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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혼인이 낳은 미국 초현대 미술 寶庫

뉴욕 휘트니 미술관

재벌가 혼인이 낳은 미국 초현대 미술 寶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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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혼인이 낳은 미국 초현대 미술 寶庫
휘트니 미술관은 상설전시보다는 기획전시에 무게를 둔다. 내가 방문한 2011년에는 상설 전시품이 하나도 없고, 주로 기상천외한 초현대 작품들(contemporary arts)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라이오넬 파이닝거(Lyonel Feininger·1871~1956)라는 옛 화가의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은 작품을 모아놨는데, 파이닝거 작품을 이렇게 많이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렇듯 휘트니 미술관은 기획전시에서 남다른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휘트니 미술관은 가장 미국적인 화가로 꼽히는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1882~1967) 작품의 보고이기도 하다. 호퍼의 부인은 남편이 사망한 이듬해 2500점이 넘는 호퍼의 작품을 휘트니 미술관에 기증했다. 단일 작가 작품으로는 미국 미술관 역사상 최대의 기증이다. 역시나 거트루드가 호퍼를 높게 평가해 생전에 그의 작품을 많이 구입한 것이 인연이 돼 이뤄진 일이다.

뉴욕 주에서 태어난 호퍼는 맨해튼 그리니치빌리지에서 평생을 보내면서 뉴욕의 모습, 특히 맨해튼의 인간 군상을 많이 그렸다. 그는 도시에 사는 인간의 소외감과 고독을 표현한 화가로 평가받는다. 호퍼는 1932년부터 휘트니 연례 전시회에 매년 참가했다.

휘트니 미술관이 소장한 그의 작품 중에 ‘햇빛을 받고 있는 여인’(A Woman in the Sun, 1961)을 꼭 언급하고 싶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이 방 한가운데 서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정면으로 받고 있다. 여인 옆 침대의 이부자리를 보면 발가벗고 자다가 막 일어난 것 같다. 손가락에는 피우던 담배가 들려 있고, 여인은 깊은 생각에 잠긴 얼굴이다. 이지적이면서도 쓸쓸하다. 호퍼는 뉴욕에서 태어나고 활동한 도시 사람인 만큼 도시인의 고독을 누구보다 잘 알고 표현한 작가다.

휘트니 미술관은 거트루드의 초상화도 소장하고 있다. 로버트 헨리(Robert Henri ·1865~1929)가 그린 1916년 작품인데, 이 그림이 주목받는 것은 거트루드가 휘트니 미술관의 창립자여서가 아니라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초상화이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초상화, 특히 여성의 초상화는 화려하게 단장한 우아한 모습이 대세였다. 그런데 헨리가 그린 거트루드는 파자마 같은 바지에 윗옷은 앞을 풀어헤쳤고,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팔 다리를 자유롭게 뻗고 있다. 이런 모습은 19세기에 많이 그려진 매춘부 누드화와 비슷하다. 단지 옷을 입고 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남편 해리는 이 그림을 집 안에 걸지 못하게 했다. 결국 이 그림은 1931년 휘트니 미술관이 개관하고 나서야 벽에 걸릴 수 있었다.

거트루드의 초상화를 그린 로버트 헨리 또한 한 시대를 풍미한 화가다. 1929년 미국 최고의 생존작가 3인에 뽑혔을 정도다. 1865년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서 태어나 방랑기 많은 아버지를 따라 네브래스카, 콜로라도 등을 전전하며 살았고, 18세 때인 1883년 뉴욕으로 왔다. 이후에도 뉴저지, 필라델피아, 프랑스 파리 등으로 옮겨 다녔다.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많은 화가를 양성했는데, 에드워드 호퍼, 조지 벨로스 등이 그의 제자다.

내년 새 둥지로 이사

휘트니 미술관은 2억 달러가 넘는 수익자산을 갖고 있다. 특히 에스디 로더 화장품 회사의 사장인 레너드 로더가 2008년 이 미술관에 1억3000만 달러라는 거금을 기부했다. 1931년 600여 소장품으로 시작해, 어퍼이스트사이드의 현재 건물로 이전한 1966년에는 2000여 점으로 늘어났다. 현재 소장품은 2만여 점이라고 한다.

거트루드는 1942년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미술관 운영에 온 정성을 쏟았다. 그는 1남 2녀를 뒀는데, 두 딸은 휘트니 미술관 운영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거트루드의 손녀 플로라 밀러 비들은 1999년 가족에 대한 회고록인 ‘휘트니의 여자들과 미술관(The Whitney Women and the Museum They Made)’을 펴냈다. 이에 앞서 1982년에는 거트루드에 대한 영화 ‘Little Gloria, Happy At Last’가 나온 바 있다.

재벌가 혼인이 낳은 미국 초현대 미술 寶庫
최정표

1953년 경남 하동 출생

미국 뉴욕주립대 박사(경제학)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 건국대 상경대학장

저서 :‘재벌들의 특별한 외도’ ‘한국재벌사연구’‘공정거래정책 허와실’‘한국의 그림가격지수’등

現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경실련 공동대표


휘트니 미술관은 2015년 완공을 목표로 맨해튼 첼시 지역에 새로운 건물을 짓고 있다. 맨해튼 서쪽 해안가의 지상 철도를 공원으로 바꾸어놓은 하이라인 파크 바로 옆이다. 첼시로 이전하고 나면 현재 건물은 한때 휘트니를 거부했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사용할 것이라고 한다. 오늘날 미국 미술관들은 소장품이 급속도로 늘어나 공간 문제에 골치를 앓고 있다. 미술관이 빠져나간 자리에 다시 미술관이 들어선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다.

신동아 201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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