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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로 풀어쓴 현대사

美, ‘광란’과 전란 거쳐 최강 경제대국 우뚝

‘파운드→달러’ 세계 경제패권의 이동

  • 조인직 | 대우증권 동경지점장 injik.cho@dwsec.com

美, ‘광란’과 전란 거쳐 최강 경제대국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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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에 금본위제 와르르

영국 중심으로 뭉쳤던 금본위제는 1차대전을 거치며 파생된 이 같은 각국 통화의 리더십 및 신뢰도 약화, 정세 불안으로 와해됐다. 본토에는 아무런 전란 피해가 없었던 미국만이 1919년 전후 1년여 만에 금본위제 복귀를 선언했으나 유럽 여타국들은 전후국채의 처리, 인플레이션 수습, 금 보유량의 더딘 회복 등으로 복귀 일정이 늦춰졌다. 독일은 1924년, 영국은 1925년, 프랑스는 1928년에야 겨우 금본위제로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29년 미국에서 대공황이 발생하면서 또다시 선진 각국의 금본위제는 와해됐다. 당시 후버 미국 대통령이 자국 산업 보호를 목적으로 수입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한 것이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미국의 교역국들은 금본위제를 버리고 자국의 통화를 절하해 물건을 싸게 공급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931년 영국이 파운드화 절하를 계기로 금본위제 이탈을 선언한 것을 시작으로 1938년 프랑스에 이르기까지 주요 유럽국가들이 금과 교환되는 태환화폐의 성격을 버렸다.

금이라는 신용물이 사라지자 높은 패권국 지위를 유지하던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은 타국 화폐를 신뢰할 수 없게 됐고, 이에 따라 점차 고율의 관세를 통해 보호무역을 강화하고 외환 반출입을 제한하는 조치를 시작했다. 자국과 식민지 국가들 사이에만 자유롭게 무역 및 금전거래가 가능케 하는 이른바 ‘블록 경제(Block Economy)’가 이 시기에 등장한 것이다.

당시 영국 내각은 식민지 통치 중이던 영연방 내 국가에 대해서는 낮은 세율의 세금을 매겼지만, 역외 상품에 대해서는 일률적으로 200%라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해 진입장벽을 높였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식민지가 부족하다고 느낀 일본, 그리고 1차대전으로 식민지를 뺏긴 독일, 영국과 프랑스에 피해의식을 갖고 있던 이탈리아 등은 다시금 전쟁을 수단으로 한 패권 확보를 겨냥하게 됐다. 결국 일본은 동남아로, 독일은 폴란드로,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로 각기 무력 침공에 나선다.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면 금이라고 하는 신용물이 붕괴된 뒤 나타난 통화가치의 혼란, 이로 인한 세계 무역의 축소 및 비(非)패권국들의 경기 하락 등이 1939년부터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2차대전을 거치면서 각국이 통화가치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고정환율제로 전환한다.

대공황 이후 경제가 급속히 침체한 일본은 때마침 군부세력의 실권 강화 추세에 맞춰 ‘식민지 확대’라는 방법을 통해 패권국에 보다 근접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1931년에 만주사변을 일으켜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푸이를 옹립하고 괴뢰정부인 만주국을 일으켰다. 미국은 이를 ‘부당한 침략행위’로 규정하고 나섰고, 1933년에는 국제연맹이 일본에 탈퇴를 통고하도록 유도했다.

무역 통화는 ‘달러’로만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켜 중국 본토에 대한 야심을 드러낸 데 이어 1941년에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반도까지 점령하고 나서자 미국도 본격적인 행동에 들어갔다. 미국 내 일본인의 자산을 동결하고 일본에 대해 석유 쌀 등 전략물자의 수출을 금지하는 내용의 금수조치를 발표했다. 그러자 일본은 그해 12월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미국에 선전포고를 했고 이에 미국은 본격적으로 2차대전에 참전하게 된다.

2차대전 후 ‘브레턴우즈 체제’로 대표되는 전후 세계의 경제 질서는 요약하면 ‘금-달러 본위제’다. 풀어서 설명하면 미국 1개국 통화(달러)에 의존하는 형태의 금본위제다. 각국의 환율을 미국 달러에 고정해서 연동시키고, 모든 통화 중 오직 달러만이 금에 대한 고정가치(1온스=35달러)를 가진다는 의미다.

달러가 각국의 무역중심통화를 일컫는 ‘기축통화’로 본격적으로 인정받은 덕분에 2차대전 이후 세계 무역의 결제 통화는 달러로 일원화했다. 이와 같은 브레턴우즈 체제는 달러와 금의 태환 정지 조치가 담긴 1971년의 이른바 ‘닉슨 선언’ 때까지 27년간 유지됐다.

미국 달러가 전 세계 무역거래의 결제통화로 인정받으려면 충분한 유동성이 있어야 했고, 이에 연동되는 금이 충분한지 여부도 중요했다. 미국은 다행히 1, 2차대전 당시 본토에 피해가 전무하다시피 해 전 세계에 물자를 공급하는 창구 기능에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2차대전 직후 유럽 각국의 ‘전후부흥대금’을 금으로 결제받다보니 이 시기에 미국의 금 보유량은 전 세계의 75%에 달했다.

전후 주요 국가들 사이에선 전쟁에 대한 반성의 움직임이 일었다. 금본위제의 부작용으로 인한 각국 통화의 절하 경쟁과 무역거래 축소에 따른 보호무역주의 강화, 이에 따른 주요 국가 간 신뢰 상실이 전쟁 발발의 주된 이유였다. 미국 주도의 전후 질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구축했다. 대표적인 것이 국제통화기금(IMF)과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다.

IMF는 1998년 외환위기를 맞은 한국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익히 알려진 기구다. 요즘도 남유럽 재정위기를 앞두고 언제든 등판할 준비를 갖췄을 정도로 존재감은 식지 않았다. GATT는 일반 상품무역만을 다뤘는데, 1995년 지식과 서비스를 추가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로 확장, 계승될 때까지 존속했다. 요즘의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2국 간, 혹은 다국 간 보다 세밀한 협상을 진전시키자는 취지로, 150개 가맹국의 이해관계가 분산돼 있는 WTO 체제의 이념을 계승하면서도 약점을 보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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