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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랜드에서 4000억 날린 ‘회장님’들

“규정 어겼으니 잃은 돈 내놔라”
“고객 자기책임 더 크다”(대법원)

  • 한상진 기자 | greenfish@donga.com

강원랜드에서 4000억 날린 ‘회장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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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랜드에서 4000억 날린 ‘회장님’들

강원랜드에서 360억 원을 잃은 뒤 소송을 시작한 정덕 씨. 그는 현재 도박피해자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다.

2009년 12월 소송을 제기한 문모 씨의 경우 향후 대법원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된다. 강원랜드가 본인의 출입제한 요청을 받았음에도 적절한 조치와 기간 경과 없이 출입제한을 풀어줘 거액의 돈을 잃도록 한 것이 하급심에서 인정됐기 때문. 2006년 3월경 문씨는 스스로 출입제한을 요청하면서 강원랜드 측에 ‘영구 출입제한’을 요구했지만 다음 달 도박중독센터의 상담을 거친 뒤 출입정지가 해제됐다.

문씨는 한 지방 도시에서 유명한 냉면집을 운영하며 상당한 부를 축적했고, 이후 부동산 사업에도 뛰어들어 수백억 원의 자산가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부터 약 3년간 강원랜드를 211회 출입하며 60억 원이 넘는 돈을 잃었다.

2010년 5월 소송을 시작한 오모 씨는 재계의 풍운아로 불리던 인물이다. 대전 모 백화점 설립자인 고(故) 오OO 회장의 장남으로 40대 초반에 부회장을 맡아 1990년대 중반까지 백화점과 대형마트를 운영하며 대전지역 유통업계를 쥐락펴락했다. 1997년 9월에는 한강 이남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고 알려진 백화점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해 8월 오씨는 당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된 부유층 해외 원정도박 사건으로 구속됐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한판에 최고 3만 달러짜리 도박을 벌여 30억 원가량을 잃었다. 환치기 수법으로 도박자금을 미국으로 빼돌린 정황도 드러났다. 당시 사건에는 오씨 같은 기업인, 언론사 사주, 폭력조직 두목 여○○, 판사 출신 변호사 홍○○, 개그맨 장○○, 가수 양○○ 씨 등이 연루돼 화제가 됐다.

소송 기록에 따르면, 오씨는 2000년대 초반 스몰카지노 시절부터 강원랜드를 출입하며 200억 원 정도를 잃었다. 그 역시 매번 병정을 대동했다. 2010년 12월 1심에선 일부 승소했지만 이듬해 고등법원에서 패소했다. 본인이 직접 소송에 나서지 않고 채권양도 방법으로 지인을 통해 소송신탁을 한 게 문제가 됐다. 오씨는 2심이 진행 중이던 2011년 6월 췌장암으로 투병하다 사망했다. 그의 지인은 “사업 실패, 도박 문제 등으로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고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고 전했다.



소송 중 강원랜드와 조정을 하고 소를 취하한 사람도 있다. 강원랜드를 상대로 소송을 벌인 10명 중 유일한 여성인 최○○ 씨다. 최씨의 피해금액은 20억 원 정도로 그 가운데 가장 적었다.

잠재적 도박중독자 줄어

소송을 진행하면서 고소인들은 강원랜드에 게임 기록 제출을 요구했다. 처음 정씨 사건이 진행될 때만 해도 강원랜드는 게임 기록을 순순히 내놨다. 그러나 소송이 진행되면서 강원랜드가 자료 제출에 소극적이었다고 당사자들은 주장한다. “병정의 존재를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로 쓰인 게 이유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씨 이외의 도박피해자들의 경우 강원랜드가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병정의 존재를 입증하기가 어려워졌다고 한다. 진짜 고객과 병정의 게임 시간 등이 거의 일치하고, 병정의 승패가 대부분 0으로 기록된 정씨 기록과는 달리 다른 사람들의 경우 진짜 고객과 병정의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정씨는 강원랜드가 자료를 조작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정씨는 “내가 1심에서 이긴 뒤 강원랜드는 우리나라 최고 로펌인 김앤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이때부터 재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자료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8년 동안의 소송으로 도박피해자들과 강원랜드는 피차 지칠 대로 지쳤다. 대법원에서 앞으로 어떤 결론을 내릴지도 모른다. 당장 원고 패소 판결로 끝난 정씨는 파기환송된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 변호인을 선임, 재도전에 나섰다. 아직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10건의 소송이 가져온 긍정적인 효과도 부정할 수 없다. 무엇보다 원고인 도박피해자들이 도박을 끊은 것, 잠재적 도박중독자 수가 줄어든 것이 가장 큰 효과다. 소송이 줄을 이루자 강원랜드는 회원영업장의 운영 및 게임 방식을 바꾸는 변화를 시도했다. 병정이 생긴 주요 원인인 1인당 베팅 상한을 없애고 대신 ‘디퍼런스 룰’을 적용해 병정의 존재 이유를 없애버렸다.

