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호

“변하지 않는 시스템 그걸 깨는 게 진짜 챌린저”

고객 수익으로 직원 평가…주진형 한화증권 대표

  • 한상진 기자 | greenfish@donga.com

    입력2014-10-23 1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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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하지 않는 시스템 그걸 깨는 게 진짜 챌린저”
    “저희(한화증권)가 한국 사회에 존속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따져보았다. 고객 여러분을 위해 증권사가 있는 것이지 증권사를 위해 고객이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 오래전부터 증권사들은 고객의 이익보다 회사와 직원의 이익을 더 중요하게 여겨왔다. (…) 과도한 주식 매매에 대해선 실적을 인정하지 않겠다. 전망이 좋지 않은 기업에 대해선 공정하게 매도 의견을 내겠다. 잘 아는 상품만 팔겠다.(…)”

    “고객 자산 보호가 최우선”

    5월 한화증권 주진형(55) 사장이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다. 증권업계는 뒤집혔다. 업계의 오랜 관행과 관습을 정면으로 뒤집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글을 올린 이후 실제로 한화증권은 업계에서 금기시된 매도 리포트를 내기 시작했다. STX엔진, 동부하이텍, 현대상선, 녹십자셀 같은 유명 회사들이 망신을 당했다. 해당 기업들은 반발했다. 400개에 달하던 펀드도 4분의 1로 줄였다. “뭘 가지고 장사를 하라는 말이냐”는 불만이 쏟아졌지만, 주 사장은 “고객 자산 보호를 위한 조치”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 외에도 주 사장은 최대 수익원인 매매 수수료를 48%까지 삭감했고, 영업점·온라인 등으로 나뉜 수수료 체계도 단일화하는 등 변화를 시도했다.

    주 사장의 행보에 대해선 찬반이 엇갈린다. 일반 투자자는 당연히 반긴다. 일단 ‘고객의 수익을 기준으로 직원을 평가한다’는 말에 감동한다. 영업점에서 만난 한 소액투자자는 “내 돈이 보호받는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러나 경쟁사와 기업들은 “현실을 모르는 주장”이라며 비판을 쏟아낸다. 올해 한화증권을 떠난 A씨는 이렇게 말했다.



    “매도 리포트를 낼 필요는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기업과 갈등을 빚어선 지속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다. 유능한 애널리스트들이 한화증권을 떠나는 건 이 때문이다. 그동안 증권사들은 기업 평가를 거부하는 식으로 고객에게 사실상 투자위험 종목을 알렸다. 매도 리포트를 내지 않아도 기업 상황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이런 방식의 개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주 사장 취임 이후 적자 기업이던 한화증권은 흑자로 돌아섰다. 지난해 상반기에 220억 원 적자를 냈는데 올 상반기엔 12억 원 흑자를 냈다. 그러나 다른 평가도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화증권의 법인영업 실적이 최근 반 토막 났다. 6%정도이던 법인영업 MS(시장점유율)가 3% 미만으로 떨어졌다. 주 사장 취임 후 300명 넘는 사람이 희망퇴직 형태로 회사를 떠났다. 한화증권의 흑자는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 경영성과라고 할 수 없다.”

    ‘투사’ 혹은 ‘이상주의자’

    비판은 쏟아지지만, 주 사장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주진형식 개혁’의 방향에 대해선 이견을 달지 않는다. “틀린 말은 아닌데,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의 생각”이라는 식이다.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주 사장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구속 상태이던 지난해 9월 사장에 취임했다. 김 회장 공백기에 사실상 회사 경영을 진두지휘한 부인 서영민 씨와 큰아들 동관 씨가 주 사장을 발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 사장은 여러 차례 대표직을 고사했다고 한다. 주 사장의 성격을 잘 아는 지인들도 “오너십이 강한 회사에서 적응하기 어렵다”며 말렸다. 그가 한화증권 사장이 되는 데는 부인의 설득이 주효했다고 한다. “혼자만 잘난 척하지 말고 대표를 맡아서 당신 생각대로 해보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라”는 부인의 설득에 넘어가 대표직을 수락했다는 것이다.

    주 사장은 고려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과 고교 동창이고 신제윤 금융위원장, 김성식 전 새누리당 의원 등과 대학을 같이 다녔다. 그 후 미국 존스홉킨스대 박사과정에 입학했으나 학위는 받지 못했다. 지도교수와 무슨 일로 크게 싸운 뒤 포기했다고 전한다. 주 사장의 한 지인은 “논문을 다 써놓고 경제 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지도교수와 다툰 뒤 그만뒀다고 들었다. 주 사장은 그런 사람이다. 자기하고 생각이 안 맞으면 뭐든 그 자리에서 해결한다. 좋게 말하면 투사, 나쁘게 말하면 사회부적응자다”라며 웃었다.

