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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군[昏君]>얼굴마담>우리 VIP

‘대통령 박근혜’ 이미지 탐색

  • 황상민 |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swhang@yonsei.ac.kr

혼군[昏君]>얼굴마담>우리 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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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코스프레’

대통령을 혼군으로 인식하는 대중이 주로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우리 VIP’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를 지지하거나 혹은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가진 그에 대한 이미지다. 이들에게 박 대통령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왕과 같다. 과거 한 언론사 회장이 검찰에 불려갈 때, 그 회사 기자들이 “회장님 힘내세요” 하며 피켓을 들고 응원하던 마음과 같다. 회장님이 잘돼야 회사가 잘되고 내가 잘 먹고 잘살 수 있다고 믿듯이, 박 대통령을 우리 VIP로 보는 사람들은 그가 이 나라의 존재 이유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 VIP가 ‘사이비 교주’ 같은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사이비 교주 같은 이미지에 해당하는 대표적 인물은 북한의 김정은이다.

대중이 가진 박 대통령의 또 다른 이미지는 ‘얼굴마담’이다. 자기 스스로의 정책이나 전략을 가진 것이 아니라, 자기 세력이 일할 수 있게 해주는 얼굴마담 구실에 그친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통령이 깊이가 없고 시야가 짧은 정치지도자이며, 귀한 집안 자손이지만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주목 받는 것을 좋아하고 그 나름 순진한 사람이며, 명분과 원칙을 내세우며 원론적인 답변만 하는 사람이라고도 여긴다. 이런 맥락에서 ‘대통령 코스프레’라는 비아냥거림이 등장한다.

대중은 심리적으로 실제 누가 정치를 하는지가 불분명하다고 느낀다. 누군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불만은 더 커진다. 대중은 실세가 누군지 끊임없이 묻고 찾는다. 적어도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이 누군지 알아야 생존할 수 있다는 마음에서다.

대통령을 얼굴마담으로 보는 사람들은 적에 맞서 싸우는 ‘야전 사령관’을 바란다. 우리 대통령이 야전 사령관과는 동떨어졌다는 믿음이다. 야전 사령관의 이미지를 가진 인물은 시대의 문제와 아픔을 지적하며 맞서 싸우려 한다. 특정 세력에 맞서 당당하게 싸울 수 있는 리더이자, 전략을 짜고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리더다. 진짜 똑똑하고 능력이 있어서 문제 해결에 나선다. 얼굴마담이 자신의 세력을 대표해 말만 하는 이미지라면, 야전 사령관은 기득권에 대항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투쟁하는 이미지다.



마지막으로 일부 대중에게 박 대통령은 ‘관료적 정치인’의 이미지로 간주된다. 이 이미지의 인물은 국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당원이나 조직, 시스템 등을 활용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 노회한 정치인답게 포커페이스나 실리주의에 강한 인물이다. 자신만의 생각이 있기보다는 윗선의 지시에 따라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을 한다. 정치판에서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로 살아남는 법을 잘 배운 사람이다. 주로 오랫동안 국회의원을 하거나 공무원임에도 정치인처럼 활동한 이들에 대해 대중은 주로 이런 이미지를 갖곤 한다.

관료적 정치인은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들곤 한다. 모두가 책임지는 듯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대중은 자신의 이해가 직접적으로 침범당하지 않는 한, 정치·사회 문제에 반응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관료적 정치인의 이미지는 정치권이 정치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대중과 보조를 잘 맞춰 현상 유지를 꾀할 때는 꽤 유용할 수 있다.

이처럼 대통령을 관료적 정치인의 이미지로 보는 대중일수록 ‘개혁 지향적 정치인’의 이미지를 가진 인물을 찾으려 한다. 개혁 지향적 정치인은 대중의 관심을 끌어 차기 대권을 노리는 야당 지도자가 보여주려고 의도하는 이미지와 유사하다. 야당 지도자는 무릇 청춘들과 공감하며 답을 제시해주는 리더, 존재 자체만으로도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리더가 되려 한다. 또 국내 정세를 제대로 파악해 대중과 나누려 하고, 방향성과 전투력을 모두 갖추고 활동하는 태도를 보이려고 한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을 당시 대중에게 어필한 이미지가 바로 이런 개혁 지향적 정치인의 면모였다. 지난 대선 때 안철수 의원에 대해 대중이 기대했던 이미지도 바로 이것이었다.

말 많다고 이미지 바뀔까

혹자는 위에서 살펴본 대통령 이미지가 그의 성격이나 소통 스타일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대중이 갖는 이미지는 본래 성격과는 관계가 없다. 대중이 가지는 대통령의 이미지는 대통령이 ‘실제로 어떤 실체를 가졌는지’와는 별개의 문제다. 사실 대통령 이미지는 대중이 가진, ‘나의 욕망은 무엇이냐’ ‘나의 욕망을 누구에게 투사할 것이냐’의 문제다.

예를 들어 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대중이 가진 ‘욕망의 화신’이었기에 국민은 그를 대통령으로 택했다(당시 많은 사람이 그를 ‘돈 잘 버는 아버지’로 여겼다). 18대 대선 때도 대중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통해 자신들의 욕망을 투사하고 충족하려 했다. “잘살기만 하면 뭐하지?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고 G20에도 가입했다는데 대체 왜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 거지?” 하는 고민이 짙은 상황에서 대중은 박 후보를 ‘힐링’과 ‘행복’의 키워드로 여겼다.

혼군[昏君]>얼굴마담>우리 VIP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거나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그를 주로 ‘우리 VIP’로 인식했다. 사진은 4월 6일 열린 수석비서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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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민 |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swha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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