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호

“2002년 ‘주종관계’에서 ‘수평관계’로”

박근혜-정윤회 미스터리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송국건 |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4-12-16 16: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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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주종관계’에서 ‘수평관계’로”
    한 신문사가 ‘VIP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청와대 문건을 폭로했다. 많은 사람은 문건 내용이 사실일 것이라고 믿는 분위기다. 반면 대통령과 청와대는 “찌라시”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검찰 수사는 보나마나일 거라는 이야기가 많다.

    국정농단과 문건 유출이라는 투 트랙으로 많은 뉴스가 쏟아진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선 듯하다. 삼삼오오 만난 자리에선 “문건 제목처럼 정윤회가 박근혜의 측근? 둘은 정말 무슨 관계일까?” 이런 궁금증을 교환한다.

    청와대 문건 작성자는 정윤회 씨가 ‘대통령비서실장 축출’을 지령한 ‘밤의 비선실장’이라고 주장한다. 문건 작성자의 상관은 신빙성이 60%를 넘는다고 했다. 정씨 부부 측 주문에 따르지 않은 문체부 국·과장을 대통령이 콕 찍어 문책했다는 취지로 당시 주무 장관은 증언한다. 대통령의 남동생은 정씨 측에게 미행당했다고 한다. 정씨는 이른바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과 전혀 접촉한 일이 없다고 했다가 통화 사실이 드러나자 말을 바꿨다. 박 대통령은 정씨를 “이미 떠난 사람”이라고 했으나 정씨는 “2년 전 대통령으로부터 감사 전화를 받았다”고 버젓이 공개한다.

    하지만 검찰 수사내용에 따르면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은 사실이라고 볼 만한 증거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한 세간의 의혹도 근거없는 헛소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를 보도한 산케이신문 기자는 기소가 돼 재판을 받는다. 공소장에 따르면 이 기사는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 검사가 수사를 제대로 했고, 이것이 진실일 수도 있다. 두 사람의 과거 친분 관계와는 별개로 말이다.

    ‘신동아’는 박 대통령과 정씨, 두 사람의 관계를 집중 조명했다. 박근혜와 정윤회, 두 인물을 논할 때 최태민과 최순실을 빼놓을 수 없다. 여권 인사 A씨는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인지 모르지만 십자가를 그릴 수 있다”고 말한다. 세로축이 최태민-정윤회-박근혜이고 가로축이 정윤회-최순실-박근혜라는 것이다. 전자는 장인과 사위와 대통령의 특수관계를, 후자는 남편과 아내와 대통령의 특수관계를 나타낸다고 한다.



    “‘한국의 라스푸틴’이 박근혜 지배”

    고(故) 최태민 목사의 딸이 최순실 씨다. 최씨의 남편이 정윤회 씨였다. 이 부부는 2014년 초 이혼했다. 박 대통령은 이 세 사람 모두와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 최태민은 사회운동 동반자였고, 최순실은 말벗이었다 하고, 정윤회는 비서였다. A씨는 “박 대통령이 세 명을 감싸 안는 대응방식이 수십 년째 똑같다”고 말한다.

    먼저 최태민.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7년 최 목사를 친국(親鞫)했다. ‘신동아’가 입수한 중앙정보부 ‘최태민 보고서’는 최 목사에 대해 “1965년 유가증권 위조 혐의로 입건돼 4년 도피생활, 71년 불교·기독교·천주교를 복합한 ‘영혼합일법’ 창업, 74년 ‘태자마마’ 자칭”이라고 썼다. 또 보고서는 횡령·사기·변호사법 위반·이권 개입 등 44건의 의혹을 열거했다.

    유신시절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김계원·김정렴, 5공화국 실세 이학봉도 “문제 많은 인물”이라고 했다. 최 목사는 1975년 꿈에 육영수 여사를 봤다며 박근혜에게 접근해 환심을 산 뒤 새마음봉사단을 함께 이끈 것으로 보고서에 적혀 있다. 그러나 김계원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20대의 박근혜는 “아주 선량한 사람인데 중앙정보부가 모략한다”고 줄곧 최 목사를 두둔했다.

