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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진단

‘멘붕 없는 근성’ 체화 ‘똑바로 멀리 치기’ 단련 ‘이기는 골프’ 익숙

한국 여자골프가 세계 최강인 이유

  • 이강래 | 헤럴드스포츠 대표 altimus@naver.com

‘멘붕 없는 근성’ 체화 ‘똑바로 멀리 치기’ 단련 ‘이기는 골프’ 익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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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지형 코스 많다보니…

사계절이 뚜렷한 것도 약점이 아닌 장점으로 작용했다. 그린이 꽁꽁 얼어붙는 겨울에는 훈련하기 어려운 환경이라 대부분의 선수가 따뜻한 나라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이때 집중적으로 레슨을 받는다. 이런 점은 스코어를 줄이는 데에 유리한 한국 특유의 맞춤형 훈련과 이어진다. 겨울 전지훈련 때 보통 코치 2~3명에 선수 15명 정도가 한 팀을 이룬다. 개인 특성에 맞는 일대 일 훈련이 가능하다.

한희원의 부친 한영관 리틀야구연맹 회장은 “한국 골프 지도자들은 스윙 연습과는 별도로 근력운동이나 체력훈련을 많이 시킨다. 덕분에 선수들이 어린 나이에도 골프에 필요한 근육이 만들어진다. 외국 선수들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화한다”고 말했다.

박세리는 세계적인 교습가인 데이비드 리드베터와 함께 1년간 치열하게 LPGA 투어를 준비했다. 박세리는 플로리다 주 올랜도의 리드베터 아카데미에서 사흘간 테스트를 받았다. 당시 어니 엘스 같은 유명 남자 선수들만 봐주던 리드베터는 “박세리는 스윙과 체격이 남자 같다”며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는 “1년만 가르치면 LPGA 투어에서 5승은 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대신 단서를 달았다. 훈련받는 1년 동안은 절대로 대회에 나가지 말라는 것.

15만 달러에 리드베터와 코치 계약을 한 박세리는 지옥훈련에 돌입했다. 오전 6시 기상해 오후 11시 취침 전까지 시곗바늘처럼 움직였다. 훈련, 라운드, 그리고 영어 공부가 생활의 전부였다. 식이요법도 병행했다. 체지방을 빼기 위해 밥은 먹을 수 없었고 닭가슴살 위주로 식단을 짰다. 탄산음료도 금지됐다. 고깃집에 가면 3~4인분을 해치우는 대식가이던 박세리는 6개월 만에 8kg을 뺐다. 대단한 절제력이자 집념이었다. 리드베터의 예언은 적중했고 박세리는 1998~99년 2년 연속 4승씩을 올렸다. 2001년과 2002년엔 각각 5승씩을 거뒀다.



‘힘이 아니라 타이밍’ 자각

골프계엔 “연습을 당할 장사는 없다”는 말이 있다. 재능이 뛰어난 선수도 연습을 많이 하는 선수를 이길 수 없다는 이야기다. 한국 선수들의 성공은 엄청난 연습량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의 거의 모든 인도어 연습장엔 밤늦도록 공을 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다. 자동 티업기 덕분에 반복적인 스윙 훈련이 가능하다. 한국 선수들의 스윙 메커니즘은 어느 나라 선수들과 비교해도 뛰어난 편인데 이런 연습 환경과 무관치 않다. JTBC골프 박원 해설위원은 “아이가 처음 골프에 입문하면 힘으로 친다. 그러다 이런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훈련하면 ‘스윙은 힘이 아니라 타이밍’이라는 것을 깨닫는다”고 말했다.

좋은 지도자들, 국가대표 육성 시스템, 인기 높은 KLPGA 투어, 두터워지는 선수층도 강점이다.

기성세대 골프 지도자는 주로 경험에 기초해 도제식으로 교육했다. 반면 요즘 젊은 지도자들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교육한다. 지도자 간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공부하고 연구하는 지도자만 살아남는다. 아이들은 골프에 입문해 스윙 자세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이런 경쟁력 있는 지도자를 만나게 된다. 서양인은 골프를 레저로 여긴 나머지 필드에서 대충 치는 경향이 있지만 한국인은 연습장에서 레슨부터 받는다. 즐기는 것보다 잘하는 쪽에 집중하는 것이다. 요즘엔 체력훈련부터 정신교육까지 코칭이 분화했다.

상당수 한국 지도자는 이제 해외 유명 지도자에 밀리지 않는다. 오히려 더 나은 면도 있다. 해외 지도자의 경우 레슨비가 비싸고 지리적 접근성이 떨어진다. 결정적으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 스윙에 관한 뉘앙스의 미묘한 차이는 통역으론 쉽게 전달되지 않는다. 중국은 한국 골프 지도자들의 경쟁력을 높이 사 꾸준히 영입을 시도하고 있다. 한연희 전 한국 골프 국가대표 감독은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 싹쓸이 신화를 일궜다. 김효주라는 걸출한 스타도 육성했다. 중국골프협회는 한 전 감독에게 중국 국가대표팀을 맡기려 했으나 대우 문제로 의견이 갈려 실현되지 않았다. 한국 골프 지도자가 영어나 중국어를 어느 정도 구사한다면 골프 티칭도 ‘한류산업’이 될 수 있다.

