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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미술관

포장지 공장에서 초현대미술 인큐베이터로

디아비콘 미술관

  •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포장지 공장에서 초현대미술 인큐베이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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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비콘에만 설치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대형 철 구조물 조각 작품은 마이클 하이저(Michael Heizer·1944~ )의 ‘북, 동, 남, 서(North, East, South, West)’라는 작품이다. 미술관 입구에서 맨 왼쪽 끝으로 가면 바닥이 아래로 푹 꺼진, 4개의 커다란 구덩이를 볼 수 있다. 이 구덩이는 대형 철 구조물로 만들어졌고 모양은 각기 다르다. 구덩이 속이 얼마나 깊은지, 여기에 빠진다면 자력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다. 역시 왜 이런 것을 만드는지, 이것도 과연 예술 작품인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이 작품은 별도로 관리된다. 위험하기 때문에 직원의 안내를 받아야 관람할 수 있다. 세라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하이저의 작품이 전시된 공간 역시 해당 작품만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맞춤형 전시실이다.

하이저는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태어나 샌프란시스코에서 예술학교를 다녔다. 그의 아버지는 버클리 대학의 유명한 고고학자였다고 한다. 1966년 뉴욕 시를 여행하며 예술 세계에 뛰어든 하이저는 초기에는 작은 그림과 조각을 만드는 평범한 예술가였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사막으로 옮겨가면서 그의 예술 세계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미술관에선 도저히 전시할 수 없는 초대형 작품 제작에 몰두했다.

하이저는 땅 표면이나 아래에 대형 설치작품을 만들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지구예술(earth art)’ 또는 ‘땅의 예술(land art)’이라고 불린다. 사막을 파헤치고, 흙을 쌓고, 바위를 끌어모으는 등 토목공사를 방불케 하는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는 1972년부터 네바다 주 링컨 카운티 사막에서 ‘City’라는 제목의 거대 작품을 만들고 있다. 이 작품은 지금도 제작 중이며 공개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선 이런 아리송한(?) 작가도 끊임없이 후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디아재단도 그중 하나다. 이런 배경에서 인간의 창의성이 무한으로 발휘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예술이란 반드시 당대에 평가받는 것이 아니다. 당대에는 미친 짓으로 비웃음을 사던 행위가 나중에 위대한 예술로 평가되곤 한다. 예술이란 그런 것이다.



미술관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가다보면 커다란 전시실이 나오는데, 거기엔 폐차장에나 있을 법한 구겨진 자동차 철판들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다. 존 체임벌린(John Chamberlain· 1927~2011)의 작품들이다. 그중 ‘Luftschloss’라는 작품은 구겨진 자동차, 그 자체다. 우리나라에선 한때 서울 강남 테헤란로 포스코 본사 앞에 설치된 프랭크 스텔라의 고철덩어리 작품이 논쟁거리가 된 적 있다. ‘저런 흉물을 왜 강남 한복판에 설치했나’를 두고 많은 이가 흥분했다.

체임벌린의 작품은 그보다 더 심하다. 자동차를 알루미늄 포일 구기듯 구겨놓았다. 체임벌린은 이런 작품으로 세계 조각계의 거물로 우뚝 섰고, 전 세계 유명 미술관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체임벌린이 작품 재료로 쓰려고 철판덩어리를 산더미처럼 쌓아놓았는데, 환경미화원이 쓰레기인 줄 알고 치워버렸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포장지 공장에서 초현대미술 인큐베이터로

마이클 하이저, 'North, East, South, West'.

미국 예술시장의 힘

인디애나 주 술집 주인의 아들로 태어난 체임벌린은 시카고에서 자랐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3년간 미 해군에 복무했다. 그는 제대 후에야 시카고 예술대학(Art Institute of Chicago)에 들어갔고, 이후 뉴욕에서 조각가로 활동했다. 디아재단은 1983년에 체임벌린의 전시회를 개최했을 정도로 그와 오랜 인연이 있다. 2011년에 한 경매에서 체임벌린의 작품이 470만 달러에 거래된 바 있다.

우리나라의 유명 화랑에서 어쩌다 한 번씩 선반으로 착각할 만한 작품을 구경할 때가 있다. 어느 모로 보나 선반인데 예술 작품이라는 데서 놀라고, 가격에 또 한 번 놀란다. ‘선반’ 값이 수억 원이나 되기 때문이다. 이는 도널드 저드(Donald Judd·1928~1994)의 작품이다.

디아비콘에서도 저드의 선반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곳에는 상자와 같은 물건도 전시돼 있다. ‘무제(Untitled)’라고 이름 붙여진 나무상자 같은 작품들이다. 잘 다듬어진 나무통들을 예술 작품이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며 감상할 수밖에 없다. 이게 세계적인 조각가의 작품이라는 데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포장지 공장에서 초현대미술 인큐베이터로
최정표

1953년 경남 하동 출생

미국 뉴욕주립대 박사(경제학)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 건국대 상경대학장

저서 :‘재벌들의 특별한 외도’ ‘한국재벌사연구’‘공정거래정책 허와 실’‘한국의 그림가격지수’등

現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경실련 공동대표


미주리 주 출신인 저드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엔지니어로 군에 복무했고 컬럼비아대에서 철학과 미술사를 공부했다. 풍부한 인문학 지식에 필력도 뛰어나 1959년부터 1965년까지 미국 유명 잡지에 예술비평을 게재했다. 대학 강의도 했다.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예술가다. 그는 조각가로 대성했고, 미니멀리즘 예술의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디아재단은 그의 예술 활동에 많은 지원을 했다. 2009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그의 작품은 490만 달러에 거래되는 기록을 세웠다. 미국은 초현대미술 작품도 시장이 매우 활성화돼 있고, 이런 작품이 우리 돈으로 50억 원 이상 가격에 거래된다. 현대 예술가들이 뉴욕으로 몰리는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신동아 2015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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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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