    박 대통령이 육영재단 이사장일 때인 1986년 3월 최순실 씨는 이 재단 부설 유치원 원장이 됐다. 1987년과 1990년 육영재단에선 “최태민의 전횡을 반대한다”는 내부 반발이 터졌다. 1990년 8월 남동생 박지만과 여동생 박근령은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최태민의 손아귀에서 언니를 구해달라”는 탄원서를 보냈다.

    2007년 대선 당시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본국에 보낸 박근혜 후보 관련 외교전문은 이후 ‘위키리크스’에 해킹됐다. 버시바우 대사는 이 전문에 “‘한국의 라스푸틴(제정 러시아 때 황실을 농단한 괴승)’인 최태민이 박근혜를 지배해왔고 그 결과 최태민의 자녀들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는 소문이 만연하다”라고 썼다.

    그러나 최태민 일가의 육영재단 전횡 논란에 대해 2007년 박근혜 후보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청문회에서 “최씨는 재단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순전히 오해다”라며 적극 보호했다.

    한결같은 대응

    “2002년 ‘주종관계’에서 ‘수평관계’로”

    고(故) 최태민 목사

    최순실 씨의 전 남편 정윤회 씨의 국정농단 내용을 담은 청와대 문건이 보도되자 청와대 관계자들은 신문사 기자들을 고소했다. 검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박 대통령은 “찌라시에 나오는 그런 얘기들…”이라며 문건 내용을 허위사실로 단정했다.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는 논란까지 감수하면서 정씨 쪽을 편든 것이다. A씨는 “과거 영상을 다시 돌려 보는 느낌이 든다. 박 대통령의 대응은 큰 영애 때나 2007년 때나 지금이나 초지일관 같다. 최씨 일가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물론 최씨 일가가 억울하게 비난을 받는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최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정식 목사’라고 한다. 그는 1990년 “나의 ‘육영수 현몽’ 이야기가 따님에게 먹히겠는가”라고 중정 보고서를 반박했다. 정윤회 씨는 “최태민의 혐의가 김재규의 조작이었다”는 최필립 전 정수장학회 이사장의 ‘신동아’ 인터뷰 기사를 매우 좋아한다. 최순실 씨는 육영재단이나 박 대통령 덕에 재산을 불린 게 아니라고 반박한다.

    정윤회 씨는 1974년 보인상고를 졸업한 뒤 1981년 대한항공 보안승무원으로 입사했다. 성명 불상의 대학(본인이 미공개)을 나와 1993년 경희대에서 관광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98년 박 대통령의 정계 입문 선거를 도와 의원에 당선시켰고 비서실장이 됐다. 사람들은 1995년 결혼한 그의 부인 최순실 씨와 박근혜 의원이 잘 아는 사이라 그가 부인을 매개로 박 의원 쪽에서 근무하게 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정씨는 결혼 이전부터 별도로 박 대통령과 인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최태민 목사의 비서 겸 운전기사 노릇도 했다는 풍문이 있다. 몇몇 사람은 그가 1990년대 ‘박근혜 육영재단 이사장 비서실장’ 명함을 갖고 다녔다고 증언했다. 이 증언은 설득력이 있다. 정씨가 박근혜 의원실에서 ‘비서실장’이라는 직함을 쓴 것도 이 연장선이었다고 한다. 박 대통령도 2007년 ‘월간조선’ 서면 인터뷰에서 정씨에 대해 “육영재단 때부터 일을 도왔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중앙일간지 정치부 기자 출신의 모 대기업 임원 B씨는 정씨가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를 증언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정씨는 최태민 목사의 부탁에 의해 박 대통령을 돕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 목사는 정씨와 최순실 씨가 결혼하기 1년 전인 1994년 세상을 떠났다. B씨는 “저, 정윤회 잘 알아요”라면서 2000년대 초 정씨와 박 대통령의 관계, 정씨와 현 문고리 3인방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이야기했다. 다음은 B씨와의 일문일답이다.

