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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쾌락의 끝, 깊은 침잠

‘섬’과 안성 고삼저수지

  • 글·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김성룡 | 포토그래퍼

쾌락의 끝, 깊은 침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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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의 끝, 깊은 침잠

방갈로들 사이를 오가며 낚시꾼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들이 물에 반쯤 잠긴 채 얼어 있다.

몇 안 되는 관객이었지만 이 장면이 이어질 때 여기저기서 킬킬대는 소리가 들렸던 기억이 난다. “한강이잖아. 근데 바닷속처럼 맑고 푸르다고?” “이거 만든 감독 좀 돈 것 아냐? 영화가 조금이라도 리얼리티가 있어야 할 거 아냐!”라고들 떠들어댔다.

하지만 리얼하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다. 리얼하지 않은 게 더 리얼하게 느껴졌다. 진실이라고 얘기하는 게 쉽게 믿기지 않는 시대였다. 진실은 산 너머 저쪽에 있을 것 같던 시기였다. 세상이 막 변하려고 몸부림치던 때였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시작됐지만 여전히 세상은 그대로인 듯했다. 막 깨져야 할 참이었다. 파격이 필요한 시대였다. 김기덕이 등장한 게 바로 그때였다.

김기덕은 미친 듯이 영화를 찍었다. 무조건 1년에 한 편, 어떤 해에는 두 편을 찍기도 했다. 그러니 20년도 안돼 22편의 영화를 만들어냈지. 개인적으로 김기덕의 영화 중에선 후기보다는 전기에 만들어진 것을 더 좋아한다. ‘파란 대문’ ‘섬’ ‘나쁜 남자’ 등등이 그렇다. 그때 만든 영화들이 비록 거칠긴 해도 더 그로테스크해서 좋다. 더 예술적이다.

후기로 갈수록 김기덕은 사회적 이슈에 가깝게 다가서기 시작했다. ‘해안선’ ‘사마리아’ ‘빈집’ ‘시간’ 등등 마치 저널리스트 같은 느낌으로 사회문제에 대해 능수능란하게 치고 빠지며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베니스, 베를린, 카를로 비 바리 등등 국제영화제에서 수상 소식이 잇따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세계 영화계에서 그는 완벽한 주류였다. ‘마에스트로(거장)’ 대접을 받았다. 그가 나타나면 전 세계 기자들이 그에게 주목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그렇지 못했다. 그 점이 그를 미치게 했다.

‘야수의 메시지’에 열광



언뜻 보기에 김기덕은 자신의 영화가 국내에서 늘 논쟁을 몰고 다님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흥행에서 실패한 것은 언론과 비평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김기덕의 처지에서 보면 그럴 법도 하다. 그의 영화는 대개가 찬반논란에 휩싸였고, 호오(好惡)가 확연히 갈렸다. 찬반논란에선 반대쪽의 목소리가 조금 더 부각되기 일쑤다. 저널과 비평이 아무리 양쪽의 주장을 비중 있게 실었더라도, 그의 영화를 관객에게 보고 싶은 영화라기보다는 다소 거부감이 느껴지는 영화로 인식시켜온 건 부정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관객 대부분에게 김기덕은 문제적 작가임은 분명하지만 대중적인 작가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양동근과 방은진이 출연한 ‘수취인불명’의 마지막 장면 같은 것은 김기덕과 대중의 만남이 결코 평탄치 않음을 암시한다. 영화의 엔딩은 남자 주인공이 차가운 논바닥에 거꾸로 처박혀 죽어 있는 모습이다. 김기덕이 꿈꾸는 영화적 풍경은 그만큼 일반 관객의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을 만큼 전복적인 형태다.

전복은 때론 혁명을 낳는다. 하지만 혁명이라는 것은 철저하게 대중적 지지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영화는 종종 선후가 뒤바뀌었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늘 지극히 인상적이지만, 그 인상이 대중적 흡입력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취약점을 나타낸다.

반면 칸과 베를린과 베니스영화제가 김기덕이 영화를 만들 때마다 트로피를 안겨주거나 주려고 하는 것은 세계 영화계에서도 그 사례를 쉽게 찾아보기 힘들 만큼 대단하고 엄청난 성과임에 틀림없다. 해외 영화계, 특히 유럽 3대 영화제가 김기덕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구사하는 직설적 화법 때문이다. 김기덕이 던져놓는 그 우직스러운 영화적 화두의 명쾌함이 그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듯하다.

김기덕의 영화엔 늘 강한 자신의 주장이 실려 있다. 세상을 향해 내지르는 야수의 포효가 있다. 김기덕은 결코 에두르지 않는다. 분노와 슬픔, 구원과 해탈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표현해낸다. 유럽의 관객들이 감탄하고 박수갈채를 보내고 그 앞에서 공손해지는 것은 그가 마치 메시아처럼 구원의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던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13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장(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면서 또 한 번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피에타’야말로 대표적인 작품이다. 자식을 버린 엄마와 (그것에 대한 심리적 보상을 받는다는 식으로) 사람들을 억압하고 협박하며 살아가는 아들의 관계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폭력적이다. 두 모자는 심지어 아슬아슬하게 근친상간의 관계에까지 접근한다. 이건 ‘굽어살필’ 만큼 간단치가 않은 문제다. 유럽은 그 같은 이색(異色)에 열광한다. 지금껏 자신들이 구사해온 단순한 방식으로는 세상을 구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구원의 상상력에서 한계에 다다랐다. 김기덕의 영화는 자신의 영혼을 위해 폭력적 쾌감을 갖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유혹한다. 폭력은 때론 폭력적인 방식으로 다스리고 극복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유럽의 관객들이 김기덕의 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다.

야채 ‘송송’…걸쭉한 국물 일품

안성 고삼저수지를 다녀오는 길은 그다지 어렵거나 아주 흥미롭거나 할 정도는 아니다. 열광할 만큼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서 청춘 남녀보다는 장년층 커플(결혼했든, 돌싱이든, 아니면 아직 미혼이든)의 당일치기 데이트 코스로 제격일 것 같다. 젊은 사람들에겐 볼 거리와 먹을거리, 무엇보다 즐길 거리가 많아야 한다. 하지만 고삼저수지로 가는 겨울의 길목은 사실 그런 것들의 유혹과 욕망에서 벗어나 있다. 그래서 약간 나이 든 세대가 가는 게 맞다. 오가는 데 1시간 반 정도의 거리감도 장년층 세대에 딱 적당하다. 올해는 유난히 서해안과 강원도에 폭설이 내린 적이 많았다. 겨울엔 조심스레 웅크리고 다니는 맛도 괜찮다.

저수지 낚시터에서 매운탕 대신 먹은 라면 맛이 일품이었다. 청양고추와 각종 야채를 썰어 넣은 걸쭉한 라면 국물은 추운 저수지 주변을 걸어온 우리에게 따뜻한 하루 품삯을 제공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왕후장상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세상은 점점 광기에 사로잡혀간다. 광기는 늘 폭력을 수반한다. 세상을 폭력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는 방식은 사람들이 대속(代贖)과 희생 정신을 배우는 것이다. 김기덕도 지난 20년간 같은 얘기를 해온 셈이다. 물론 표현 방식은 남달랐지만. 해 지는 저수지를 바라보면서 김기덕 식의 구원을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신동아 2015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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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김성룡 |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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