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대한민국號 70돌 | 김호기 교수가 만난 우리 시대 지식인

“전도하는 마음으로 미술사 연구…외롭지 않아”

미술평론가 유홍준

  •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kimhoki@yonsei.ac.kr

“전도하는 마음으로 미술사 연구…외롭지 않아”

3/4
완벽주의자의 욕심

유홍준 우리가 외국에 문화적 영향을 끼친 역사적 경험이 별로 없어요.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간 경우도 중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형성된 문화를 전달한 거죠. 그런데 단군 이래 처음으로 우리가 생산한 문화가 우리나라 바깥으로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갖고 퍼져나가는 역사적 경험을 하게 된 거예요. 드라마고 음악이고 상품이고 잘 만들었어요. 품질이 높고, 무엇보다 재미있어요. 한류는 문화가 휴대전화, 텔레비전, 화장품 등 상품과 같이 묶여서 가는 것이기도 해요. 정부가 한류 제작자는 물론 그곳 유학생들의 유치, 문화원 설립 등 다각도로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어요.

김호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보다 ‘화인열전’을 먼저 준비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홍준 그렇죠. ‘역사비평’에 먼저 연재했으니까요. 제가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관심을 가졌던 것은 회화사였고, 죽기 전에 우리나라 역대 화가 스무 명의 전기는 써보고 싶은 게 제 소망이에요.

김호기 다른 학문에서도 전기 연구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론이든 분석이든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지요.



유홍준 그동안 인간 없이 물체만 가지고 얘기했던 거죠. 미술의 역사를 보면 문화사·형식사·정신사·사회사·도상학 등이 있지만, 이것보다 훨씬 먼저 있었던 미술사는 인물사로서의 미술사죠. 바사리의 ‘미술가 열전’ 같은 선구적인 업적도 있고, 편년사로서의 미술사가 존재했어요. 인물사와 편년사를 하지 않고 본격적인 분석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중요한 인프라가 빠져버린 거예요. 고흐라는 사람의 일생 없이 작품을 해석할 수 없고, 일생이 있었기 때문에 본질에 다가가는 것이지요.

‘역사비평’에 발표한 것을 바로 책으로 내지 않았던 까닭은 새로운 자료들이 계속 나왔기 때문이에요. 10년 지난 다음 먼저 쓴 것을 버리고 새로 쓴 거예요. 제 완벽주의 내지는 욕심이었던 거죠. 그 바람에 이 책이 죽지 않고 지금도 읽히는 거죠. 조만간 보완할 생각이에요.

김호기 ‘화인열전’에서 아주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관아재 조영석입니다. 화첩을 만들면서 “남에게 보이지 마라. 범하는 자는 내 자손이 아니다”라는 경고문을 남겼는데, 양반 출신 화가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조선 시대 양반 출신 화가와 화원 출신 화가들의 역할은 달랐다고 볼 수 있는지요.

유홍준 달랐죠. 영·정조 시대에 진경산수, 문인화, 풍속화 등의 미술을 주도한 사람들은 사대부 출신이었어요. 조선 시대에는 문인화가와 직업화가가 있었는데, 직업화가는 새로운 장르를 못 만들었어요. 지식층이 새로운 장르를 만드니까 정조 시대에 가서 단원 김홍도, 해원 신윤복 등 뛰어난 테크니션들이 나타나 더욱 발전시킨 거지요. 앞선 영조 시대에 진보적이고 참신한 지식인들이 새로운 문화를 제시했다면 그다음 정조 시대에는 테크노크라트들이 그것을 더 높은 차원으로 확산시켰던 셈이지요.

뮤지엄 액티비티

김호기 ‘화인열전’의 현대판을 계획하고 계신지요. 이상범, 변관식을 위시한 현대화가와 신학철, 임옥상 등을 포함한 민중화가에 대해 선생님이 쓴 글들을 더러 봤습니다.

유홍준 동시대 비평가로서 어떤 화가가 어떤 계기로 그런 그림을 그렸고 당시 사람들은 그 그림을 어떻게 봤는지를 기록에 남기는 것은 중요한 학문적 활동이자 연구입니다. 이미 조선시대 화가 중 쓸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썼고, 우리 미술을 이끌어온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이응노 등을 쓰고 나면, 동시대 사람들, 예를 들어 신학철, 임옥상, 강요배, 이종구 등의 민중화가들에 대해 쓰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김호기 현재 한국 미술의 핵심 문제는 뭐라고 볼 수 있을까요. 미술이 삶과 밀접히 연관돼 있는 것임에도 우리 사회에서 미술은 삶과 생활 안에 들어와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미술을 포함한 문화는 삶 안에 놓여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타자화했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유홍준 소통 구조가 큰 문제예요. 작가의 역량이나 생산이 문제가 아니라, 박물관이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이지요. 미국이나 독일의 경험을 보면 ‘뮤지엄 액티비티(museum activity)’가 도시마다 얼마나 흥미진진한가요. 문화의 중심이죠. 예를 들면 콘서트부터 심포지엄까지 모두 박물관에서 이루어지잖아요. 뉴욕에 가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현대미술관(MoMA)에만 들러도 과거와 현재의 문화를 알 수 있잖아요. 우리는 하드웨어는 다 지었는데, 서양의 뮤지엄 액티비티에 대해선 못 배운 거죠.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하고 돈이 필요한데, 주로 건물 짓는 데 투자하고 사람과 돈에는 인색하니 활발한 뮤지엄 액티비티가 없어요. 음악이나 미술 같은 경우는 문학과 달리 장소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볼 방법이 없어요. 그것을 우리가 소홀히 해요. 이 점에서 우리 작가들이 좀 불행하다고 볼 수도 있어요. 이런 소통 구조를 개선해야만 한국 미술이 활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호기 최근 역설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인문학 위기와 열풍의 공존입니다. 대학 안에서 학생들은 인문학에 관심이 없는데, 대학 밖에서는 인문학에 대한 열기가 뜨겁습니다. 인문학자로서 보기에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요.

“전도하는 마음으로 미술사 연구…외롭지 않아”


3/4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kimhoki@yonsei.ac.kr
목록 닫기

“전도하는 마음으로 미술사 연구…외롭지 않아”

댓글 창 닫기

2021/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