디퍼런스룰은 1인당 베팅 상한선이 아닌 뱅커와 플레이어간 베팅액 차이만 규제하는 바카라 게임 방식이다. 현재 강원랜드 VIP실의 디퍼런스는 3000만원이다.디퍼런스 룰이 사행성을 더 높인다는 의견도 있지만 어쨌든 병정을 없앤 것은 긍정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강원랜드 관계자들에 따르면 회원영업장을 자유롭게 드나들던 사채업자들도 대부분 사라졌다고 한다. 강원랜드 측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 10건의 소송은 강원랜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좀더 고객 중심적이고 선진화한 카지노로 나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자평했다.

Interview | 강원랜드 상대 소송 맡은 정해원 변호사

“자기책임 원칙만 강조한 판결 아쉽다”


강원랜드에서 4000억 날린 ‘회장님’들
정해원 변호사는 강원랜드를 상대로 한 소송 대부분을 맡았다. 도박 관련 손해배상 소송은 국제적으로도 사례가 많지 않고 복잡하다. 카지노의 불법을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정 변호사는 지난 8년간 외국 사례를 샅샅이 뒤지고 강원랜드를 상대로 기록을 받아냈다. 법무법인 화우, 김앤장 같은 대형 로펌에 홀로 맞섰고 결국 승소판결을 받기도 했다. 사법시험 20회 수석합격자로 검사로도 일했던 그는 왜 이런 소송을 맡게 된 것일까.

-어떻게 강원랜드 관련 소송을 맡게 됐나.

“강원랜드 카지노 개장 초 2~3년간 출입한 일이 있다. 수많은 사람이 전 재산을 탕진하는 것을 목격했다. 고객이 자제심을 잃은 잘못도 있지만, 강원랜드의 운영 방식에도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강원랜드에서 전 재산을 날린 정모 회장을 만났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잘못이라고 봤나.

“1인당 베팅 한도가 1000만 원으로 제한됐지만 실제로는 그 6배까지 베팅을 허용했다. 대리 베팅을 해주는 ‘병정’과 하루에 10%라는 초금리를 받는 사채업자(꽁지)들이 카지노에 공공연히 입장했다. 이들에 대한 출입제한 규정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8년간 진행된 소송의 주요 쟁점은.

“강원랜드가 출입제한 규정, 베팅 한도제한 규정, 자금대여행위 금지 규정 등을 위배했는지 여부다. 1심 법원은 외국 사례까지 참조해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소송을 하는 10명의 사례가 비슷하다. 10명이 강원랜드에서 잃었다고 주장하는 돈이 모두 4000억 원에 달한다.”

-최근 10건 중 3건에 대해 대법원 판결이 나왔는데.

“정모 회장 사건에 대한 판결이 8월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선고됐고, 9월 25일 두 건이 판결을 받았다. 전원합의체는 출입제한규정을 위반한 경우에는 불법행위가 성립된다고 했으나, 베팅 한도제한 규정을 위반한 경우는 불법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자기책임의 원칙’을 강조한 것이다. 6대 7로 졌다. 너무 아쉽다.”

-어떻게 평가하나.

“아쉬운 점이 많다. 특히 베팅 제한 규정 위반을 인정하지 않은 부분이. 우리는 그간 강원랜드가 법규를 위반한 부분에 대해 손해배상을 하라고 요구했다. 고객이 게임을 해 잃은 손해를 무조건 다 배상하라는 요구가 아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강원랜드가 대리 베팅 제한 규정을 위반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자기책임의 원칙’을 내세워 강원랜드의 책임을 면책해줬다. 납득하기 힘들다.”

-외국에도 이런 소송 사례가 있나.

“흔치 않다. 외국은 대부분 개인이 카지노를 운영하기 때문에 소송이 제기되더라도 도중에 합의하고 끝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강원랜드 사건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원용될 수 있는 리딩 케이스가 될 수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 카지노 산업이 어떻게 발전해야 한다고 보나.

“고객 시각에서 보면 카지노산업으로 인한 폐해가 작지 않다. 그러나 국가경제 차원의 긍정적인 효과가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일본, 중국과 가까워 카지노산업 발전의 적지(適地)다. 장기적으로는 카지노 시장 개방을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카지노에 출입하는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더욱 세심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신동아 201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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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진 기자 | greenf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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