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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

‘국민만 지켜라’에서 ‘쌍방통행’으로 거듭나야

한국 법치주의의 암울한 현실

  • 이석연│변호사, 前 법제처장

‘국민만 지켜라’에서 ‘쌍방통행’으로 거듭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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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윗사람부터 지켜야

공자는 국가의 구성 요소를 군사력, 경제력, 사회적 신뢰라고 하면서 그중 사회적 신뢰를 가장 중시했습니다(‘논어’). 사마천은 ‘상군열전’에서 법치를 확립한 진(秦)나라의 개혁가 상앙(商?)의 입을 빌려 법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은 윗사람부터 법을 위반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윗사람들의 행실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행되지만, 윗사람들의 행실이 바르지 못하면 명령을 내려도 복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진 효공이 법가인 상앙을 등용하고 법령을 정비할 때의 상황을 ‘상군열전’에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새 법령은 제정되었으나, 아직 공포는 하지 않았다. 백성이 신임하지 않을까 염려해서였다. 그리하여 높이가 세 발 되는 나무를 성중의 남문에다 세우고 글을 써 알리기를, ‘이 나무를 북문에다 옮겨놓는 자에게는 10금(金)을 준다’고 사람을 모집하였다. 그러나 모두들 이상하게만 여기고 옮기려는 자가 없으므로 다시 광고하기를 ‘이 나무를 북문에다 옮기는 자에게는 50금을 준다’고 하였다. 어떤 자가 이것을 옮겼으므로, 얼른 50금을 주었다. 백성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 알린 다음에, 마침내 법령을 공포하였다.

그러나 법령이 시행되자, 백성들은 도성으로 몰려와 그것의 불편함을 고하는 자가 수천이 되었다. 그러다가 태자가 법을 범했다. 상앙은 ‘법이 잘 시행되지 않는 것은 위에 있는 자부터 법을 어기기 때문이다(法之不行 自上犯之)’ 하고 태자를 처벌하려 하였다. 그러나 태자는 다음 임금이 될 사람이므로 형벌에 처하기는 난처한 일이라고 하여, 그 대신 태자의 스승을 처벌하였다. 다음 날부터 백성들은 모두 법을 지켰다.

법을 시행한 지 10년에 진나라의 백성들은 크게 기뻐하고 길바닥에 떨어진 물건도 집는 사람이 없었다. 산중에는 도둑이 없어졌고, 집집마다 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다 족하였으며, 백성은 전쟁에 용감하고 개인의 싸움에는 힘쓰지 않았으며, 국내의 행정은 잘 다스려졌다. 일찍이 법령의 불편을 말한 자 중에 이번에는 법령의 편리함을 말하러 온 자가 있었다. 상앙은 ‘이런 자 역시 다 선도감화(先導感化)를 어지럽히는 백성이다’ 하여 모두 변방의 성으로 쫓아버렸다. 이후 진나라 백성들은 감히 법에 대해 의논하지 못했다.





이처럼 상앙은 법을 너무 엄격하게 시행함으로써 많은 적을 만들었습니다. 진 효공이 죽자 태자가 뒤를 이었고 세상은 바뀌었습니다. 그러자 상앙은 모반을 꾀한다는 모함을 받게 돼 이웃나라로 도망가지 않을 수 없었죠. 상앙은 달아나다 국경 근처까지 와서 객사에 들러 하룻밤을 묵고 가려고 했습니다. 객사의 주인은 그가 누군지 알지 못하고 말합니다.

“상군(商君)의 법률에는 여행증이 없는 손님을 재우면 그 손님과 연좌로 죄를 받게 됩니다.”

연좌제는 진 효공 때 상앙이 만든 제도입니다.

“아! 신법의 폐단이 마침내 내 몸에까지 미치는가?”

결국 상앙은 체포돼 가족과 함께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고 맙니다. 개혁은 예나 지금이나 지난한 과제이고 때로는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史實)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떻든 상앙은 법 집행의 형평성을 강력하게 주장해 법치의 핵심을 확립했으며, 후일 진나라 천하통일의 기반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상앙에 대한 사마천의 평가는 인색합니다.

“차라리 목을 베시지…”

“상군은 천성이 각박한 사람이다. 그가 당초에 제왕의 도로써 효공의 신임을 얻었던 일을 관찰해보면 뿌리가 없이 겉만 번지르르하고 근거 없는 낭설에 불과한 것이지 그가 본래 가지고 있는 자질이 아니었다.”

사마천은 ‘사기’의 ‘순리열전’과 ‘혹리열전’에서 법 집행관, 사법관 등 법조인 관료들을 다뤘습니다. 또한 ‘장석지 풍당열전’에서는 장석지라는 인물을 통해 법과 정치, 법 적용의 일관성과 공정성 등의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100년 전 절대군주제하에서의 일입니다. 장석지는 서한시대 가장 명망 높은 사법관료로서 최고 사법관인 정위(오늘날의 대법원장)를 지낸 사람입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서한의 3대 황제 중 한 명인 문제가 외출 중 위교(渭橋)를 지나는데 갑자기 다리 아래에서 사람이 튀어나와 문제가 탄 말을 놀라게 했습니다. 대로한 황제는 그 자를 장석지에게 넘겨 죄를 다스리게 했죠. 사건을 심리한 장석지는 이자가 어가를 피하려고 다리 밑에 숨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한참 뒤 어가가 통과했거니 생각하고는 다리 밑에서 나왔는데 공교롭게도 그때 어가를 만난 것이었습니다. 장석지는 법 규정에 따라 이자에게 벌금을 4량 물리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했습니다. 그 내용을 보고받은 문제는 처벌이 너무 가볍다면서 장석지를 심하게 꾸짖었습니다. 이에 장석지는 차분하면서도 당당하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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