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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답게’ 못 살아도 내 천직은 해설”

야구인 허구연

  •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

“‘사람답게’ 못 살아도 내 천직은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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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답게’ 못 살아도 내 천직은 해설”

지난해 9월 8일 허구연 해설위원 초대로 목동야구장을 방문한 아트앤하트 유소년야구학교 선수들.

Q 1985년 프로야구팀 감독을 맡아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평생 야구 해설만 할 것 같던 사람이 지도자의 길로 접어든 이유가 무엇인가.

처음에는 MBC 청룡에서 감독직 제의를 받았다. 팀 성적이 좋지 않자, 당시 MBC 이웅희 사장이 감독직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지만 고사했다. 세 차례나 거듭 요청이 이어지자, 나로선 확실하게 거절할 명분을 찾아야 했다. 당시 청룡 감독이 경남고 은사이던 어우홍 씨였다. 그래서 MBC 측에 은사를 몰아내고 감독직에 앉을 수 없다며 버텼다.

그러고 나서 청보 핀토스로부터 감독직 제의를 받았다. 역시 거절했는데, 청보가 진짜 집요했다. 당시 난 매주 두 경기 이상의 생중계, 매일 밤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출연, 다수 신문사 칼럼 집필 등으로 체력 고갈 상태였다. 그때 우리 큰형이 이런 얘길 해줬다. ‘야구를 시작한 이래 부상을 제외하곤 실패 없이 승승장구하며 살았다. 젊은 나이에 하는 도전은 충분히 해볼 만하다. 실패하더라도 젊어서 실패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 다른 지인들도 감독직에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기회를 잡았는데, 결국엔 성적 부진으로 한 시즌 만에 물러나야 했다. 해설위원으로 보는 야구와 현장에서 부딪치는 야구의 차이점이 엄청나다는 걸 실감했다.

1987년 2월, 롯데 자이언츠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고향 팀이 어려우니까 도와달라면서 타격코치를 맡아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렇게 해서 3년간 타격코치와 수석코치를 맡아 롯데에 머물렀다. 감독직 제안도 받았지만, 거절했다. 롯데를 떠나며 내가 구단에 한 말이 있다. ‘구단도 정신 똑바로 차려라. 그리고 감독 코치를 우습게 보지 마라’는 내용이었다. 떠날 몸이었기 때문에 뒷일 생각지 않고 쓴소리를 날린 것이다.”

MLB에 선동열 추천했지만…



“‘사람답게’ 못 살아도 내 천직은 해설”

롯데 자이언츠 코치 시절.

Q 롯데 코치에서 물러난 후 바로 해설위원으로 복귀할 줄 알았는데, 미국으로 떠났다. 그런데 LA 다저스가 아닌 토론토 블루제이스였다.

다저스 피터 오말리 구단주로부터 다시 와달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이왕이면 새로운 팀에서 야구를 배우고 싶었는데, 그게 토론토 블루제이스였다. 블루제이스 구단주는 현장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구단주의 도움 덕분에 싱글A부터 트리플A까지 마이너리그 전체를 다 돌았다. 2년간 마이너리그에서 유급 코치 생활을 하며 미국 야구에 한발 다가갈 수 있었다. 가르친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올라가며 특별한 감사를 전한 일도 잊히지 않는다. 미국에 있는 동안 몇몇 구단 관계자로부터 한국에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선수를 추천해달라는 부탁도 받았다. 그때 내가 거론한 선수가 최동원, 선동열, 김재박이었다. 특히 선동열은 LA 다저스에서도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해태에서 선동열의 군 문제를 들어 미국 진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만약 그때 선동열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더라면 한국의 야구 역사가 모두 뒤바뀌었을 것이다.

Q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현대 유니콘스 초대 감독으로 영입하려 했다는 얘기가 있던데 사실인가.

돌아가신 정 회장은 야구단 창단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나를 따로 만나 야구단 운영과 관련해 여러 가지 질문을 건네곤 했다. 그런데 삼성 롯데 해태 등 기존 구단들이 현대가 프로야구단 세우는 걸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그래서 방법을 달리해 실업팀 현대피닉스를 인수했고, 그 팀이 현대 유니콘스가 된 것이다. 그 당시 정 회장이 초대 감독을 맡아달라고 특별 부탁을 했다. 하지만 난 이미 감독으로 쓰라린 경험과 좌절을 맛본 상태였고, 감독이 아닌 다른 형태로 야구 발전에 헌신할 작정이었다. 감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김재박 감독을 추천했는데 현대가 워낙 스케일이 커 선수단 발전을 위해 통 큰 지원을 한 터라 김 감독이 승승장구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Q 현대그룹 회장의 제안을 거절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감독직 제안은 삼성, LG에서도 왔었다. 워낙 고집스럽게 거절하니 그 후론 내가 감독에 전혀 뜻이 없다는 걸 다 알게 됐다. 난 다른 방면에서 야구계를 위해 일하고 싶었다. 산적한 야구 현안에 대해 조언하고 9구단, 10구단 창단에 적극 나설 계획이었다. 팀을 맡아 우승한다 한들 한국 야구 전체를 레벨 업 하는 건 아니지 않나. 내가 해설하면서 오랫동안 야구 인프라를 강조한 까닭도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해서였다. 그래서 별명이 ‘허프라’가 됐지만 말이다.

정치권 ‘러브콜’ 많았다

Q 정치권에서 손을 내민 적도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론 어떠했나.

야구인은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큰일을 할 수 있다. 여당, 야당에 속하다보면 정작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정치권의 도움을 받기가 어렵다. 정치적 이념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움츠러들고 제약을 받는다. 여러 차례 정치권의 러브콜이 있었지만, 정중히 거절했고, 야구계에 남았다. 유영구 전 KBO 총재가 야구계를 이끌 때 야구발전실행위원장을 맡은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연봉을 주겠다는 걸 내가 거절했다. 봉사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MBC 해설과 야구발전실행위원장을 맡아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녔다. 그게 나에게 맞는 ‘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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