    이후 그는 세계은행 컨설턴트와 글로벌컨설팅 기업인 AT 커니(이사), 삼성증권 전략기획실장(상무), 우리금융지주 전력기획 담당 상무와 전무를 역임했다. 삼성증권에 근무할 때는 황영기 당시 사장(전 KB금융지주 회장)에게 총애를 받았다. 황 전 회장이 “내 생애 최고의 직원”이라고 그를 치켜세웠다는 얘기도 나온다. 2004년 황 전 회장이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주 대표도 우리금융지주로 자리를 옮겼다.

    사실 주 대표가 현재 내놓은 정책의 대부분은 이미 그가 삼성증권과 우리금융지주에 몸담을 당시 실행에 옮겼던 것들이다. 그가 주도한 실험은 당시에도 큰 화제가 됐다. 물론 황 전 회장 등이 전폭적인 지원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10년도 더 지난 지금, 황 전 회장은 주 사장을 어떻게 평가할까.

    ‘분석력 비상한 천재’

    “변하지 않는 시스템 그걸 깨는 게 진짜 챌린저”

    서울 여의도 한화증권 본사.

    주 사장과 관련된 취재에 황 전 회장은 흔쾌히 응했다. 그는 주 사장을 “별난 인간, 그러나 개혁가 기질과 높은 이상을 가진 사람”이라 총평했다. 그는 “주 사장이 내놓은 정책은 이미 2001년 삼성증권에서 나와 함께 시도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던 것”이라고 말했다.

    “2001년 내가 삼성증권 사장일 때, 이건희 회장께 ‘삼성의 간판을 달고 고객의 눈물로 밥을 지어 먹어서는 안 된다. 고객이 증권사에 대한 신뢰를 회복토록 하는 것이 삼성의 역할이다’라고 보고했다. 고객과 회사의 이해가 상충하는 회사치고 영속하는 회사가 없다고도 말씀드렸다. 보고를 받은 뒤 이 회장은 ‘그럼 왜 다른 회사는 그렇게 안 하냐’고 물었다. 나는 ‘다른 회사는 먹고살기가 급합니다. 직원들 월급 주기 바빠 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그 말을 들은 뒤 이 회장께서 눈을 꿈뻑꿈뻑 하더니 ‘실적이 많이 빠져도 괜찮으니 생각대로 해봐’라고 했다. 당시 주 대표는 ‘이제 우리나라에도 제대로 된 증권사가 나오게 됐다’며 펄펄 뛰고 좋아했다. 삼성증권은 그 후 법인영업에서 자산관리 중심으로 아예 업태를 바꿨다.”

    ▼ 어떤 식으로 변화를 시작했나.

    “우선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너는 왜 증권사에 다니냐’ ‘고객과 너의 관계는 뭐냐’ 이런 걸 물었다. 그 과정에서 직원들이 고객에 대한 미안함으로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본인이 추천한 종목이 어떻게 되든 수수료만 챙기고 있는 자기 모습에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약정금액은 따지지 않고 고객의 수익률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하지만 주 대표처럼 매도 리포트를 낸다는 생각까지는 못했다.”

    ▼ 의무적으로 매도 리포트를 내도록 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

    “낼 필요는 있지만, 우리 현실을 감안할 때 다소 무리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여튼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주 사장이 한다. 다들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엄두를 못 내는 일이다. 삼성증권에서 개혁을 할 때도 업계에선 ‘어디 잘되나 두고 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러나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삼성증권을 필두로 많은 증권사가 자산관리 중심으로 경영 형태를 완전히 바꿨다.”

    ▼ 주진형 대표에 대해 인물평을 한다면.

