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관심도 한 몸에 받는다. 자기가 응원하는 팀의 선수 이름은 몰라도 감독 이름은 기억하는 게 한국 프로야구의 현실이다. 팬덤도 형성된다. 한국 프로야구는 미국 메이저리그와 달리 감독 팬클럽과 후원회가 따로 있다.
전관예우 역시 확실하다. 프로야구 감독직에서 물러나면 KBO 경기위원이 되는 게 기본 코스다. 경기위원은 이른바 ‘경기 감독관’으로 불리는데 그날 경기의 심판진을 평가하고, 경기 중 벌어진 사건·사고를 정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자신이 원하면 야구해설가로도 얼마든지 활약할 수 있다. 선수 출신 야구해설가는 첫해에 7000만 원 정도를 받지만, 감독 출신 해설가는 그보다 2000만~3000만 원을 더 받는다. 현재 야구해설가 가운데 연봉 랭킹 1, 2위는 허구연 MBC SPORTS+, 이순철 SBS스포츠 해설위원이다. 두 사람은 모두 감독 출신으로 이들의 연봉은 계약금을 제외하고 1억3000만 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감독병’ 앓는 이 많아
“감독직은 마약이자 섹스다.”
올 초 만난 전직 감독 A씨는 감독직을 마약에 비유했다. ‘감독이나 마약이나 한번 맛을 들이면 좀체 끊을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렇다면 감독직을 섹스에 비유한 건 왜일까.
A씨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탈출하거나 내가 낸 작전이 통했을 때, 그리고 팀이 극적인 승리를 거뒀을 때의 쾌감이 사정할 때의 기분만큼이나 짜릿하기 때문”이라며 “감독 노릇 못 해본 이들은 아마 그 기분을 모를 것”이라고 단언했다.
전직 감독 C씨는 이른바 ‘감독병 환자’로 불리는 이다. C씨는 현직 감독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감독직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감독 자리만 났다 하면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자기를 도와달라고 읍소했다. 주변에서 ‘노욕(老慾)’이라 손가락질해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사석에서 “‘딱’ 한 번 더 감독을 해보면 소원이 없겠다”며 “다시 감독을 맡으면 어느 팀이라도 우승시킬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다시 감독이 되지 못했다. 그의 야구관이 현대 야구와는 맞지 않는 데다 지나친 로비가 되레 역효과를 냈기 때문이다.
김응용 전 한화 감독도 한때 ‘노욕’소리를 들었다. 2012년 겨울, 김 감독이 일흔이 넘은 나이에 한화 감독으로 복귀하자 몇몇 야구인은 “후배들에게 길을 터줘야 할 분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70이 넘은 나이에 감독을 맡느냐”고 볼멘소릴 냈다. 사실 김 감독은 노욕보단 명예회복욕이 더 강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김 감독이 한화 사령탑으로 복귀한 데는 김성근 감독의 역할이 컸다. 사정은 이렇다.
삼성 사장에서 물러나고 야인으로 지내던 2011년, 김 감독은 한 시골학교 야구부 창단식에 참석했다가 자신을 몰라보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주변에서 “김 감독님, 김 감독님” 하자 한 학부모는 김 감독에게 “혹시 김성근 감독님이냐”고 물었는데, 이때 받은 김 감독의 충격은 대단했다. 한국시리즈 우승 10회 감독인 자신을 몰라보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김성근은 알고 자기는 모른다는 게 더 큰 충격이었다.
“영원히 야인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던 김 감독은 이때 현장 복귀를 결심했고, 결국 1년 만에 뜻을 이뤘다. 결과는 좋지 못했다. 김 감독이 이끈 한화는 2년 연속 꼴찌에 머물렀고, 김 감독의 지도력도 ‘한물간 리더십’이란 혹평을 들어야 했다. 재밌는 건 김응용 감독의 현장 복귀 단서를 제공했던 김성근 감독이 한화 사령탑이 됐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도 감독 맛을 잊지 못하는 야구인들은 감독 공석이 생기기만을 기다린다. 그렇다면 과연 ‘하늘이 점지해준다는 감독’은 어떤 이들이 맡는 것일까.

11월 11일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에 입맞춤하는 류중일(왼쪽) 삼성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