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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있는 풍경

슬픔도 죽음도 초탈한 깊은 울림 속 젖은 계곡

하덕규 ‘한계령’

  • 글·김동률 |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권태균 | 사진작가·신구대 교수 photocivic@naver.com

슬픔도 죽음도 초탈한 깊은 울림 속 젖은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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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산 이은상의 ‘피어린 육백리’

원래 이 노래는 보컬 그룹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가 불렀다. 노래의 탄생도 드라마틱하다. 깊은 감수성의, 웬만한 서정시를 뺨치는 노랫말은 무명 시인 정덕수(51)의 작품이다. 놀라운 건 마치 생을 달관한 듯한 몰아일체감의 이 시를 정 시인이 10대에 지었다는 사실이다.

1981년 정 시인이 고작 열여덟 나이에 고향 외설악 산행을 하다 연필로 끼적거린 시가 ‘한계령’이다. 조금 더 이야기를 하면 입이 딱 벌어진다. 시인 정덕수는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다. 설악산 오색약수터 입구 오색초등학교를 졸업한 이래 한줄기 구름처럼 떠돌았다. 어머니는 여섯 살 때 집을 나갔다. 어린 나이에 집 나간 어머니를 그리다가 젖은 눈으로 바라본 건너편 산마루가 한계령이다.

곤고했던 그 시대가 그랬듯이 초등학교를 마치고 무작정 서울에 올라와 봉제공장, 철공소에서 막일을 하며 고달픈 생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 가난한 청년의 꿈은 시인. 그래서 1980년대 서울시내 문인들이 다니는 술집과 다방을 꿰뚫고 다녔다. 황금찬 시인이 단골이던 을지로 입구의 보리수다방, 지금은 없어진 계림극장 옆 청자다방, 동대문야구장(지금의 동대문디자인 프라자) 맞은 편 산장다방이 그가 순례하던 곳들이다. 객지를 떠돌다가 열여덟 살 때 고향에 잠깐 들르는 길에 ‘한계령’이란 시를 지었고, 그는 이 시를 들고 음악다방 DJ에게 노래를 신청할 때마다 낭독을 부탁했다. 우연히 이 시를 접한 하덕규가 곡을 붙여 노래가 탄생하게 된다. 오랜 세월 저작권 문제로 하덕규와 다툼을 벌였으며 지금은 가사 저작권의 절반을 자신이 받게 됐다고 정덕수는 설명한다. 이렇듯 비감한 노랫말의 원작자가 정덕수로 밝혀지기까지 수많은 시간이 걸린 것이다.

탄생의 세속적인 우여곡절과는 달리 노래 ‘한계령’은 초탈적인 이미지를 지녔다. 어떤 이는 이 노래를 들으면 죽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지나치게 비장한 노래라는 비판도 있다. ‘자살 권유가’라는 좋지 않은 별명도 따라 다닌다. 실제로 정 시인이 서울 생활에 고달픈 나머지 고향을 찾아 자살을 시도하려다 쓴 유서라는 소문도 있지만 작자는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한계령은 익숙하다. 설악산 일대의 풍경이나 지명에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도 한계령(해발 920m)은 이미 너무나 유명하다.

“여기는 바로 설악산 한계령으로부터 흘러오는 한계의 시냇가, 발길은 북쪽을 향하면서 눈은 연방 설악산 들어가는 동쪽 골짜기를 바라본다. 30년 만에 다시 보아도 밝은 빛, 맑은 기운이 굽이쳐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가슴속의 티끌을 대번에 씻어 주기 때문이다. 얼마나 아름답고 시원하냐! 그래, 이런데서 그렇게 피비린내를 풍겼더란 말이냐! 친소(親疏)도 없이, 은원(恩怨)도 없이, 싸우다 말고 총을 던지고 냇물에 발이라도 담그고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데가 아니냐! (…)”

이쯤 되면 아! 하고 이마를 탁 칠 사람이 많겠다. 바로 노산 이은상 선생의 ‘피어린 육백리’다. 고교시절 열공했던 국어책에 등장하는 ‘피어린 육백리’의 무대가 바로 이곳이다. 더러는 그 시절, 까까머리 고교시절의 앨범을 끄집어내는 이도 있겠다. 노산이 휴전선 일대의 격전지를 둘러보며 민족의 비극을 울분에 차서 쓴 기행 수필이다. 글은 강건하고 화려하다. 느낌표가 군데군데 난무한다. 분단 현장을 답사해 역사와 풍경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했다는 점, 영탄적 표현이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6·25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절, 글 바닥을 관통하는 기본 정서는 본능적인 애국심이다.

이렇게 불타는 애국 정서가 겉으로 드러나는 글이 좋은 글인지는 모르지만 기성세대는 밑줄 좌아악 긋고 공부했다. 사나운 국어선생은 전문을 달달 외우게 했다. 암송에 실패하면 발바닥을 맞기도 한 기억이 아련하다. 감탄부호 같은 것은 되도록 아끼는 게 격을 갖춘 글로 간주되는 지금의 글쓰기에 비하면 그야말로 감정이 철철 넘치는 노산의 글이다. 덕분에 ‘피어린 육백리’는 지금의 중장년층 가슴에 살아 펄떡이는 기행문이 됐다.

슬픔도 죽음도 초탈한 깊은 울림 속 젖은 계곡

1971년 수많은 군인이 거의 맨손으로 고갯길을 뚫었다. 한계령 공사로 숨져간 장병을 기리는 위령비가 정상 고갯마루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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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동률 |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권태균 | 사진작가·신구대 교수 photociv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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