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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위한 음식에 예술을 입히다

떡살 목조각장 김규석

  • 글·한경심 │한국문화평론가 사진·박해윤 기자

신을 위한 음식에 예술을 입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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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위한 음식에 예술을 입히다

조각칼로 파낸 거친 배경에 향나무를 상감한 꽃, 그리고 아래위로 만(卍)자문이 이어지는 장식까지 여러 가지 기법을 동원한 작품.

함평에서 경기도까지, 대체 어떤 인연으로 스승을 찾아갔느냐고 물으니, “우리나라에서 조각 솜씨 제일 좋은 분을 찾다보니 이 선생님을 만나게 됐다”고 한다. 글쎄, 왜 조각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스승을 찾았던 걸까. 혹 조각 솜씨가 좋았다는 할아버지의 영향 때문에?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으며 ‘먹고살려고’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도 소질 따라 생계를 구하게 마련인데, 그는 끝까지 자신은 “솜씨가 없다”고 겸손해한다. 아무리 봐도 그의 대답은 빈말인 것 같다. 손작업을 즐길 만큼의 솜씨 없이는 떡살을 되살리는 일에 그토록 매달릴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에게는 솜씨보다 더한 자산이 있긴 하다. 바로 집념과 노력이다.

이연채 선생과의 만남

군대를 다녀오고 난 뒤 1985년 그는 전남 광주에 ‘규석목조각연구소’를 열었다. 스승에게서 독립한 것이지만, 그는 지금도 스승을 모신다. 그의 집에 스승을 1년간 모시고 산 적도 있고, 지금도 자주 서울을 오간다. 그리고 그에게는 또 한 분의 스승이 있었으니, 그를 떡살의 세계로 인도한 고(故) 이연채 선생이다. 남도의례음식 장인으로 광주 무형문화재인 이연채 선생을 김규석이 처음 만났을 때, 이 선생은 문화재도 아니었고, 홀로 자식을 키우며 예전 가난한 양반 아낙네들이 자기 집에서 하는 안침술집처럼 아는 사람에게만 음식을 대접해 파는 처지였다.

“선생님은 음식 솜씨는 물론이고 동동주 등 술 담그는 솜씨도 뛰어나셨죠. 선생님은 떡살도 직접 만드셨는데, 선생님 댁을 드나들면서 나무를 자르고 깎아드리고 하면서 점점 떡살에 빠져든 겁니다.”

이연채 선생은 모친이 광주에서 네 손가락 안에 드는 최부잣집 딸인 만큼 먹고살기 힘들어 전통을 유지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전통을 잘 알고 있었고, 이 선생 자신 수피아여고 1회 졸업생으로서 우리 전통을 이어야 한다는 의식도 있었다. 그래서 자신을 도와주는 젊은 김규석에게 ‘이 일을 해보라’ ‘이것은 꼭 이어가야 할 전통이다’라며 자꾸 꾀었다.



“그때만 해도 조각에 욕심이 있어서 떡살을 할 생각은 없었지요. 그런데 선생님이 원체 강하게 권유하시는 데다 그 누군가는 해야겠기에, 더구나 자료 모아놓은 것까지 제게 주시니 안 하려고 해야 안 할 수가 없게 됐지요.”

자의 반 타의 반이었든, 아니면 우연인지 필연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가 떡살을 떠안게 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당시 떡살은 수집가나 재야 연구자는 더러 있었어도 만드는 사람의 맥은 끊어질 지경에 이르른 때였다. 6·25전쟁이 터지기 전까지는 그래도 경북 예천의 유명한 떡살 집안의 김한량(실명인지 별명인지 분명치 않다. 실제로 한량이었다고 한다) 씨가 뛰어난 떡살을 만들어냈는데, 그가 6·25 때 실종되면서 예천 떡살의 맥은 끊기고 말았다.

김규석이 이연채 선생과 함께 떡살 연구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던 시기, 처음에는 무척 답답했다고 한다.

“떡살에 관한 연구나 정리된 자료가 별로 없어 기술을 전수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했지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체계적으로 정리할 겸 책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부산의 김길성 씨가 재야 연구자로서 떡살을 많이 모으는 정도였고, 일본에서 우리 떡살에 관한 책이 나와 있을 뿐이었다. 김규석은 떡살에 관한 제대로 된 책을 멋지게 펴낼 결심을 하고 자료를 모으는 한편, 우리 민화나 각종 문양집을 죄다 섭렵하며 이론 공부도 해나갔다. 그리고 떡살 문양을 하나씩 새로이 파나가면서 탁본도 하며 책을 만들기 위한 긴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17년간 일주일에 하나씩 만들어

책을 준비하는 기간은 그에게 수련기이기도 했다. 일주일에 하나씩 작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서 새벽 두세 시에 일어나 작업을 시작했다. 마치 선승이 수련하듯 그렇게 작업한 지 17년, 1000여 점의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판매한 작품까지 합하면 6000점은 만든 것 같다고 한다. 작은 작업대에 앉아서 꼼짝하지 않고 열 몇 시간씩 새기고 파는 그 작업에 무슨 재미가 있어서 그렇게 몰두할 수 있었을까.

“그저 노동하듯 했습니다. 보람요? 누가 알아주느냐고요? 안 알아주면 어떻습니까. 누가 시켜 한 일도 아니고 내가 좋아서 한 일인데요. 아예 어렵게 살자고 마음먹었으니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더 놀라운 것은, 작품으로 만든 1000여 점 가운데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전통 문양을 기본으로 하되, 모두 자신의 의도를 살린 창작품이다. 그렇게 만든 작품으로 두 권의 책을 펴냈으니 바로 2005년에 나온 ‘소중한 우리 떡살’과 이듬해 나온 탁본집 ‘아름다운 떡살무늬’다. 이 두 권은 만드는 데만 3년이 걸렸을 만큼 방대한 자료를 분류해 담았으며 영문도 병기했다. 이 책을 보면 우리 문양이 이토록 다양하며 화려했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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