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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 다 할 수도 아무것도 안 할 수도

대한민국 국무총리실

  • 이상훈 |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January@donga.com

모든 것 다 할 수도 아무것도 안 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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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따라 위상 딴판

수많은 업무가 있다지만 결국 총리실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총리를 보좌하는 것이다. 이는 총리가 누구냐에 따라 총리실의 위상이 180도 달라진다는 뜻이다. 정치적으로 힘 있는 총리가 오면 모두가 총리실에 주목하고, ‘무늬만 총리’가 오면 총리실도 있으나마나 한 조직으로 전락한다.

총리실 직원들이 꼽는 최고의 전성시대는 김종필 총리(1998~2000)와 이해찬 총리(2004~2006) 시절이다. 김 전 총리는 명실상부한 DJP(김대중-김종필) 공동정부의 한 축이었고, 이 전 총리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굵직굵직한 업무를 처리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 총리실은 외형적 확대도 이뤄냈다. 총리실장이 차관급 행정조정실장에서 장관급 국무조정실장으로 승격된 것이 1998년 3월이다. 국무조정실장 밑에 차관급 차장을 신설한 건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3월의 일이다.

이완구 전 총리가 취임하면서 총리실 직원들은 ‘제3의 전성기’를 꿈꾼 게 사실이다. 여당 원내대표 출신의 실세 정치인이 모처럼 총리에 취임하면서 총리실이 다시 한 번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열릴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로 이 전 총리의 취임 후 행보는 이런 기대를 희망으로 바꾸기에 충분했다. 취임 직후인 설 연휴, 이 전 총리는 서울 종로소방서를 방문해 방화복 납품 문제점을 보고받으면서 “가짜 방화복 문제는 국무조정실이 직접 챙기라”고 지시했다. 고유 업무가 불분명한 총리실에 국민적 관심이 쏠린 업무를 ‘직접 챙기라’고 지시한 것은 총리실의 위상 변화를 예고할 만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 전 총리의 행보엔 거침이 없었다. 간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는 “총리실이 명실상부한 국정 운영의 컨트롤타워가 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관계장관회의에 차관을 대신 보낸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는 “누구는 한가해서 이 자리에 있느냐”며 직격탄을 날렸다. 연간 3조 원의 복지 재정을 아끼겠다며 총리실이 직접 언론 브리핑을 주재하면서 정책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 전 총리의 정치적 라이벌이기도 한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향해서는 “부총리도 (총리 지휘를 받는) 장관”이라며 내각 지휘권을 확실히 행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대적인 ‘공직 기강 잡기’ 역시 총리실의 파워를 보여준 대목이었다.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은 직접 중앙부처 직원의 뇌물수수 사건을 적발하고 근무태도가 부실한 관료들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 작업에 착수했다. 각 부처에서 외부 출장이 잦은 상위 20%에게 “최근 3개월 간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났는지 경위서를 제출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공직복무관리관의 서슬 퍼런 감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현 조직의 전신인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이명박 정부 시절 벌인 주요 정치인 및 언론인 사찰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당시의 지원관 조직은 박영준 전 총리실 국무차장이 배후로 지목되면서 국무총리와 상관없이 청와대가 직접 움직인 게 아니냐는 논란이 컸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이 전 총리가 공직 기강 확립 의지를 표명한 이후 공직복무관리관실이 활발한 활동에 나서면서 누가 봐도 총리가 조직의 중심에 있는 모습을 확실히 보여줬다.

청문회 준비가 주업?

총리실 관료들은 겉으론 별로 내색을 하지 않는다지만, 까맣게 타버린 속내까지 감추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실세 총리가 ‘성완종 리스트’라는 돌발변수에 발목이 잡혀 황망하게 물러난 터라 아쉬움이 크다.

“이 전 총리 같은 분이 중심을 잡고 1년만 확실히 자리를 지켰어도 총리실의 위상은 확 달라졌을 것이다. 청와대는 굵직한 과제에 신경 쓰고 일상적인 국정은 총리실이 챙기는 ‘희망’도 현실이 될 수 있었다.”

총리가 떠난 후, 총리실이 자리한 세종청사 1동은 절간처럼 고요함이 감돈다. 외부에서는 총리가 불명예스럽게 떠났으니 뒤숭숭하지 않겠냐고 추측하지만, 정작 총리실 직원들은 이런 상황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 이 전 총리의 ‘불꽃같은 70일(재직기간 일수)’이 오히려 예외였다면 예외이지, 지난해 4월 세월호 사고가 터지고 정홍원 전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뒤 1년이 넘도록 제대로 일한 날이 드물 만큼 총리실의 비정상적 상황에 익숙하다.

최근 총리실 직원들의 가장 큰 걱정은 조만간 닥칠 인사청문회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5명의 후보자가 지명되고 이 중 3명이 낙마하면서 총리실의 주업무는 ‘청문회 준비’가 돼버렸다. 모든 부처가 그렇듯, 새로 지명된 수장(首長)의 인사청문회가 끝날 때까지 한 달 가까이 업무는 사실상 ‘올스톱’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보자의 신상은 물론 해당 부처의 정책 기조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모두 청문회 제출서류에 녹아들어야 하기에 청문회 준비 외에 다른 업무를 건사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총리실이 그처럼 혹독한 통과의례를 2년간 5번이나 치렀다는 것은 다른 업무를 제대로 할 시간이 없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총리실의 눈은 ‘차기 총리’로 향해 있다. 당장 청문회를 준비해야 하는 데다 자신들의 거취가 결정되는 인사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 전 총리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취임 직후 “당분간 인사는 없다”고 선언하며 대부분의 관료를 유임시켰다. 이 전 총리의 충남도지사 시절 행정부지사였던 최민호 씨를 비서실장에 임명한 것 정도를 제외하면 국장급 진용도 크게 흔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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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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