    “朴 전화 늘 정윤회가 받아”

    ▼ 정윤회 씨랑 어떻게 만난 거죠?

    “제가 중앙일간지 기자로 한나라당 출입할 때 박근혜 의원 마크맨이었어요. 그때 정윤회 씨가 박근혜 의원 비서실장이었어요. 탈당해서 한국미래연합 창당하기 전에요.”

    ▼ 초선의원일 때?

    “네. 제가 박근혜 의원의 휴대전화로 연락하잖아요? 그러면 늘 정 실장이 받아요. 제가 ‘○○○ 기잡니다. 박 의원과 이러이러한 이유로 통화 좀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겠죠? 그러면 정 실장은 ‘아, 지금 행사 중이신데 나중에 전화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죠.”

    ▼ 정 실장이 박 대통령의 ‘원조 문고리 권력’이었던 셈이네요.

    “‘공주’라 콜백 안 오겠거니 했는데 제겐 해왔어요. ‘저, 박근혜입니다’ 이런 식으로. ‘이회창 대세론’ 시절이었어요. 선배 기자가 ‘이회창 까는 내용으로 박근혜 코멘트 받아오라’고 시켜서 전화한 건데, 의외로 취재가 잘 됐어요. 이후 정 실장을 의원실에서 자주 봤고 식사도 몇 차례 했고….”

    ▼ 어떻던가요.

    “엊그제 검찰 출두할 때 모습 그대로.”

    좀 이상하게 나온 ‘중앙일보’ 인터뷰 사진과 비교하면 검찰청사에 출두한 정씨의 실물은 훨씬 세련돼 보였다. 의도적으로 이미지를 가꾼 듯했다. 그는 머리를 염색했고 뿔테 안경을 착용해 부드러운 이미지를 부각했다. 날씬한 체형을 강조하는 양복을 입었다. 타고 온 구형 에쿠스 승용차는 ‘신뢰감’과 동시에 ‘튀지 않는 느낌’을 줬다. 전체적으로 ‘대학 학장’ 같은 인상을 풍겼다.

    ▼ 그분, 자기관리를 잘한 것 같네요.

    “잘한 거죠. 그런데 시중에서 떠도는, ‘박근혜의 연인’이니, 그런 건 날조라고 생각해요.”

    ▼ 왜요?

    “정윤회 씨는 주종관계로 박 대통령을 대했어요. 당시 그는 사석에서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최태민 목사가 자기에게 ‘박근혜를 도와주라’고 부탁했다고. 정씨가 나중에 최 목사의 사위가 되잖아요. 그전에 최 목사한테서 도와주라는 말을, 도와줘야 한다는 그런 지시 같은 걸 받았대요.”

    ▼ 최 목사의 명령이 정윤회 씨를 박 대통령과 숙명적으로 연결했다?

    “내가 받은 느낌은…. ‘박근혜를 도와주라’는, 분명한 그걸 받고 왔기 때문에 철저한 주종관계이고….”

    B씨의 말에 따르면, 최 목사는 자기 대신 박 대통령을 헌신적으로 도와줄 사람으로 정씨를 지목한 것으로 보인다.

    ▼ 박 대통령도 정씨가 최 목사로부터 그런 영적 계시 내지 명령 비슷한 걸 받아 자기를 도우러 왔으니 정씨를 누구보다 신뢰한 거라는 얘깁니까.

    “정씨는 정말 몸조심을 했어요. 어디 나대고 이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림자 같았어요. 있는 듯 없는 듯. 당시엔 군인 출신인줄 알았죠. 워낙 깍듯해서.”

    ▼ 주종관계라는 게, 예를 들면….

    “저희 정치부 기자 네댓 명이랑 박근혜 의원이랑 식사할 때면 늘 정윤회 실장이 박 의원을 모셔 와요. 그리고 정 실장은 방 밖에서 대기하고.”

    “이 사람, 진짜 수하네”

    ▼ 식사 자리에 동석하지 않고?

    “(손을 저으며) 아이…. 다른 의원실에선 보좌관이 동석하기도 해요. 그런데 여기는 절대 그런 일 없어요. 박 의원이 나가면 딱 앞에 있어요. 바로 박 의원 챙기고. ‘야, 이 사람 진짜 수하네’ 이런 느낌?”

