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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 을’에서 ‘악어와 악어새’로 “관피아 뺨치는 입법 마피아”

의원 보좌진-기업 대관(對官) 담당의 ‘위험한 동거’

  •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갑과 을’에서 ‘악어와 악어새’로 “관피아 뺨치는 입법 마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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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법안’ 만들어주기

기업 대관 담당의 국회 업무는 주로 ‘회사에 불리한 법안은 막고 유리한 법안은 올리는 일’이다. 기업으로선 법조문 하나로 엄청난 금액의 이권이 오가기도 하므로 사내에서 이들의 업무는 긴요하게 여겨진다. 한 대기업 연락관인 M씨는 “대관 담당은 어느 정도 실적을 내면 비교적 빠르게 승진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실적이란 대개 로비의 성공을 의미한다. 대관 담당으로선 법안 기초 자료를 만드는 보좌진과 친해둬야 한다. 또 관련 상임위별로 어떤 의원실이 어떤 법안을 준비하는지에 대해 보좌진으로부터 정보를 알아내야 한다. 이를 위해 얼마든지 보좌진을 접대하려 한다.

이렇게 보좌진과 친분을 쌓은 뒤 몇몇 기업 대관 담당은 자기가 만든 ‘셀프 법안’을 보좌진에게 넘겨준다. M씨는 “경쟁이 치열한 이동통신업계의 경우 법안 문구에 따라 어떤 통신사가 유리해지고 다른 통신사가 불리해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각 통신사의 대관 담당은 자기 회사에 유리한 법안이 왜 공익적으로 더 타당한지에 관한 ‘논리’를 열심히 개발해 해당 상임위 의원실 보좌진에게 건네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M씨는 “보좌진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완성된 법안 초안을 제공하기도 했다. 기업의 입법 실력이 꽤 뛰어난 편”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기업들은 이를 위해 경제연구소나 대형 로펌에 의뢰해 법안 초안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대관 담당의 또 다른 중요 국회 업무는 국정감사 대비다. 국감 대상인 공기업 사장은 말할 것도 없고 민간 대기업 경영주도 의원들에 의해 증인으로 자주 채택된다. 국회가 좋은 일로 사람을 부르는 일은 별로 없다. 경영주가 불려나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발언에 대해 위증책임까지 져야 하는 건 기업에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수년 전부터 의원들은 국감 때 무차별 증인채택을 시도한다. 일종의 ‘기업 군기 잡기’다.



따라서 이 일을 일선에서 맡는 대관 담당은 국감 때면 초비상이 걸린다. 9~11월이 바로 그런 시기다. 대기업 N 임원은 “회장님이 국회에 안 불려나오시게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장 좋은 건 처음부터 증인 명단에 포함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총력을 기울인다”고 귀띔했다.

이때 별것도 아닌 일로 경영주가 국회에 나오게 되면 대관 담당은 옷 벗을 각오까지 해야 한다. 국회 업무 담당자가 없는 기업은 경영주가 증인으로 채택된 줄도 모르다가 갑자기 출석 통지서를 받기도 한다. 2012년 지식경제부 국감에선 미국계 대형할인점 코스트코의 한국 책임자인 프레스톤 드레퍼 대표이사가 증인으로 불려나왔다. 그는 휴일 영업을 놓고 의원들의 추궁을 받았다.

“회장님 안 불려나오시게…”

대신 증인 채택이 불가피해 보이는 경영주를 명단에서 빼내는 데 성공하면 대관 담당은 인사에서 상당한 혜택을 누린다. 규모가 큰 모 공기업의 국회 연락관 O씨는 사회적 물의를 빚은 이 공기업 사장이 국회 증인채택 위기에 몰렸을 때 친분 있는 보좌진은 물론 국회 출입 기자까지 동원해 증인 명단에서 빼냈다. O씨는 “‘평소 국회 참모들을 잘 관리해야 결정적인 순간 도움을 받는다’는 철칙을 가졌다”고 말했다. 부장급이던 그는 얼마 전 인사에서 임원으로 승진했다.

또 대관 담당은 국감 기간 의원들이 요구하는 자료 목록을 준비 단계에서 재빨리 파악해야 한다. 요구 목록에서 뺄 수 있는 건 빼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목록에 들어가는 사안은 소속 기관에 미리 보고해 대처하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보좌진과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의원들은 보좌진의 능력을 ‘피감기관이 내놓기 싫어하는 자료를 요구해 받아낸 건수’로 평가해왔다. 따라서 보좌진도 자료 제출이 자기 실적이기 때문에 웬만해선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일부 의원실은 민간 대기업에도 자료를 요청한다. 이때 기업은 행정기관이 아니므로 자료 제출 의무는 없지만 의원의 요구를 무작정 거절할 수도 없다. 대관 담당은 보좌진과 접촉해 타협점을 찾아내야 한다.

대기업 연락관 P씨는 “도저히 줄 수 없는 자료를 달라고 의원실에서 요청하기도 했다”며 “어렵다고 하면 ‘회사가 잘되는지 두고 보자. 지금 당신네 기업을 무너뜨릴 법안을 만든다’는 식으로 협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좌진은 평소엔 친한 사이인 듯 대해주다가도 이슈가 생기면 갑자기 ‘갑’으로 변한다. 그러니 더 가깝게 지내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기업 연락관 M씨는 “우리 회사나 경쟁사와 관련해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관가·정치권 동향 정보를 보좌진에게서 얻는 것도 주요 업무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주량·체력도 필수

대관 담당, 국회 연락관은 공식 명칭이 아니다. 편리상 그렇게 부를 뿐이다. 기업에서 이들은 주로 전략기획실, 대외협력실, CR실 소속이다. 이들은 사내에서 ‘엘리트’로 통한다. 어떤 조직이든 유능한 사람을 대외 창구로 두는 것과 같은 이치다. 회사 사업에 정통해야 하고 노련한 보좌진을 설득해낼 정도의 전문성, 논리, 친화력을 갖춰야 한다. 폭탄주 술자리를 견뎌낼 주량과 체력도 필수다. 공기업과 대기업의 임원 가운데 대관 업무 경력자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시는 6월 국회·정당 협력요원(5급) 공채 공고를 냈다. 지원 자격 요건이 매우 까다로웠다. 관련 분야 박사학위 취득자, 석사학위 취득 후 1년 이상 실무경력자, 6급 이상의 공무원으로 2년 이상 실무경력자 등으로 제한했다. 국회 담당을 그만큼 중시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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