대한골프협회의 국가대표 육성 시스템은 한국여자골프의 기틀이다. 이 시스템은 중국과 일본을 넘어 전 세계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주니어 상비군과 국가 상비군, 국가대표 등을 연령대별로 따로 둬 어려서부터 ‘이기는 골프’에 익숙하게 했다. 주니어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을 모아 합동훈련을 시키고 승강(昇降)제를 통해 치열한 경쟁을 유도한다.

국가대표에 발탁되면 매년 국제대회에 보내 세계무대에 대한 감각을 키울 수 있게 한다. 거의 모든 주니어 골퍼는 태극 마크를 선망한다. 국가를 대표한다는 자긍심도 크지만 성공을 위한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또한 돈도 덜 든다. 협회에서 진행하는 모든 훈련 및 프로그램 비용이 선수에겐 무료다. 유니폼과 장비도 지원받는다.

한국 남자골프가 부진한 이유

쇼트게임에서 세계 정상급에 밀려


‘멘붕 없는 근성’ 체화 ‘똑바로 멀리 치기’ 단련 ‘이기는 골프’ 익숙

2015 프레지던츠컵이 열리는 인천 송도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 코리아.

한국 남자프로골프는 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같은 세계 무대에서 상대적으로 부진할까. 몇 가지 원인이 지적된다. 무엇보다 미국과 비교하면 선수 층이 얇다. 심지어 한국프로골프(KPGA)는 한국여자프로골프에 비해서도 흥행에 뒤처진다.

그리고 우리 남자 선수들은 미국·유럽 남자 선수들에 비해 아직 체력적 열세에 있는 것으로 비친다. 체력은 집중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기초체력의 열세는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자연히 드라이버나 아이언, 퍼팅에서 자잘한 실수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 우리 여자 선수들은 서양 여자 선수들과 체격이나 체력에서 대등하다.

골프 환경도 우리 남자 선수들에게 핸디캡으로 작용한다. 미국인들은 어려서부터 천연 잔디 위에서 놀면서 골프를 배운다. 하지만 한국에서 천연 잔디가 깔린 구장은 찾기 어렵다. 한국인은 플라스틱 매트 위에서나 기량을 쌓아야 한다. 오랜 기간 체득된 것과 속성으로 배워서 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는 결정적으로 쇼트게임의 열세로 이어진다.

많은 사람이 드라이버 비거리 같은 롱게임에서 우리 남자 선수들이 서양 선수들에게 뒤질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롱게임에서 우리 남자 선수들은 서양 선수들과 기량이 대등한 편이라고 한다. 세계 정상으로 가는 길에 놓인 가장 큰 문제는 오히려 짧은 거리의 아이언 샷이나 어프로치 샷, 퍼팅 같은 그린 주변에서 벌이는 쇼트게임이라고 한다.

아시아인으로서 유일한 메이저 대회 챔피언인 양용은은 “한국 선수들이 쇼트게임에서 서양 선수들에게 크게 뒤지진 않는다. 하지만 1, 2타 차이로 우승자가 결정되는 게 PGA 투어다. 미국의 버바 왓슨은 장타자이면서 쇼트게임도 잘한다. 놀이 삼아 골프를 하면서 본능적으로 기술을 익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런 한계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김형성이다. 2014년 1월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PGA 투어 소니 오픈 때 김형성은 최종 라운드에서 미국의 매트 쿠차와 맞붙었다. 김형성은 18홀 동안 쿠차에 8타나 뒤졌다. 쿠차가 4언더파, 김형성이 4오버파였다. 김형성은 “롱게임에선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쇼트게임에서 큰 격차가 있었다. 나는 그린을 놓치면 보기를 범했지만 쿠차는 어떻게 해서든 파 세이브를 했다”고 말했다.

“골프장 회원 반발 때문에…”

특히 PGA 투어는 페어웨이나 그린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긴 풀에 공이 잠겨버리는 깊은 러프로 유명하다. 반면 LPGA 투어에선 메이저 대회를 제외하면 깊은 러프로 무장한 코스가 많지 않다. 이에 따라 PGA 투어에선 더 정교하고 다양한 쇼트게임 실력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선수들은 이런 환경에서 골프를 익혀 러프에서 탈출할 다양한 기술을 갖고 있다.

반면 한국의 골프장에선 미국처럼 깊은 러프를 조성하기 어렵다. “골프장 회원들의 반발 때문”이라고 한다. 한 골프장 관계자는 “몇 차례 시도한 적이 있지만 내장객들의 불만으로 중단해야 했다”고 말했다. 깊은 러프가 없다보니 선수들도 이에 대비한 기술 습득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따로 연습할 환경도 마땅치 않다. 연습 그린에서 어프로치 연습을 하면 프로라도 쫓겨나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최경주(8승)와 양용은(2승), 배상문(2승), 노승열(1승) 같은 한국 선수들은 PGA 투어에서 우승했다. 이들의 우승이 값진 이유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본토 선수들을 이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남자골프의 현재와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오는 10월 인천 송도의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 코리아에서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2015 프레지던츠컵’이 열린다. 그런데 정작 우리 안방에서 열리는 큰 대회임에도 인터내셔널팀에 자력으로 출전할 한국 선수가 아직 한 명도 없다. 남자 선수들은 여자 선수들처럼 세계 골프의 주류로 자리 잡지 못한 셈이다. 그러나 한국 남자골프가 이런 문제들을 이겨낼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내 조만간 세계 정상에 다시 도전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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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래 | 헤럴드스포츠 대표 altim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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