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 :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다. 브라질 월드컵 4강에 오른 팀 중 선수들이 경기에서 뛴 평균 활동거리 톱10 안에 독일 선수가 5명이나 포함됐다는 사실이다. 가장 많이 뛴 팀이 이긴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똑같이 11km 뛰었다고 해도 13km를 뛸 수 있는 선수가 11km를 뛰는 것과 11km 뛰는 게 버거운 선수가 11km를 뛰는 것은 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린 독일대표팀 선수들처럼 효율적으로 뛰지 못했기 때문에 패했다. 상대랑 비교해서 별다른 차이가 안 난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10.5km밖에 뛸 수 없는 상태에서 11km를 뛰었다. 이건 정말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다. 11km의 평균 활동거리가 질적인 면에서 다른 팀과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Q: 얘기를 듣다보니 갑자기 2002년 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이 고집스럽게 실행에 옮긴 체력강화훈련이 생각난다. 일명 ‘셔틀런’!
A : 운동하면서 훈련이 두려웠던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틀 하고 하루 쉬고, 이틀 하고 하루 쉬는 걸 반복했지만 훈련 강도가 어마어마하게 셌다. 그다음의 훈련에 부담을 느낄 정도로 엄청났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이탈리아와 스페인전은 연장 포함해서 120분을 뛴 경기였다. 그럴 때마다 히딩크 감독이 강조한 얘기가 있다. ‘너희는 원래 180분을 뛸 수 있는 체력이다. 그 체력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이를 악물고 체력 강화 훈련을 했기 때문에 90분 뛰고 나서 그다음 90분을 더 뛰어야만 너희 체력이 안정된다. 따라서 너희가 120분을 뛰었다는 건 절대 힘든 일이 아니다. 지치지도 않는다. 오히려 120분을 넘어가면 더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다.’ 한마디로 ‘뻥’이었지만(웃음), 선수들의 심리를 아주 잘 이용하셨고, 감독의 말씀 덕분에 우린 180분을 뛸 수 있는 체력을 가졌다고 착각하면서 월드컵 경기를 치렀다.”
“한국 축구 성장 속도 더뎌”
Q: 브라질 월드컵을 통해 한국 축구가 퇴보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전의 월드컵에 비해 성적이 좋지 않았기에 비난이 더 거셌던 것 같다.
“어느 나라나 대표팀 성적에는 높낮이가 있게 마련이다. 오르락내리락하며 계속 발전하는지, 아니면 다른 팀의 발전 속도보다 뒤떨어졌는지 파악해야 한다. 난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뛴 우리 선수들이 2002년의 대표팀 선수들보다 축구를 훨씬 잘 한다고 본다. 그런데 왜 우리가 이 팀에 만족하지 못했느냐 하면 우리의 성장 속도가 주변국의 성장 속도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실력만 발전한다고 해서 축구를 잘하는 게 아니다. 협회, 연맹, 지도자 등 주변 환경이 도와줘야 한다.
지금의 한국 축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모두가 인지한다. 그렇다면 그 문제가 무엇이고, 그 문제의 뿌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파헤치다보면 근본적인 원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를 바꾸려고 하지 말고 원인을 바꿔줘야 한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Q: 한국대표팀을 이끌 사령탑으로 네덜란드의 판 마르바이크 감독이 거론된다. 외국인 지도자를 다시 선임하는 것에 대한 견해는.
“아무리 유능한 지도자가 와도 한국에서 20~30년씩 팀을 맡을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일시적인 부분이라 ‘사람’보다는 그가 한국 축구에 어떤 걸 남길 수 있는지 봐야 한다. 또한 좋은 지도자가 한국에 와서 대표팀을 제대로 이끌어 갈 수 있게끔 좋은 환경, 바람직한 지원을 해주는 게 중요하다. 어느 때보다 미디어와 포털 사이트의 책임 있는 자세와 시각이 필요하다. 특히 가장 많은 포지션을 차지하는 네이버의 역할은 새삼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한국 축구를 괴롭히고 자극적으로 몰아가는 기사가 아닌, 진정한 메시지를 던지는 기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 기사를 게재하고 노출함으로써 미디어가 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유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