 이라키야 정당에 관여된 수니파 인사들을 탄압했다. 투옥과 체포가 공공연히 벌어졌다. 알 말리키는 일반 국민의 고통보다는 오로지 ‘시아파 정권 창출’에만 몰두했다. 이라키야 정당의 한 관계자는 “사담이 떠난 자리를 알 말리키가 그대로 차지했다. 우린 후세인 시절과 다른 것을 거의 모를 정도의 독재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발표된 미국의 이라크재건사업 특별감사팀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특별감사팀은 이라크 복구비용 중 최소 80억 달러 이상을 낭비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그중 상당액을 시아파 정치인이 챙겼다고 밝혔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 이후 사용한 재건사업비용은 총 600억 달러(한화 약 61조2000억 원)에 달했지만, 이라크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에 허덕인다. 높은 실업률과 생활고는 이라크에서 일상이 됐다. 그러나 알 말리키 총리와 시아파는 종파의 정권 장악에만 매달렸다. 정권을 쥐고 있어야 각종 원조금과 재건 비용에서 나오는 이득과 이라크의 돈줄인 유전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라키야 정당의 또 다른 정치인은 “알 말리키에게 시아파는 그저 정권을 쥘 수 있는 명분에 불과하다. 그렇게 종교가 중요하다면 시아파 이맘(종교 지도자)이 되지 왜 정치를 하는지 모르겠다. 정권이 곧 부와 명예이기에 그는 시아파라는 종파를 이용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시아파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정치인 쌈짓돈 된 복구 비용

이라크 사람들의 경제난이 가중되던 2011년, 이라크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아랍의 봄’을 타고 이라크에도 민주화 바람이 상륙한 것이다. 특히 시아파 정권에 억눌려 있던 수니파 지역에서는 이 영향을 받은 ‘반정부 시위’가 더 크게 일어났다. 2013년부터는 수니파 지역인 서부 안바르 지역을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가 더욱 극심하게 벌어졌다.



그해 2월, 수십만 명의 수니파 이슬람교도가 시아파 정부의 수니파 차별에 항의하는 반정부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안바르 주 라마디와 팔루자에서 수도 바그다드까지 행진했다. 팔루자에서 정부군과 시위대가 충돌해 7명이 사망하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시위자 대다수는 실직 상태에 있는 젊은이였다. 알 말리키 총리가 반정부 시위에 강경대응하고 수많은 젊은이를 감옥에 집어넣자 불만은 나날이 커져갔다. 그 와중에 조용히 소외된 수니파 젊은이들을 모으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이 바로 수니파 무장단체인 ISIL이다. 팔루자와 라마디를 중심으로 젊은이들을 모은 이들은 수니파에 대한 시아파 정권의 차별을 거론하며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ISIL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그 근원을 살펴보면 중요한 두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 2006년 미군의 공격을 받고 사망한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 지도자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가 그중 한 사람이다. 요르단 출신인 알 자르카위는 2000년 초 방문한 파키스탄 페샤와르에서 종교 공부를 마치고 그해 6월 단신으로 국경을 넘어 아프간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아프간 서부지역에 알카에다와 연관된 무장캠프를 열었다. 그의 원래 이름은 ‘아메드 파딜 할라이레’이지만 `무사브의 아버지이자 자르카 출신’이라는 뜻의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쌓았다.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2003년, 그는 이라크로 들어와 알카에다 지부인 ‘자마아트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일신교와 성전)를 세우게 된다. 이 단체는 한국인 김선일을 납치해 참수한 사건을 비롯해 각종 폭탄 테러와 납치를 주도했다.

알 자르카위는 2004년 10월 빈라덴에게 ‘충성 서약’을 하고, 단체 이름을 ‘이라크 알카에다(AQI)’로 바꾸었다. 그리고 미군 점령에 맞선 수니파의 저항이라는 명분으로 알 자르카위는 2006년 1월 무장단체 6개를 통합해 ‘무자헤딘 슈라 위원회’를 조직했다. 미국은 알 자르카위를 공적 1호로 지정하고 이라크 북부 디얄라 주의 바쿠바시 인근 마을을 공습해 그를 살해했다. 2006년 6월의 일이다. 그가 죽기 전 그의 주변에는 알카에다를 추종하는 사람이 많이 모여들었다. 그중 한 사람이 현재 ISIL의 최고 지도자인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다.

알 바그다디는 그동안 철저히 베일에 가려졌다. 알려진 바로는, 1971년생인 그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약 125km 떨어진 사마라에서 태어났다. 바그다드의 이라크대학교에서 이슬람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독토라(닥터) 이브라힘’으로 불렸다. 그가 언제부터 ‘무자헤딘(이슬람 전사)’의 길을 걸었는지 정확하게 알려진 사실은 없으나, 고향에서 조용히 이맘(성직자) 생활을 하다가 2003년 3월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자 알 자르카위 밑에서 지하드(성전)에 본격적으로 가담했다고 전해진다. 처음에는 고향에서 작은 무장단체를 이끌다가 알 자르카위를 만나며 본격적으로 지하드의 길을 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알 자르카위 사망 1년 전인 2005년, 미군에 체포돼 바그다드 남부 ‘캠프 부카’에서 4년 정도 수감생활을 했다. 당시만 해도 그는 미국이 주목하는 거물급은 아니었다. 2009년, 미군이 철군을 앞두고 이라크인 수감자 전원을 이라크 정부에 인계하며 알 바그다디는 석방됐다. 2006년 미군의 공습으로 알 자르카위가 사망한 뒤 조직을 물려받아 이라크이슬람국가(ISI)로 이름을 바꿨다.

2/5
김영미 | 분쟁지역 전문 PD
목록 닫기

수니파 무장단체의 이슬람 국가 건설 보복 부른 시아파 정권의 무능과 부패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