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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號 70돌

“이분법 사고, 언어의 타락에 소통과 발전 가로막혔다”

김호기 교수가 만난 우리시대 지식인 / 소설가 김훈

  •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kimhoki@yonsei.ac.kr

“이분법 사고, 언어의 타락에 소통과 발전 가로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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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선생이 가진 정서 중 하나가 사라져가는 것들, 소멸돼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인 것 같습니다. 타고난 DNA인가요.

김 훈 내 자신에 대한 위안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살아가려면 나를 위로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지요.

사자와 얼룩말의 공생

김호기 무엇이 인문학의 위기를 가져왔을까요. 인문학의 위기는 정신의 위기이자 가치의 위기입니다. 왜 우리 사회는 정신과 가치를 제대로 존중하지 않을까요. 김광주 선생이 지키려 했던 정신과 가치, 이런 것들이 1950~60년대 척박한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하고 좌절된 셈입니다.

김 훈 아버지 시대는 전쟁에 의해 인간이 저지른 만행을 증명했어요. 특히 6·25전쟁은 강대국에 의한, 이념 간 전쟁의 측면이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동족상잔의 비극이에요. 그 동족상잔을 지금 거의 거론하지 않잖아요. 우리끼리 찔러 죽인 거예요. 대검으로 찔러 죽인 거지요. 그것이 이념에 의한 결과였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해요. 동족상잔의 문제에 대한 도덕적 반성을 심화하는 게 필요해요.



그리고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것은 돈이에요. 돈이라는 유일신이 세계를 조직하고 질서를 부여하는데 거기서 이탈하는 자는 다 죽게 돼 있어요. 돈의 힘이 지배하는 세상은 일종의 약육강식 세계인데, 동물 세계에서의 약육강식하고는 전혀 다른 거예요. 사자는 얼룩말을 한 마리만 잡아먹어요. 사자가 왕이라고 해서 얼룩말 생태계 전부를 지배하는 게 아니에요. 얼룩말은 약자이지만 그 약자로서의 생태계를 온전히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거죠. 그런데 돈이 세계를 지배하면 전체를 완전히 장악하고 복종시키는 거예요. 인문학적 가치도 그런 지배력에 짓눌리는 것이죠. 그러면서 거기에 저항할 수 없게 된 셈이에요.

물 속에 빠져 있는 아이들

“이분법 사고, 언어의 타락에 소통과 발전 가로막혔다”
김호기 사회학을 공부하는 제가 보기에 우리 사회에는 특별한 섬김을 받는 세 신이 있습니다. 돈이 가장 중요한 것 같고요. 여기에 권력과 몸이 더해집니다. 욕망의 시대가 만개한 것 같습니다.

김 훈 몸이 이미지화하면서 정치도 아주 극단적으로 이미지화해서, 정치인들이 가끔씩 재래시장에 기자들을 데리고 가서 생선을 주무르잖아요. 연탄을 나르고 시커먼 손을 내밀고요. 모든 게 이미지화하면서 삶의 서사적인 로망 같은 게 무너져가는 것이죠.

김호기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 다시 태어나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싶다는 응답이 43%인 반면,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응답은 57%였습니다. 보수세력은 산업화를 자랑하고 진보세력은 민주화에 대해 자부심이 크지만, 산업화와 민주화의 현재적 모습은 초라합니다. 입시에 시달리는 10대나 청년실업에 직면한 20대, 구조조정을 걱정하는 30~40대나 노후불안으로 우울한 고령세대를 보면 우리 사회가 일궈온 게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입니다. 얼마 전 선생은 팽목항에 다녀왔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서 있는 자리를 생생하게 증거합니다. 보수세력은 책임윤리를 강조하고 진보세력은 제도를 중시했는데, 제가 보기엔 세월호 침몰은 제도와 윤리의 이중 침몰인 것 같습니다. 팽목항을 찾아간 까닭은 무엇인지요.

김 훈 제가 그런 일에 앞장서서 나가는 사람은 아니에요. 우연히 모여 출판인과 작가들이 가보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했어요. 제가 가는 사람들 가운데 제일 연장자였어요. 그 모임에 대표성을 가진 것은 아니었죠. 갈 자리가 아닌데 왜 갔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반문이 당황스러웠지만, 갈 사람이 따로 있고 안 갈 사람이 따로 있는 건 아니잖아요.

팽목항에 갔더니 물 속에 아이들이 빠져 있다는 게 너무나 큰 고통을 주더군요. 세월호는 과적과 무리한 증축 때문에 복원력을 상실했어요. 선박 관련 책을 봤더니 그것은 물리 법칙을 어긴 거예요. 물리적 법칙을 어기면 다 죽게 돼 있어요. 살길이 없어요. 무엇 때문에 물리적 법칙을 어기게 됐느냐 하는 게 문제인 거죠. 여러 원인이 있을 거 아녜요. 선박을 운항하면서 물리적 법칙을 어긴다는 것은 죽으러 간 거죠. 원래는 고박을 안 했다는 거잖아요. 고박을 해놓고 쇠사슬로 묶어놓잖아요. 갑판원들은 그 배가 목적지에 닿기 전까지 계속 순찰을 다니면서 이 줄이 늘어졌을 때 스패너로 조여야 된다는 거예요. 단단히 묶는 고박이 중요하거든요. 컨테이너는 무거워서 조금이라도 허술하면 확 쏠리게 되니 단단히 묶어야 하는데 안 했다는 거예요.

김호기 그뿐 아니라 평형수도 뺐죠.

김 훈 물리적 법칙을 어기면 권력자라도 죽게 돼 있잖아요.

“이분법 사고, 언어의 타락에 소통과 발전 가로막혔다”

청계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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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kimhok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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