    사정기관 관계자 C씨는 “비서실장 정윤회는 법적으론 ‘무보수 입법보조원’이었다. 정씨가 직접 지금의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을 박근혜 의원실 보좌관·비서관으로 채용해 이들을 거느렸지만 정씨 본인은 월급을 한 푼도 가져가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C씨의 말이다.

    “한창 왕성하게 일할 나이에 6~7년(1998~2004) 동안이나 ‘무보수 풀타임’으로 박근혜 한 사람을 섬긴다는 게 보통 마음가짐으로 되는 일이 아니죠. 정치판에서 이런 사례를 본 적이 없어요. 2004년 비서실장직을 그만둔 것도 ‘최태민 사위’라는 자신의 타이틀이 박 대통령 대선 가도에 방해가 될까봐 그런 거죠. 은둔한 뒤에도 계속 박 대통령을 몰래 도왔을 거예요. 안 그랬을 이유가 없잖아요. 그래서 박근혜와 정윤회, 두 사람의 관계는 불가사의하게 느껴지는 거죠.”

    ‘최태민의 말씀’은 이 불가사의를 어느 정도 풀어줄 해답이 될 듯했다. 최태민-정윤회-박근혜 세 사람을 이어주는 맥락에 대한 ‘내재적 접근’이 있어야 현상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박 대통령은 2007년 경선 때 “대통령이 돼도 최 목사 가족과 계속 관계를 가질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정윤회 비서는 능력이 있어 도와달라고 했고 실무 도움을 받았다. 법적으로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실력이 있는 사람이면 쓸 수도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도 “그(정윤회 씨)는 성실한 사람이다. 나는 사람과의 인연을 많이 맺는 편도 아니지만 여간해서 인연을 끊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했다.

    정씨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뢰가 어느 정도 깊은지 충분히 읽힌다. 또한 주변의 시선만 아니면 얼마든지 드러내놓고 사람을 쓰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느껴진다. 다른 한편으로 박 대통령이 정씨와 계속 접촉해온 것 같은 뉘앙스도 감지된다. 수년간 완전히 인연을 끊은 사람에겐 하기 힘든 말들이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B씨와의 대화 내용이다.

    ▼ 그러나 적지 않은 의원이 당시 ‘박근혜 의원과 통화가 잘 안 된다, 정 실장이 다 자른다’고 정 실장을 비난했다던데….

    “당시 한나라당 출입기자들도 다들 ‘박근혜랑은 통화가 안 된다’고 투덜거렸죠. 그러나 저는 잘 됐어요.”

    ▼ 정 실장 밑에 있던 이재만 보좌관과 안봉근·정호성 비서관이 지금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으로 불리는데.

    “정치부 기자들이 겉멋이 좀 들었잖아요. 저는 박근혜 의원 쪽과 연락할 일이 있으면 정 실장 하고만 상대했죠. 그 밑에 보좌진은 잘 보이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정호성 비서관은 기억나요. 딱 봐도 또릿또릿했거든요. ‘이 친구 똑똑한 친구네’ ‘참 유능하다’ 싶은. 이재만·안봉근, 이쪽은 특별한 기억이 없어요.”

    한나라당 당직자 출신인 여권 인사 D씨는 “정윤회와 문고리 3인 간 위계질서는 어마어마했다. 정씨가 군기를 확실히 잡더라”라고 말한다. 이어지는 D씨의 설명이다.

    “문고리 3인 중 이재만 씨가 보좌관으로 서열이 제일 높았죠. 박근혜 의원이 2002년 한나라당에 복당한 뒤로 정 실장과 이 보좌관 두 사람이 박 의원을 수행했어요. 박 의원이 가령 이회창 총재 집무실에 들어가면 정 실장은 부속실에 앉아서 보좌진이랑 수다를 떨어요. 이재만은 문밖 복도에 대기하게 해요. 공간으로써 박근혜, 본인(정윤회), 문고리 3자 간에 격차를 두는 거죠.”

