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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미술관

‘변화’의 철학이 낳은 美 최초 현대미술관

필립스 컬렉션

  •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변화’의 철학이 낳은 美 최초 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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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 ‘뱃놀이 점심’ 소장

필립스는 꾸준한 미술 후원자이기도 했다. 물론 부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선각자로서의 자질이 없었다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잠재력 있고 장래가 기대되는 작가에게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후원을 받은 작가들 중 많은 이가 미술사에 남은 인물이 됐는데, 대표적인 예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아서 도브(Arthur Dove) 등이다.

필립스 컬렉션에는 결코 지나칠 수 없는 그림이 한 점 있다. 크고 화려해서일 뿐만 아니라, 그림 속 인물들이 정말로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인상파의 대가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가 그린 ‘뱃놀이 점심(Luncheon of the Boating Party)’이다. 르누아르가 마흔 살이던 1881년에 이 그림을 그렸으니, 그야말로 전성기 작품이다. 필자는 이 미술관에 두 번 갔는데, 그때마다 이 그림에 도취해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이 그림은 필립스가 애지중지한 보물이기도 하다.

이 그림은 인상파 작가들을 적극 후원하며 미국에 인상파를 소개한 미술상 뒤랑 뤼엘(Paul Durand-Ruel)이 르누아르에게서 직접 구입해 아들에게 물려줬다. 필립스는 1923년 뒤랑 뤼엘의 아들에게 오늘날에도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거금인 12만5000달러(약 1억3500만 원)를 주고 그림을 사들였다. 이 돈을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메이-모제(Mei-Moses)의 그림가격지수에 의하면 1923~2010년 그림 가격은 500배 올랐다. 여기에 대입하면 ‘뱃놀이 점심’의 현재 가격은 6500만 달러(약 702억 원)가 된다.

1990년 한 일본인 재벌이 뉴욕 경매에서 르누아르의 대표작 ‘물랑 드 라 갈레트(Moulin de la Gallette)’를 7810만 달러를 주고 구입했다. 만약 ‘뱃놀이 점심’이 시장에 나온다면 그 값은 이것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아질 게 틀림없다. 최근 세잔의 대작이 2억5000만 달러, 고갱의 대작이 3억 달러에 거래됐는데, 이 그림도 결코 이들에 뒤지지 않을 것이다.



이 그림은 친구들이 센 강 유람선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오찬을 즐기는 친구들의 모습을 사진기로 포착한 듯 묘사했다. 르누아르 자신과 훗날 그의 아내가 되는 앨린 채리고(Aline Charigot)도 그림 속에 들어 있다. 유람선 회사 사장의 아들, 딸도 있다.

르누아르는 쉰 살을 갓 넘긴 1892년부터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았다. 손가락과 손목을 많이 사용하는 화가에겐 커다란 고통이었다. 1907년에는 관절염을 치료할 겸 기후가 온화한 남프랑스 칸쉬르메르(Cagnes-Sur-Mer)의 농장으로 거처를 옮긴다. 르누아르는 지중해에 가까워 풍광이 매우 아름다운 이곳에 아예 눌러앉아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당시 머물던 집은 현재 ‘르누아르 박물관(The Renoir Museum)’으로 잘 보존돼 있다. 2008년 봄 필자가 그곳을 찾았을 때도 옛 건물과 고목으로 우거진 아름다운 정원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추상화가’ 거부한 로스코

‘변화’의 철학이 낳은 美 최초 현대미술관

필립스 컬렉션 2층에 자리한 ‘로스코의 방’ .

필립스 컬렉션 2층에 있는 ‘로스코의 방(Rothko Room)’도 꼭 둘러봐야 할 명물이다.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대가인 마크 로스코(Mark Rothko)만을 위한 전시실로 1960년 필립스가 직접 만들었다. 이 방에는 로스코의 작품 4점만 전시돼 있다.

1961년 필립스가 없는 사이에 로스코가 이 방을 방문해 몇 가지를 바꿔놓았다. 하지만 필립스가 다시 원래대로 되돌려놨다고 한다. 그러나 방 한가운데 의자를 하나만 두라는 로스코의 의견만은 받아들였다고 한다. 현재 로스코의 방은 2006년 새롭게 만들어진 것인데, 옛것과 별 차이가 없다. 로스코는 필립스 컬렉션의 이런 방식을 다른 미술관에도 권했다고 한다.

로스코는 독특한 화가다. 작품도 난해하기 그지없다. 그는 러시아 출신이지만 미국을 대표하는 그림 유파인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를 대성시켰다. 그러나 본인은 정작 이런 평가를 거부하고 추상화가로 분류되는 것 역시 싫어했다. 그의 그림이 추상화가 아니라면 우리 같은 속인으로서는 도대체 어떤 그림을 추상화라고 해야 할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로스코는 약사인 아버지 덕에 넉넉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미국으로 이민 온 후 아버지가 사망하는 바람에 형편이 어려워졌다. 열 살 무렵에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창고에서 날품을 팔고 신문팔이도 하며 예일대에 진학했다. 그러나 대학 분위기가 싫어 2학년 때 자퇴했다. 1968년에는 심각한 심장병 진단을 받았으나 의사의 처방을 무시한 채 음주와 흡연을 계속했다. 결혼생활도 원만하지 못했다. 1970년 2월 25일, 피에 흥건히 젖은 채 부엌 바닥에 쓰러져 있는 로스코를 그의 조수가 발견했다. 동맥을 끊어 자살한 것이다.

로스코의 방에 전시된 4점의 작품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아마 수천억 원이 될 것이다. 그의 작품은 매우 난해한 것이 특징이다. 초록색과 밤색으로 칠해진 ‘초록과 밤색(Green and Maroon)’도 작가의 의도를 알아챌 수 없다. 서울 리움미술관에도 로스코의 대작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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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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