    “분석력이 비상한 천재다. 하지만 누구 말마따나 옳은 소리를 좀 싸가지 없이 한다고 할까.(웃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사장인 나에게도 시도 때도 없이 들이댔던 사람이다. 곤란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조직을 위해 틀린 것은 틀리다고 말하는 사람이어서 내가 존중하고 좋아했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잘 벼린 칼’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은 주 대표의 고등학교 친구다. 2년 동안 같은 반이었고 대학도 같이 다녔다. 주 사장을 가장 잘 아는 친구 중 한 사람. 이 전 행장은 주 사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상대방이 듣기 좋든 싫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이다. 때가 덜 묻었다. 잘 벼린 칼이라고 할까. 가까이 두고 뭔가를 배우겠다고 생각하면 좋은 스승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 원래 옳은 일을 할 때 안 되는 이유나 변명을 찾으려고 하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옳은 일을 할 수 없다. 주 사장은 변명을 찾으면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늘 정공법으로 상황을 돌파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도 주 사장과 가깝다. 서울대 경제학과 77학번인 주 사장은 1978년 정 전 총리가 교수로 부임한 이후 선후배이자 사제로 각별한 친분을 쌓았다. 정 전 총리가 주 사장의 부친인 주종환 동국대 명예교수의 제자라는 점도 인연이 됐다. 주종환 교수는 경실련 고문,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 이사장 등을 지낸 인물. 주 사장은 정 전 총리가 1987년 만든 금융연구회(현 금융연구센터)의 주요 멤버로도 활동한다. 정 전 총리는 주 사장을 이렇게 평가했다.

    “바르고 창의적인 사람이다. 또 직선적이고 까칠하다. 그런 점에서 시민운동가로도 유명한 부친을 꼭 닮았다. 나에게 직언직설을 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바른말을 해주니 좋다. 작년 말 한국증권산업 현황에 대한 세미나를 할 때도 주제발표를 맡겼는데, 아주 잘했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니 이해하기도 쉬웠다. 경제 전반에 대한 자기 식견이 분명한 사람이다.”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성식 전 의원은 “선비 같은 자세, 일본 사무라이 같은 치열함, 서구적 합리성을 골고루 갖춘 인간이다. 국회의원 시절 나의 중요한 경제 분야 멘토였다”라고 그를 평했다.

    “한화증권에서 주 사장이 어떤 정책을 내놓았는지, 어떤 논란이 있는지 잘 안다. 나는 ‘주진형답다’고 생각했다. 주 사장은 다들 옳다고 생각하지만 용기가 없어 못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공적인 책임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불합리한 요소를 보면 참지 못한다. 그리고 그걸 바꾸려고 노력한다. 평소 경제수석감이라고 생각해왔다.”

    9월 말 기자는 주 사장을 서울 한남동에서 만난 적이 있다. 인터뷰가 아닌 사적인 자리였다. 주 대표의 대학 선배가 자리를 마련했다. 와인을 곁들인 3시간여의 저녁 식사에서 주 대표는 자신의 철학, 최근 한화증권이 추진하는 개혁에 대한 견해를 담담히 밝혔다. 구체적인 질문과 대답이 오간 자리는 아니었지만, 그의 생각을 듣기엔 충분했다. 주 사장은 “고객에게 가치 있고 직원들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고객의 돈을 이리저리 굴려 수수료를 따먹는 식의 회사 운영은 고객에게도 직원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기존의 시스템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변화를 하려고 노력했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다. 자기 자산 대비 수수료 수익을 1년 단위로 규제하면 영업팀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분기당 목표를 설정해 제시하면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관행, 시스템은 바뀌지 않는다. 문제는 시스템을 인정하면서도 돌파구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진짜 챌린저다.”

    “경영자는 실적으로 말한다”

    주 사장은 관행과 시스템을 핑계 삼아선 안 된다는 말도 강조했다. “그럼에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교수인 부친의 말을 언제나 마음속에 되새긴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땐가 내가 부친께 물었다. ‘학생들을 왜 가르치냐’고. 부친은 ‘40명 정도 학생을 모아놓고 강의를 하면 38명 정도는 강의에 관심이 없다. 그러나 뭔가를 배우려는 한두 명은 꼭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 학생들을 보면서 강의한다. 그들을 이 사회의 동량으로 키워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강단에 선다’고 했다. 아무리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도 그 속에서 꽃을 피우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난 꽃이 필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한다. 그래야 후배들이 나보다 더 나아갈 수 있다.”

    그날 만남 이후 기자는 수시로 주 사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인터뷰를 거절하며 기자에게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경영자는 옳은 말 하라고 선임한 것이 아니라 유능하다고 생각해서 시킨 것입니다. 그 유능함은 경영 성적으로 보여야 하고. 투자자 보호하고, 직원 역량 기르고, 비용 효율 추구하는 정책으로 좋은 이익을 내는 좋은 회사가 정말 될지는 내년 말이면 알게 되겠죠. 그전에 성과도 아직 없는데 인터뷰하고 다니는 것은 자기선전에 불과하므로 부적절하다고 생각해요.’

    주 사장의 개혁은 진행 중이다.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리딩 기업(삼성증권, 우리금융)에서도 완성하지 못했던 개혁을 업계 30위 회사가 해낼 수 있겠느냐”는 식의 비난도 그가 감수해야 할 몫이다. 그의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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