    “2002년 ‘주종관계’에서 ‘수평관계’로”

    최순실 씨 명의의 서울 강남구 신사동 빌딩.



    꼬리 잡힌 ‘정윤회 강남팀’?

    D씨는 어느 때부터인가 박 의원과 정 실장이 주종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이동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박 의원이 2002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 대표가 되고 정 실장이 대표 비서실장을 할 때부터 정 실장은 박 의원 옆자리에 앉아 외부 인사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D씨는 “박 의원이 집무실 안에 있는데 정 실장이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간다든지, 정 실장이 국회 내 지인들과 담소하면서 ‘박 의원과 정 실장이 거의 수평적 관계구나’라는 인상을 줄 정도의 표현을 스스럼없이 쓴다든지…”라고 설명했다.

    2004년 이전 정씨를 자주 봤다는 한나라당 당직자 출신 E씨는 “정씨는 문고리 권력의 발생 원리를 체득했고 이를 보좌진에게 물려준 것 같다. 이들은 공개 활동이 어려운 정씨와 박 의원을 이어주는 구실을 해왔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E씨는 “지금도 이러고 있느냐가 모든 문제의 핵심 아니겠냐”고 했다.

    박 대통령과 3인방은 정씨와의 접촉을 강하게 부인한다. 그러나 반대 정황을 언급한 증언도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이 이사장으로 있던 한 단체의 관계자는 기자에게 “2000년대 중반 박 대통령에게 ‘최태민 사위 정윤회 씨와의 절연’을 건의했다가 관계가 소원해진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이진우 창조경제연구원 부원장은 ‘브레이크뉴스’라는 인터넷 매체를 운영하다 2007년 박근혜 경선 캠프에서 온라인 홍보 참모로 활동했다. 이 부원장은 2008년경 인터넷에 “박근혜 후보의 의원실 보좌진이 삼성동을 오가며 정윤회 씨를 만난 뒤 캠프 내 공론이 180도 수정되는 것을 목격하며 삼성동팀의 위력을 실감했다”고 썼다. 그는 얼마 뒤 이 글을 삭제했다.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 정윤회 씨나 해당 보좌진이 그 글에 문제를 제기했나요.

    “전혀. 갓 마흔이 된 시절, 혈기가 남아 있을 때 썼어요. 그러나 같이 고생한 동료들이고 전우들이기도 해서 글을 내렸어요. 선거 하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 있는 건데 하나하나 따져 잘 했네, 못 했네 그럴 상황은 아니라고 봤죠.”

    ▼ 글에서 사실을 날조한 건 아니라는 건가요.

    “선거 패배는 공동 책임이죠. 제가 그 글을 쓸 자격이 없죠. 캠프에 있었던 기간도 짧았고.”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현직 의원으로 이명박 캠프에 있었던 F 전 의원은 “정윤회 씨가 운영하는 박근혜 후보의 비밀 대선 캠프가 신사동 ‘한국문화재단’이다. 박 후보의 주요 공약과 각종 정치 현안이 여기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박 후보는 이 재단에 국회 직원 2명과 정수장학회에서 급여를 받는 직원 2명 등 5명을 상주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정윤회 강남팀(신사동팀·논현동팀·삼성동팀) 버전’의 일부가 노출된 것으로 비쳤다.

    정치권 인사 G씨는 “이상렬 전 EG건설 회장은 정씨와 함께 박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으로 꼽히는데 두 사람은 가끔 술을 마셨다. 이들은 숨은 실세들이 드나든 신사동팀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F 전 의원은 2007년 “‘박근혜 후보의 집권은 최태민 일족의 집권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고도 했다.

    F 전 의원은 최근 기자에게 “캠프 내 법무팀과 네거티브대응팀이 검증하고 걸러준 정보들을 갖고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윤회 씨 주변에 강남팀? 거기서 박근혜 후보와 관련된 중요한 결정을 하는 것 아니냐’ ‘박 캠프 내 의원들조차 도대체 어디서 결정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는 이야기를 우리도 전해 들었다”고 했다. F 전 의원은 “정윤회 씨 건을 폭로한 뒤 고소를 당하거나 제재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덧붙였다.

