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효과는 해소되겠지만…
은행이 다시 주택담보대출 시장을 주도하고 전체 주택 관련 대출에서 은행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가계부채의 질을 개선시킨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 동안 은행을 중심으로 한 가계대출 증가 억제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해온 결과 전체 가계대출 증가세가 안정되기보다는 비은행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팽창하는 바람에 도리어 가계의 금리 부담이 가중되는 ‘풍선효과’ 부작용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전체 가계대출 중 비은행권 대출의 비중은 2006년 말 39.9%에서 올해 1분기 말 50.3%까지 상승했다. 비은행 금융기관보다 은행에 더 낮은 대출 한도를 적용하는 LTV와 DTI 규제가 각각 2002년과 2005년부터 시작된 이후 은행 가계대출에 비해 비은행권 가계대출이 급증했다. 이처럼 은행 가계대출에 대한 규제가 강화됐는데도 2005년 이후 가계부채 증가율은 꾸준히 늘어났다. 비은행권 대출 비중이 높아지면서 가계부채의 질은 악화되는 가운데서도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의 성장 속도 이상으로 증가했다.
LTV, DTI 제도가 변경돼 금융업권 구분에 관계없이 대출 한도가 동일해지면 금리가 높은 비은행 주택담보대출이 금리가 낮은 은행 주택담보대출로 전환, 대체돼 가계의 이자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그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 정확하게 예측하긴 어렵지만,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의 기존 주택담보대출(올해 5월 말 기준 92조9000억 원) 중 50%가 은행 주택담보대출로 전환되고,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의 신규 주택담보대출(올들어 5개월간 3조7000억 원 증가) 중 50%가 은행 주택담보대출로 대체될 경우 가계 이자 부담 감소액은 연간 5400억 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비은행 주택담보대출의 은행 주택담보대출 전환, 대체가 광범위하게 확산될 경우 주택담보대출이라는 중요 수익원을 은행에 넘겨준 비은행 금융기관들의 경영 상황이 악화할 수 있다. 예상보다 빠르게 ‘풍선’의 바람이 빠지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이 곧바로 가시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DTI 완화는 신중해야
문제는 가계부채의 증가 속도다. 주택담보대출 시장에서 은행의 비중이 다시 높아져 부채의 질이 개선되고 가계의 이자 부담이 완화되더라도 가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가계부채가 급증한다면 득보다 실이 커질 수 있다.
현재 논의되는 것처럼 LTV와 DTI가 일괄 상향 조정되면 은행을 중심으로 대출받을 수 있는 한도가 추가로 늘어나 가계부채의 전체 규모가 증가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만약 가계부채 증가를 단기적으로나마 용인해야 한다면 무엇을 위해서, 그리고 누구의 부채가 늘어나는 것을 용인할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가계부채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문제는 뚜렷이 구분되는 이원화 구조를 지녔다. 하나는 일정 수준의 자산이 있고 소득도 어느 정도 되지만 주택 등 부동산과 관련한 대규모 부채로 어려움을 겪는 계층이다. 이들의 가계부채 급증 및 부실화 과정은 주택 경기 등 부동산 시장의 움직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다른 하나는 보유 자산도 많지 않고 소득도 적은 계층이다. 이들의 가계부채는 근본적으로 구조적인 가계수지 적자 상황에 기인하며, 부실화한 가계부채 규모에 비해 그 수가 많은 편이다.
현재 정부가 LTV, DTI 등 부동산 관련 금융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주된 목적은 가계부채의 질을 개선해 가계의 가처분소득 증대와 함께 부동산 시장의 활성화를 꾀해 경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만약 부동산 시장이 정부의 의도대로 활력을 회복할 경우 가계부채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두 계층 중 전자, 즉 부동산 관련 부채를 안고 있는 계층에게 상대적으로 큰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얼마 전 주목할 만한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건국대 부동산도시연구원의 분석 결과에 의하면 LTV와 DTI 규제 완화의 효과가 소득계층별로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LTV 규제를 완화하면 소득 5~10분위의 중산층 및 고소득층의 주택 구입 능력은 커지지만 1~4분위는 별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DTI 규제를 완화하면 소득 1~5분위의 서민 및 일부 중산층의 주택 구입 능력은 커지지만 6~10분위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LTV 규제는 상대적으로 고소득층의 부채증가 억제 효과가 큰 반면, DTI 규제는 저소득층의 부채증가 억제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우선은 LTV 완화를 고려하되 DTI 완화에는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LTV가 완화될 경우 주택 구입 등의 과정에서 고소득층의 부채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들은 보유 자산이나 소득 측면에서 상환 능력이 상대적으로 높고, 부동산 시장이 정상화할 경우 이들의 가계부채 문제도 개선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DTI가 완화될 경우 저소득층의 부채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지만, 이들은 상환 능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하고 부동산 시장이 활성화하더라도 이들 계층의 가계부채 문제는 개선되기 어려워 보인다. 도리어 부채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져 가계수지 적자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적자를 메우기 위해 추가로 대출을 받는 부채의 악순환에 빠질 위험성도 있다.
대출 증가 vs 집값 상승
현재 은행은 비은행 금융기관에 비해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을 확대할 여력이 상대적으로 크다. 향후 은행을 중심으로 주택담보대출이 증가하면 관심은 주택가격 등 부동산 경기 움직임에 모아질 전망이다. 단기적으로 가계부채는 늘겠지만 부동산 경기가 활성화하면 하우스푸어, 깡통 전세 등 부동산 경기 둔화로 유발된 여러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또한 보유자산 가치가 늘고 경기회복 기대심리가 커져 소비 증대, 건설투자 증가 등을 통해 경기가 활성화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고용이 늘고 가계소득이 향상돼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림으로써 가계부채 문제를 완화하겠다는 정부의 정책 목표가 달성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2004년 이후 지난 10년간 은행 주택담보대출 증가율과 전국 주택가격 상승률을 비교해보면, 주택 관련 대출과 주택가격 움직임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확인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하반기부터 2010년 상반기까지의 기간을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은행 주택담보대출 증가율이 높아지면 주택가격 상승률도 높아지고, 은행 주택담보대출 증가율이 낮아지면 주택가격 상승률도 낮아지는 패턴이 유지됐다. 가계부채의 질 개선, 가계의 이자부담 완화, 부동산 경기 활성화, 경제활력 증대 등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가계부채 규모 급증, 주택 가격 급등 등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혜를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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