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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답게’ 못 살아도 내 천직은 해설”

야구인 허구연

  •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

“‘사람답게’ 못 살아도 내 천직은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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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NC 다이노스 창단 뒷얘기를 듣고 싶다.

당시 유영구 총재와 자주 독대했다. 나에 대한 신임이 두터워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때 유 총재에게 KBO 총재라면 프로야구의 발전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가장 중요한 건 구단을 만드는 일이라고 거듭 말씀드렸다. 더욱이 당시에 히어로즈가 자금난으로 선수들을 파는 바람에 구단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았다. 히어로즈가 선수를 팔아 구단 자금을 모으는 것을 묵인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9구단 창단을 역설했다. 야구선수들의 취업과 한국 프로야구의 파이를 키워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더니 유 총재가 ‘그렇다면 자네가 한번 나서보라’고 하시더라. 극비리에 9구단 창단 작업에 뛰어든 것이다. 당시 9구단 창단에 가장 적합한 도시가 마산·창원·진해가 합쳐진 창원이었다. 창원시장을 만나 설득에 나섰다. 이때 4군데 기업이 후보로 나섰는데, 최종적으로 NC소프트가 구단 운영을 맡았다.

Q 9구단 창단으로 프로구단이 홀수팀이 되면서 경기 일정이 파행적으로 운영됐고, 기존 구단의 반대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건 충분히 예상했던 문제다. 나와 유영구 총재는 10구단까지 생각했기 때문에 9구단 설립을 강행한 것이다. 히어로즈가 9구단 창단과 함께 운영 방침이 달라진 걸 기억하나. 더 이상 선수를 팔지 않고, LG에서 이택근을 FA로 영입하고, 메이저리그의 김병현도 데려오며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9구단 창단은 다른 팀보다 히어로즈에 큰 자극을 줬다. 삼성이 앞장서 반대한 탓에 9구단 창단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결국엔 성사됐다. 난 아홉 번째 구단이 만들어지면 10구단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창단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홀수팀으로는 프로야구 운영이 어렵다는 걸 절감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로 불편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KBO 이사회도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9구단 체제를 고집할 수만은 없다고 봤다.

꿈만 같은 9·10구단 창단



Q 그래서 10구단 KT 위즈가 탄생한 것인가.

처음 접촉한 도시가 전주였다. 2009년 송하진 전주시장(현 전북도지사)을 만났는데 송 시장은 나랑 친구 사이라 대화가 쉽게 풀렸다. 그 후 KT 이석채 전 회장을 만나 야구단 창단 의사를 물었다. 예전에 KT가 야구단에 뛰어들려고 하다가 정보가 새는 바람에 접은 적이 있기에 이 회장을 설득하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회장은 연고지로 전주보다는 수원이 좋다고 했고, KT는 수원을 등에 업고 경쟁에 뛰어들었다. 나중에 부영건설이 전주시장과 손을 잡았다. 결국엔 KT가 10구단으로 선정됐지만, 수원과 전주가 지역의 자존심을 걸고 대결을 벌인 터라 어떤 결과가 나올지 상당히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지금도 9구단, 10구단 창단 과정을 돌이켜보면 정말 꿈만 같다. 지금 다시 그 작업을 하라고 한다면 절대 못할 것 같다. 힘들었던 만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람이 있었다. 유영구 전 총재가 불미스러운 일로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유 전 총재는 한국 프로야구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떠났다.

Q 그즈음 허 위원에 대한 소문도 무성했다. NC 혹은 KT 야구단 사장으로 간다는 소문도 있었다. KBO 총재 자리를 노린다는 얘기도 들렸다.

내가 야구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인사, 돈 문제와 관련해선 거리를 뒀다. 야구발전실행위원장을 맡아 무보수로 일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워낙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야구계라 행여 좋지 않은 소문이 나올라치면 아예 근처에도 가지 않는 게 맞았다. 그래서 창단팀이 만들어진 후 코칭스태프 인선과 관련해서 일절 내 의견을 내지 않았다. 다른 문제에 조언은 해줬지만, 인사와 관련해선 발을 뺐다. 나에 대한 소문은 소문일 뿐이다. 만약 내가 그런 ‘자리’에 욕심을 냈더라면 굳이 신생팀이 아니고도 다른 팀에 갈 수도 있다. 야구 발전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특정 구단의 감독이나 사장으로 가지 않은 건 그런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Q 지금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점인데, 야구단 사장이나 KBO 총재보다 해설하는 일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정확히 봤다. 해설에 집착하지 않았더라면 예전에 또다시 감독을 맡았을 것이다. 해설은 내 천직이다. 그 천직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Q 야구계에선 허 위원이 후계자를 키우지 않는다는 비난의 소리가 있다. 해설에 대한 강한 욕심으로 인해 후배들이 제대로 존립하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나도 내 후계자를 키우고 싶다. 여러 해설위원을 지켜보고 있는데, 후계자를 찾는 게 쉽진 않더라. 해설하는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단순히 선수 생활을 했다고 해서 마이크 앞에 앉았다간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준비를 정말 많이 해야 한다. 운동선수 출신은 공부를 많이 못했다. 그런 부분이 해설에 드러나면 안 된다. 노력하는 후배가 많으면 좋겠다.”

Q 후배 중 허 위원과 가장 닮은꼴을 찾는다면 누굴까.

이용철, 이효봉 해설위원이 근접한다고 본다. 이효봉은 논리적인 해설이 인상적이고, 이용철은 시청자에게 편안하게 다가간다. 이순철은 톡톡 쏘는 맛이 있고.”

Q 사투리 발음 때문에 지적을 많이 받았다. 지금까지 고쳐지지 않는데.

“현대를 핸대로, 김현수를 기멘수로 발음하는데, 발음에 신경 쓰면 중계가 안 되더라. 자꾸 맥을 놓치고 어버버 하다가 경기가 흘러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한번은 PD한테 내 발음이 문제가 되면 그냥 나를 자르라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국민이 내가 하는 발음을 다 알아들으니까 문제 될 게 없다고 하더라. 처음에 해설을 시작할 때 교정했어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서 하려니까 불가능했다

허 위원은 30년 넘게 야구 해설을 하면서 ‘사람답게’ 사는 일을 일찌감치 포기했다고 한다. 친척 및 지인 경조사에 참석하는 건 시즌 중에는 불가능하다. 골프도 그의 관심 리스트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오로지 야구만 생각한다. 중계가 없는 날에도 사무실에서 4개의 화면을 번갈아 보며 경기를 꼼꼼히 챙긴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도 휴대전화를 통해 경기 내용과 결과를 확인한다. 현장에서 감독, 선수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는 이도 허 위원이다. 허 위원 정도면 굳이 선수까지 챙기지 않더라도 충분히 많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는 모든 걸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걸 게을리하는 순간 해설자로서의 생명도 끝이 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야구 해설가로서 허구연은 여전히 현역으로 뛰는 ‘레전드’였다.

신동아 201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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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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