    정윤회 씨는 2014년 7월 언론 인터뷰에서 “2007년 비서실장을 그만둔 이래 7년간 야인으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엔 정씨가 ‘2004년’을 ‘2007년’으로 착각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뒤이어 “7년 전 나는 ‘잘린 것’이다”라며 ‘2007년’임을 재확인했다. 그의 이런 술회를 보면, 그가 대외적으로 박 대통령 곁을 완전히 떠난 것으로 알려진 2004~2007년에도 실제론 비서실장 노릇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인리히의 법칙

    박 대통령이 “이미 떠난 사람”이라고 한 것과 달리, 정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2012년 대선 직후 박 대통령 당선인으로부터 ‘감사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맥락으로 보면 ‘대통령에 될 수 있게 도와준 공로’에 대한 감사로 읽힌다. 당시 당선인에게서 감사 전화를 받은 이는 극소수. 정씨의 공로가 적지 않았다는 뜻이다. 정씨가 2012년 대선 때도 음지에서 박 대통령을 적극 도운 것으로 비칠 수 있다.

    결국 모든 문제는 취임 후 상황으로 귀결된다. 정씨는 인터뷰에서 “문고리 3인과 접촉이 없다. 인간적 정의로 보면 이들이 나에게 연락하는 게 도리인데 섭섭하다”고 했다. 문고리 3인 중 한 명인 이재만 총무비서관도 국회에서 “2003년엔가, 2004년엔가 정씨를 마지막으로 만났다”고 했다.

    그러나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증언으로 정씨가 문고리 3인 중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두 차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과 한 차례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박지만 씨 미행 건으로 정씨가 조응천 당시 비서관에게 전화했으나 조 비서관이 받지 않자 이 비서관이 조 비서관에게 전화해 “정윤회 씨 전화 좀 받으시죠”라고 했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VIP측근(정윤회) 동향’ 문건이 폭로된 후 정씨는 이·안 비서관에게 전화해 “이제는 나는 나대로 할 테니까, 그쪽 3인방도 이제 3인방이 할 수 있는 걸 하라”고 했다고 한다.

    여당 당직자 출신 D씨는 “정씨가 조응천 비서관의 전화번호, 조사담당자가 박관천 행정관이라는 사실, 박 행정관의 전화번호를 청와대 측과 연락하지 않고 어떻게 알아낼 수 있었겠나. ‘하인리히의 법칙’이 적용될 사안 같다”고 말했다. 하인리히 법칙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300개의 사건이 있어야 비로소 1개의 사건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또 D씨는 “공무원 전담 청와대 비서관에게 민간인의 전화를 받으라고 한 건 부당한 요구다. 정씨가 그런 부당한 요구를 해도 이재만 비서관이 그대로 이행할 정도로 두 사람이 여전히 ‘상명하복 관계’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3인방이 할 수 있는 걸 하라’는 정씨의 말이 명령처럼 들리기도 한다. 실제로, 정씨 말대로 3인방이 언론을 고소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문건이 처음 폭로됐을 때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보도에 나온 내용은 시중에 근거 없는 풍설을 모은 이른바 찌라시(증권가 정보지)에 불과한 것”이라고 브리핑했다. 그러나 수십여 기업과 유료 공급 계약을 맺은 증권가 정보지 생산업체의 G 대표는 기자에게 “‘정윤회 씨와 청와대의 십상시(十常侍)가 모여 김기춘 사퇴설 확산을 논의했다’는 점을 비롯한 청와대 문건의 모든 내용은, 단언컨대 시중에 배포된 어떤 찌라시에도 나온 적이 없다. 찌라시엔 단순히 ‘김기춘 사퇴설’만 떴는데 이는 오히려 문건 내용의 신빙성을 높이는 방증일 뿐”이라고 말했다.

