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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힐링 healing 필링 feeling

흰눈에 폭설에 대설에 한 줌 번뇌를 잊다

깊이 숨은 절, 내장사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흰눈에 폭설에 대설에 한 줌 번뇌를 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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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눈에 폭설에 대설에 한 줌 번뇌를 잊다

내장사 연못에 살얼음이 앉았다.

連峰들의 열병식

어떤 점에서, 그러니까 이렇게 폭설이 내린 다음이라면 가을 못지않다. 지금 내 앞의 풍경이 꼭 그러하다. 대찰이 슬며시 들어앉은 내장산 배꼽을 좌우로 연봉들이 열병식을 거행하듯이 잇고 또 이어져서 아스라이 멀어져 간다. 주봉인 신선봉(763m)을 필두로 해 좌우로 장군봉(696m), 서래봉(624m), 불출봉(619m), 연자봉(675m), 까치봉(717m) 등이 말발굽처럼 어떤 기운을 내장하며 둘러싼다. 지금 그런 풍경 위로 백색의 대설이 한꺼번에 진주해 펼쳐져 있다.

과연 임진왜란 때 ‘조선왕조실록’의 일시적인 이안(移安·신주나 영정 따위를 다른 곳으로 옮겨 모심)의 장소로 내장산을 택한 까닭을 짐작할 만한 품격이다. 왜란 당시 전주의 관리들과 선비들은 전주사고에 보존하던 ‘조선왕조실록’과 ‘태조 어진’을 내장사 깊숙한 동굴로 안전하게 이안해 보관하다가 천천히 바깥 사정을 봐서 강화도와 묘향산을 거쳐 무주 적상산 사고에 보존함으로써 귀한 문화유산을 지켜낼 수 있었다. 기나긴 역사에 걸쳐 내장산이라는 이름이 실로 그 이름에 걸맞은 혁혁한 일을 해낸 순간이었다. 장엄하지만 압도하지 않는, 위풍당당하지만 위압적이지 않은 이런 산세라면 삶의 고비에 처했을 때 일부러 기억하고 찾아들어 스스로 이 산에 내장되고 싶은, 그런 기운이다.

바람조차 은은해 충분히 더 머무를 수 있었지만 저녁의 귀한 약속을 위해 걸음을 옮겨야 했다. 길은 두 갈래. 하나는 올라올 때처럼 케이블카를 타고 5분 만에 하강해버리는 것이다.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쉽게 선택하기는 어려웠다. 다른 방법은 케이블카의 반대편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서 내장사로 내려가는 것. 그런데 아이젠을 친 등산화도 아니고 운동화도 아니고 바닥이 평평한 캔버스화를 신은 채로 과연 내려갈 수 있을까. 전망대 휴게소에서 일하는 분은 질색하며 어서 편한 대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라 했다.

그럴 마음으로 케이블카 승강장 쪽으로 가다가 나는 반대편으로 몸을 돌렸다. 고봉을 오르는 분들에게는 이 ‘고뇌에 찬 결단’에 대해 하품 나는 소리라고 할지 모르지만, 평소 도시 생활자의 옷차림에 간편화를 신고 폭설의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기는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몇 걸음 내디디자 결국 그 길로 계속 따라 내려가게 되고 말았다.



갑자기 열아홉 살 때 기억이 난다. 녹슨 자전거 한 대를 끌고 서울의 미아리에서 저 강원도 동해안을 바라보고 페달을 밟으려 했던 그 시절, 과연 이 낡은 자전거로 한계령 너머 동해안까지 갈 수가 있을까 주저했지만 일단 집 밖을 나서 10분 쯤 달리다보니 뒤돌아 집으로 가는 것보다 앞으로 그저 페달을 밟고 나아가는 것이 더 홀가분했다. 그래서 그때 페달을 계속 밟고 한계령을 너머 양양으로 갔다가 울진으로 갔다가 마산을 거쳐 광양 지나 목포까지 계속 직진만 한 기억이 있는데, 이 짧은 등산로에서도 잠시 멈칫하며 주저했지만 일단 서너 걸음 떼고 나니 케이블카를 향해 뒤돌아서는 것이 참으로 힘들었다.

정혜심 보살님

흰눈에 폭설에 대설에 한 줌 번뇌를 잊다

내장사에서 사찰 일을 돕는 정혜심 씨.

길은, 쉽지는 않았지만 전혀 딛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차라리 폭설이라서 다행이랄까. 발목이 눈더미 속으로 깊이 박혔지만 덕분에 미끄러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런 대설에 호기에 찬 등산객들이 미리 위아래로 선행을 해 그 흔적이 뚜렷했으므로 헛디뎌 낭패를 당할 까닭도 없었다. 그렇게 차분하게 눈 속을 걸어 내장사로 스며들었다.

“… 아이고, 어쩌나. 추울 텐데. 발 시릴 텐데. 어쩌나.”

큰 사찰의 마당에 인적이 드물었으므로 어느 보살님의 말씀이 필시 나를 두고 하는 것임을 금세 알았다.

“네, 뭐 그렇게 됐습니다.”

“거리도 멀지 않고 등산로가 안전하게 돼 있으니 걸어 내려와도 큰일이야 없지만 천지가 눈밭인데, 아차 하면 다치고 큰일인데….”

“조심조심, 내려왔습니다.”

그렇게 말했지만, 무릎 아래로 차디찬 물기가 맺혀 있었다. 신발도 양말도 다 젖어 발가락을 연신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저기, 들어가요. 들어가서, 몸을 녹이고 가야지. 안 그러면 동상 걸려요. 버스 타러 내려갈래도 20분 넘게 걸어야 하는데…어서 들어가요.”

절에 가면 절 마당 한켠에 간이 막사 같은 게 꼭 있다. 입구에 불전함을 비치해놓고 간단한 예불 용품도 팔고 차도 팔고 또 불사를 위한 기와를 파는 간이 시설 말이다. 보살님은 하루 종일 그 일을 맡아 하던 중이었다.

보살님은, 마치 오랜만에 찾아온 조카를 맞는 사람처럼 전기장판과 전기난로의 스위치를 켜고 따끈한 물을 내주었다. 나는 오랜만에 고모네 집에 온 조카처럼 “괜찮아요, 됐어요, 고마워요…” 하면서 그 환대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다행히 2박3일의 여정을 위한 여벌의 양말과 속옷이 있어서 새로 갈아 신고 입으니 조금 전까지 눈발 속에 몸을 처박던 몰골에서 손쉽게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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