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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性군기 무너진 한국군

“성추행은 일상…장군 회식에 왜 여군 하사를…”

예비역 여군장교 작심토로

  • 조성식 기자 | mairso2@donga.com

“성추행은 일상…장군 회식에 왜 여군 하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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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건네는 병사들

관사 침입 사건은 이후 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진급에도 영향을 끼쳤다. 뒷날 다른 부대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부서에서 가족 모임을 했다. 그런데 나를 바라보는 장교 부인들의 눈길이 야릇했다. 자기네끼리 뭔가 쑥덕거렸다. 나중에 상관인 남성 장교가 귀띔해줘 알았다. 그때 사건을 두고 나를 이상한 여자로 본다는 것을. 진상도 모르면서 말이다. 당시 내 능력을 높게 평가해 진급시키려 애쓰던 C장군이 내게 그 사건에 대한 해명서를 쓰라고 했다. C장군은 그걸 읽고 나서 무척 가슴 아파했다.”

‘성추행과의 전쟁’은 그가 대위 계급장을 달고 전방 부대에 부임해서도 계속됐다. 남자 1만 명이 있는 사단에 여군이라곤 딱 두 명이었다. 전투병과인 Q씨는 각종 훈련에 동참해야 했다.

“야외훈련 나가면 텐트를 치고 잔다. 남성 장교들이 내 텐트를 침범하려는 기미가 있어 아예 남성 병사들 텐트로 옮겨버렸다. 병사들 한가운데 내 침대를 깔고 잤다. 거기가 가장 안전했다. 병사들이 날 보호해줬다. 혼자 있으면 남성 장교들이 업무와 관련해 수시로 방문하는데, 과거 일도 있고 해서 늘 불안했다. 장교들 중에는 훈련 중 틈만 나면 다가와 수작을 부리는 사람도 있었다. ‘손 좀 만져보면 안 돼?’ 하면서. 엉덩이를 슬쩍 건드리기도 했다. 나도 소위·중위 때와는 달리 유연하게 대처했다. ‘아유, OO님 고정하세요. 성희롱하면 전역당하세요’ 하면서.”



“성추행은 일상…장군 회식에 왜 여군 하사를…”

M-60D 기관총 사격훈련을 받는 여군 하사.(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병사들이라고 다 얌전한 동생처럼 군 건 아니었다. 그는 ‘좋아한다’는 쪽지를 건네는 병사들을 적당히 어르고 달래야 했다.

“내 경험에 따르면 성희롱 예방책으로 가장 좋은 게 남성 동료들과 멤버십을 공유하는 것이다. 동료나 후배는 나를 보호해준다. 문제는 늘 윗사람이다. 전방 부대에서 그 사실을 깨달은 이후 어딜 가든 남성들, 특히 후배들과 잘 지냈다. ‘누나’라고 부르게 되면 좋아하긴 해도 성희롱은 안 한다. 야간순찰을 돌 때면 꼭 믿을 만한 남군 후배와 동행했다. 애정을 고백하는 후배가 왜 없었겠나. ‘누나 좋아한다’고. 자기도 결혼했으면서. 그럼 내가 이렇게 말한다. ‘나도 너 좋아해. 그런데 어쩌라고!’ 군대나 사회나 관계망이 중요하다. 애정을 우정으로 돌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하지만 한번 우정을 맺게 되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예전엔 일선 부대에 여군 화장실이 따로 없었다. 여군 장교도 남군 화장실 한 칸을 사용해야 했다.

“더 열 받는 건 화장실 청소를 나보고 하라는 것이었다. 여자 화장실 못 치우겠다고 병사들이 항의했다. 한마디로 우습게 안 거다. 그런데 나중엔 같이 사용하는 게 편안해졌다. 떨어져 있으면 표적이 되니. 화장실 사용에서도 생존기법을 터득한 셈이다.”

그는 2013년 발생한 여군 오모 대위 자살 사건을 거론하며 “남성 천지인 군에서 여성은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 대위를 죽음으로 몰고 간 상관도 애초엔 오 대위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데 오 대위가 응하지 않자 해코지(성추행, 가혹행위)를 한 것이다. 남성 군인조차 폐쇄감과 고립감에 힘들어하는데 여성은 오죽하겠나. 계급 낮은 여군이 많이 당하는 것도 권력관계 때문이다. 잘못된 권력을 휘두르니 사고가 터지는 것이다. 계급이 낮은 여군 하사로선 그 권력을 이길 도리가 없다. 성희롱 얘기만 나오면 우리 여군 출신은 지긋지긋해한다. 피해자는 전역한 후에도 트라우마로 평생 힘들어한다. 여군 출신임을 밝히지 않는 동료도 종종 있다. 성추행으로 인한 자괴감과 격무 스트레스, 그리고 고독감에 자살하는 경우도 과거에 비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여자를 죽여야 남자가 산다’

최근 몇 년간 일어난 군내 성폭력 사건 중엔 유난히 여군 하사 성추행 사건이 많다. 이에 대해 그는 “드러나지 않았을 뿐 예전엔 더했다”며 “요즘 여군들이 씩씩해서 문제 제기를 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1월 여군 하사를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육군 여단장(대령)은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Q씨는 “처음에 당하고 나서 이후 지속적으로 관계를 가진 게 사실이라도 여성이 어느 순간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면 그때부터는 성범죄가 된다. 어찌 됐든 성폭행한 사실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가해자가 처벌돼도 피해자의 피해는 그치지 않는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Q씨는 “언론은 성폭력 사건에만 주목하지 피해 여군의 남은 군생활에 대해선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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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기자 |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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