    “찌라시에 난 적 없다”

    G 대표는 “최근 10여 년간 찌라시 단속이 이어졌다. ‘정윤회와 십상시 회동’ 같은 내용은 (작성자가) 구속을 각오하지 않으면 찌라시에 못 싣는다. 그런데도 무슨 일만 터지면 찌라시 탓을 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이종훈 시사평론가는 기자에게 “‘찌라시’ ‘진돗개’ ‘섭섭’ 등 박 대통령과 정윤회 씨, 문고리 3인방이 시차를 두고 특정 표현들을 공유해 쓰는 점이 주목된다”고 말했다.

    사실 여권에선, ‘정윤회 씨 부부 측 주문에 따르지 않은 문체부 국·과장을 박 대통령이 콕 찍어 문책했다’는 취지의 유진룡 전 장관 증언을 청와대 문건보다 더 걱정한다. ‘정씨와 문고리 3인방 연결’ 논란에서 ‘문고리 3인방을 매개로 한 정씨 부부와 박 대통령 연결’ 논란으로 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결이 국정농단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 말이다.

    이종훈 시사평론가는 “오찬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세상이 끝나야 고민이 끝난다’고 말했는데, 사람들이 밥 먹다 ‘헉’ 하고 체했을 것 같다”고 했다. 대통령이 직접 국·과장을 경질한 것이나 검찰 수사 중에 정씨 쪽 편을 들어 특검의 빌미를 준 것이나 ‘평소의 박근혜답지 않다’는 이야기다. 이 평론가는 “사실이 아니겠지만, 정윤회·최순실 씨 일에 대통령이 유독 평정심을 잃은 건 아닌지 우려되기도 한다”고 했다.

    청와대는 검찰에서 ‘문건 내용이 근거 없다’는 식의 수사결과가 나오면 문제가 진정될 것이라고 본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는 기자에게 “청와대 문건? 어떤 놈이 그런 장난을 치는지…김기춘 비서실장만큼 단단하게 일하는 사람을 못 봤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원하는 수사결과가 나오더라도 일이 다르게 흘러갈 가능성 또한 없지 않다. 윤여준 전 장관(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시절 여의도연구소 소장 역임)에게 연락했더니 “요즘 인터뷰 안 한다. 그러나 전화가 왔으니 몇 마디 하겠다”며 말문을 뗐다.

    ▼ 박 대통령은 문건 내용을 ‘찌라시’ 수준이라고 했는데요.

    “찌라시 때문에 나라가 흔들리니….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대통령이 초반부터 전면에 나섰기 때문에 검찰이 어떤 수사 결과를 발표해도 국민이 안 믿을 겁니다. 야당은 공격할 거고요. 그러면 검찰도 공신력을 잃고. 장기화하면 (대통령이) 아무것도 못해요. 현명하지 않은 일이에요. 만약 의혹이 사실이면 국정수행이 어려워져요.”

    “물증은 없지만 정황이…”

    ▼ 3인방이 물러나야 합니까.

    “물론입니다. 잘 모르겠지만, 3인방이란 사람들이 오랫 동안 대통령을 보좌했죠. 정윤회 씨가 그들을 뽑았다면 정씨가 대통령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 사람들이 정씨와 이야기하고 (말을) 들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물리적 거리가, 대통령과 떨어져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아요. 3인방이 대통령과 가까이 있으면 그들을 통해서 정씨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증은 없지만 정황상 그렇다는 겁니다.”

    ▼ 인사 파동이 많았죠.

    “인사 때마다 별 소문이 다 돌아다녔어요. ‘청와대 참모들도 몰랐다고 하더라’ 이런 식으로요. 그러니 대통령의 권위가 없어지죠. 권위는커녕 3인방, 비선 실세라는 말이 붙어 다니면 알 길 없는 사람들은 사실이라고 믿어버려요.”

    박찬종 변호사는 기자에게 “최경락 경위가 청와대 문건 유출 혐의로 수사 받다 자살한 건 무리한 수사가 초래한 결과”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반대편은 자살하고, 김 실장과 3인방은 자리 지키고, 검찰은 ‘허위’라고 결론내고. 이러면 대통령의 권위 상실, 공무원의 불복종, 청와대의 공동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특히 정윤회 씨를 비난했다.

