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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심리학

못 놀아서 생긴 병이 더 안 논다고 치료될까

결핍의 사회에서 성숙의 사회로

  •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못 놀아서 생긴 병이 더 안 논다고 치료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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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과 성숙 사이

선진국과 우리의 차이는 바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인간의 행동에 대한 관점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인간행동을 본능적 쾌락주의의 원리를 따르는 것으로 인식한다. 이런 원리를 따르는 대표적인 욕구가 식욕, 성욕, 수면욕 등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항상성(Homeostasis)의 원리를 따른다. 항상성의 원리는 인간에게는 본능적으로 유지하려는 기본(default) 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배고프지 않은 상태, 성욕이 충족된 상태, 편안한 상태, 피곤하지 않은 상태와 같이.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면 불편함을 느끼고 다시 기본 상태로 돌아가려는 동기가 생기고, 결국 이 동기가 인간행동을 지배한다고 한다.

이런 항상성의 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결핍이고 그 결핍된 무엇인가를 만족시키는 것이 중요해진다. 최근 약 200년을 빼면 인류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결핍의 연속이었다. 대부분의 인간은 부족한 식량, 추운 겨울, 더운 여름, 불편한 잠자리, 위험한 맹수들에게 노출돼 살아왔다.

그러니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본능적인 욕구 시스템이 항상성의 원리에 지배받는 것은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얘기가 된다. 특히 한국인에게 근대와 현대사는 모든 것이 결핍됐던 너무 가혹한 시대였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으면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조차 결핍됐다. 이러한 지독한 결핍의 경험은 우리의 심리체계에 결여된 그것들에 대한 집착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성장을 이루어낸 우리 사회는 객관적으로 보면 더 이상 결핍의 시대가 아니다. 계속 결핍의 요소에 관심을 갖고 모든 것을 결핍으로 이해하려고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미 엄청나게 풍요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 단지 풍요가 너무 급작스럽게 찾아와서, 우리의 심리시스템이 쫓아가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런 풍요가 상당히 오랫동안 천천히 찾아오면서 그 심리 시스템까지 체계적으로 변화시켜온 선진국들의 관점은 무엇일까. 바로 인간행동 성숙(flourish)의 원리다. 결핍된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확인하고 마음껏 발현하려는 동기로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다. 기는 아이가 수많은 실패에도 끊임없이 걷기를 시도하고, 굳이 어떤 보상이나 혜택이 없어도 무언가를 완성(master)하거나 향상하려는 노력,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으려는 시도와 갈등이 바로 이런 원리로 설명된다.

이런 성숙의 사회는 획일적이지 않다. 몇 가지에 불과한 본능적인 결핍에서 비롯되는 소수의 동기가 지배한다면, 그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은 비슷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성숙의 사회에서는 각자 개개인이 스스로 찾은 무언가를 추구하니 그 행동이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짓을 하는 ‘미친놈’이 늘어나게 된다.

평생 돈도 안 벌고, 성공도 안 하고, 결혼도 안 하고, 취업도 안 하고, 학교도 안 가고, 남이 안 하는 뭔가를 평생토록 추구하는 한마디로 ‘똘아이’의 천국이 된다. 아직 결핍의 원리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런 미친놈들은 처절한 사회적 제재를 받지만, 성숙의 사회에서는 격려와 지지를 받는다. 그런데 바로 이 미친 다양성이 바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하는 창의성이다. 우리 사회가 창의적이지 못한 이유는 꽤 근본적이고 뿌리가 깊다.

놀아야 해결된다

최근 우리 사회가 안은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무엇인지 돌아보자. 자살률의 문제는 빈곤과 같은 경제적 원인으로 쉽게 귀결된다. 실업률도 경기가 나빠서 또는 구직자가 뭔가 부족해서라고 주장한다. 행복지수가 낮은 것도 소득양극화와 같은 사회경제적 문제로 설명된다. 학습동기가 낮은 것은 공부를 덜 해서라고 한다. 뭔가 부족해서 그러니, 더 채워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더 뭔가를 열심히 하라고 한다.

분기 영업이익이 4조 원이 넘는 삼성전자는 비상 경영을 실시한다고, 그동안 실시해온 ‘work smart’에서 다시 ‘work hard’로 돌아간다. 2014년 추석 연휴에 처음 실시된 대체휴일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관련 토론회를 가보면 경제계는 경제적 어려움과 비용증가를 이유로 반대의견을 내세웠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경제계에서 제시하는 경제지표 중 하나가 제품의 재고율 증가였다. 재고율의 증가는 만들어놓은 상품 중에 팔리지 않는 비율이 증가하는 건데, 그러니 더 열심히 일해서 더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 점을 지적했을 때, 경제계를 대표하는 인사들은 대부분 꿀먹은 벙어리였다.

과연 지금 한국의 경제 상황, 특히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생산의 문제일까, 더 많이 만들지 못해서 일어나는 문제일까, 아니면 물건을 만들었는데 그것을 소비하지 않는 소비의 문제일까.

결핍의 원리에 지배를 받는 한국 사람들은 소비행동에도 다양성이 없다. 모두 비슷한 것을 먹고, 비슷한 것을 사고, 더 크고 화려한 것을 많이 소비하려 한다. 대부분이 먹고 마시는 데서 즐거움을 얻는다. 주말 오전 대부분의 TV방송은 어디 가서 뭘 먹으면 맛있는지 보여주느라 바쁘고, 지방 곳곳에 찾아가서 먹고 오느라고 (먹는 것 빼고는 별로 하는 것도 없이) 고속도로는 자가용 승용차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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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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