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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받은 이들 재도전 돕는 게 내 사명”

‘너클볼 인생’ 허민 고양 원더스 구단주

  •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dhp1225@naver.com

“상처 받은 이들 재도전 돕는 게 내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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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생회장이 되고 나서 소위 ‘정치’란 걸 해봤다. 1년 ‘딱’ 하고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내가 정치로 사회를 바꾸는 건 역부족이라는 것이었다.”

운동권 그룹은 허민의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뭔가를 시도할 때마다 사사건건 딴죽을 걸었다. 투명한 예산 집행과 학내 복지 향상을 위해 대안을 제시해도 오히려 조직적으로 반대했다. 하지만 허민에게 좌절은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었다. 허민은 이때 세 번째 너클볼을 던졌다. 바로 사업이었다.

“총학생회장을 하면서 창업을 준비했다. ‘좋은 회사, 좋은 조직을 만들어 직원들에게 잘해주자. 그래서 사람들이 다니고 싶은 회사로 키우고, 더 좋은 성과를 내자. 그러면 다른 회사들이 분명히 우리 회사를 벤치마킹할 것이고, 그런 회사가 늘어날수록 그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의 행복 총량도 증가할 것이다. 그게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2001년 허민은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통해 데이트 상대를 만나는 ‘캔디바’라는 인터넷 게임을 만들었다. 반응은 괜찮았다.

허민은 ‘캔디바’에서 얻은 자신감을 등에 업고 본격적으로 게임 제작에 도전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건 깊은 좌절이었다. 출시하는 게임마다 흥행 부진에 시달렸고, 거듭된 실패로 20억 원에 달하는 부채를 떠안았다. 그때 허민이 던진 네 번째 너클볼이 온라인 게임 ‘던전 앤 파이터’였다.



허민은 쪽방에서 친동생,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며 마지막 게임 제작에 매달렸고, 2005년 던전 앤 파이터를 출시했다. 3D 게임이 유행하던 시절이라, 2D로 제작된 던전 앤 파이터는 고전이 예상됐다. 그러나 결과는 대박이었다. 던전 앤 파이터는 한국 PC방을 휩쓸고서 중국에까지 알려지며 2억 명에 가까운 이용자를 끌어모았다. 한국 IT 업계에 새로운 청년 재벌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청년 재벌’의 꿈

허민이 세상을 또 한 번 놀라게 한 건 2008년이었다. 한창 성공 가도를 달릴 즈음 그는 갑자기 다섯 번째 너클볼을 던졌다. 승승장구하던 게임사를 갑자기 매각한 것이다. 허민은 매각 대금으로 1000억 원을 손에 쥐었다.

더 놀라운 건 그가 매각 대금 가운데 상당액을 자신과 동고동락한 게임사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홀연히 미국 버클리 음대로 유학을 떠났다는 사실이었다. 허민은 버클리 음대에서 작곡 공부를 시작하며 음악에 빠졌다. 허민 뒤에 ‘괴짜’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렇다면 허민은 왜 잘나가는 회사를 팔고, 미국으로 작곡 공부를 하러 떠난 것일까. 지난해 9월 뉴욕에서 만난 허민은 “처음부터 돈과 명예엔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허민은 “고교 시절부터 가슴에 품어온 세 가지 꿈을 이루려 미국행을 택한 것”이라며 그 세 가지 꿈을 “훌륭한 기업가, 가수, 프로야구 선수”라고 소개했다.

훌륭한 기업가가 된 그는 버클리 음대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오랜 꿈이던 싱어송라이터의 준비를 마친 터였다. 이제 남은 건 프로야구 선수였다.

허민은 결과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여덟 번째 너클볼을 던졌다. 바로 직접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사실 허민은 게임사를 운영하면서도 틈틈이 야구 훈련에 매달렸다. 특히나 너클볼 연마에 애썼다. 허민은 너클볼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다시 투수로 마운드에 서려고 노력했지만, 한번 어깨를 다치고 나니 직구 구속이 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찾은 대안이 너클볼이었다”며 “너클볼은 원래 공이 느리기에 어깨 부담이 거의 없고, 체력적 부담도 덜해 나이 많은 투수도 던지기 쉬운 구종”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독학의 한계는 명확했다. 결국 허민은 버클리 음대 유학 시절 ‘너클볼의 대가’인 전직 메이저리거 필 니크로를 찾아가 너클볼 투구법을 배웠다. 허민은 “니크로 선생으로부터 3개월간 너클볼을 배운 뒤 ‘이 정도면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평을 들었다”며 “‘던전 앤 파이터’가 대박을 칠 때만큼이나 벅찬 감동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2010년,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상대로 연습 투구를 하며 허민은 너클볼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당시 허민과 상대한 마이너리그 선수들은 “공이 마치 술 취한 나비처럼 상·하·좌·우로 요동치면서 날아온다”며 “스윙을 해도 빗맞은 타구는 고사하고, 헛스윙으로 연결되기 십상”이라고 호평했다.

결국 허민은 오랜 꿈을 이뤘다. 37세의 늦은 나이로 정식 프로야구 선수가 된 것이다. 지난해 허민은 미국 독립리그 락랜드 볼더스에 입단했고, 올 시즌 5월 28일 드디어 프로 데뷔 첫 승의 감격을 누렸다.

‘뉴욕타임스’와 ‘뉴욕데일리’ 등 미국 유수의 언론은 허민의 승리를 ‘기적’이라고 표현하며 “100년이 넘은 미국야구 역사상 비야구인 출신의 38세 선수가 프로 무대에서 승리를 따낸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비중 있게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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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dhp122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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