    “검찰 출두할 때 보라고. ‘불장난’ 같은 말은 김기춘 실장이나 박지만 씨를 겨냥한 건데 결국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쏜 거예요. 계속 구설을 일으켜요. 이런 부류는 굉장히 위험합니다. 박 대통령이 인복이 없는 게, 아무도 호위무사로 안 나서요. 김 실장이 물러나면 저쪽(3인방)도 물러날 텐데 김 실장도 몸을 사리는 것 같아.”

    청와대 사정에 밝은 여권 인사 E씨는 “청와대 내부의 시각은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박근혜 비판론자들이 주도하는 ’정윤회와 문고리 비난 공세에 따라가야 하나?’라는 게 그쪽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E씨와의 대화 내용이다.

    “별일 없지 않나 싶어요”

    ▼ 정윤회 파문이 너무 커져버린 것 아닐까요.

    “별일 없지 않나 싶어요. 유진룡 건은 조금 꺼림칙하지만, 그것 외엔.”

    ▼ 박지만 씨와 정윤회 씨가 권력투쟁을 벌이는 양상도 드러났는데.

    “박지만 씨도 좀 웃긴 게, ‘원한에 사무친 듯한 태도’를 보이는데, 그 자체가 ‘정윤회가 세다’ 이걸 국민에게 각인하는 거잖아요. 그게 누나를 위하는 길일까요? 지만 씨는 ‘나, 그 사람 잘 몰라요’ 이래야죠. 지만 씨가 ‘정윤회=비선실세’ 등식을 성립시켰어요. 그리고 정윤회 씨가 정말 대선공신이라면 남동생 눈치를 왜 보겠어요. 지만 씨에게 ‘내가 당신 누나랑 한나라당 탈당해 풍찬노숙할 때 당신은 뭐했는데?’라고 하지 않겠어요? ”

    ▼ 만약 정윤회와 문고리 3인방 간 핵심 연결고리가 있다면 3인방 중에서도 누굴까요.

    “아마 제일 선임인 이재만 비서관이겠죠. 정호성 비서관은 무관한 것 같고. 3인방도 박 대통령과 소통이 잘 안 된다고 해요. 엄청 눈치 봐가면서 이야기해요. 행여 찍힐까봐. 정윤회 씨가 언론 인터뷰하는 거 한번 봐요. 누가 높아 보여요? 정씨는 정말 자기가 그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비쳐져요. 자세히 관찰하면 보여요. 꼭 방문을 열지 않더라도. 옛날부터 이런 말이 있었어요. ‘국회의원은 공천 따내는 재주가 있고, 정윤회는 박근혜 마음 얻는 재주가 있고.’ 좋은 뜻에서 나온 말이에요.”

    ▼ ‘문고리 3인방 물러나라’고 난리인데요.

    “무슨 불법을 저질렀죠? 박 대통령 스타일로 볼 때 귓등으로 듣고 말 걸요. 3인방이 요즘 전전긍긍하는 건 사실인데, 아무 일 없을 것 같네요.”

    ▼ 그러나 비선실세와 3인방의 국정농단이 있었다고 믿는 사람도 많습니다.

    “지금 헤매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데, 국정이 없는데 어떻게 농단하죠?”

    ▼ 정윤회 씨는 요즘 어떻게 생계를 이어갑니까.

    “그게 미스터리이긴 해요. 이혼할 때 비밀유지 조건으로 전 재산 줬다는데.”

    ▼ 문건에 등장하는 문고리 3인방 외 나머지 청와대 비서관·행정관들은.

    “문고리 이외엔 국정농단 논란에서 다 ‘열외’죠. 실무자들일 뿐이고요. VIP와 연결되는 사람들이 아니죠. 백번을 양보해, 이들이 정윤회 씨와 중국집에서 만났다고 해도 별문제 안 된다고 봐요. 정씨가 ‘밑에 애들도 데려와, 밥 한 끼 사줄게’ 이런 차원일 테니. 세 명이면 다 되는데 열 명씩 거느릴 이유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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