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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 최진석 건명원 원장

물들이지 않은 명주처럼 다듬지 않은 통나무처럼

혼란의 시대, 노자老子에게 길을 묻다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물들이지 않은 명주처럼 다듬지 않은 통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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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명사’로 살아가기

도(道)를 체득한 사람은 ‘갓난아기 같다’. 꾸밈이나 거짓이 없이 수수하다. 물들이지 않은 명주의 순박함(素)과 다듬지 않은 통나무의 질박함(樸)을 가졌다.

▼ 다들 진영으로 나뉘어 대립합니다. 이념 다툼도 거세고요. 욕망을 채우려는 경쟁의 강박도 심합니다. 물들이지 않은 명주, 다듬지 않은 통나무처럼 사는 게….

“노자의 표현을 빌리면 지적 체계가 이데올로기화한 것이 유위(有爲)입니다. 이념에 매이는 순간 생각은 고정됩니다. 이념으로 세상을 보면 변화하는 세계를 만나지 못합니다. 이념에 의해 조정되고 그것에 지배당하는 겁니다. 기존의 이념이나 신념에 따라 봐야 하는 대로 봐서는 안 됩니다. 보이는 대로 보라는 것이 노자의 가르침이에요. 갓난아기는 봐야 하는 대로가 아니라 보이는 대로 세계를 들여다봅니다. 그것이 무위(無爲)입니다. 노자는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보면서 시대를 관념으로 포착했습니다. 창조력은 보이는 대로 볼 수 있을 때 발휘됩니다.”

노자는 세계를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관계’로 이뤄진 것이라 봤다. 세계는 관계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변화하므로 생각을 틀 안에 가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가 묻는다.

“당신은 보편적 이념의 수행자입니까. 자기 꿈의 실현자입니까. 당신은 바람직함을 수행하며 삽니까. 바라는 걸 실행하면서 삽니까. 당신은 우리 중에 한 명입니까. 유일한 자기입니까.”

그러고는 조언한다.

“나는 내 윤리적 행위의 고유한 입법자다, 내 윤리적 삶은 나로부터 나온다, 내 삶의 원동력은 내가 작동시킨다, 나는 일반명사가 아닌 고유명사로 살아가겠다, 사회가 이런 결심을 한 개별자들의 총합일 때 역동적이고 건강해진다는 게 노자가 오늘날 우리에게 들려주는 지혜입니다.”

흑묘백묘에 담긴 노자 철학

▼ 건명원은 이념의 수행자가 아닌 꿈의 실현자, 역동적인 ‘창의 전사’를 키워내겠다고 밝힙니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를 의제로 내놓았는데, 대통령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도 ‘창조경제’의 뜻을 잘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국방부는 ‘창조국방’을 한다더군요. 창조경제를 두고 선언은 있으나 처방은 없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창조력,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발휘되는 것’입니다. 발휘하는 것이라면 내일부터라도 맘먹고 그렇게 하면 되겠죠. 하지만 발휘하려고 해도 발휘되지 않는 것이 창의력입니다. 그래서 난도가 높은 거예요. 창의력은 발휘될 수 있는 준비가 됐을 때 내면에서 튀어나오는 거예요. 산업화 시대의 사고로는 발휘될 수가 없습니다. 사실 민주화 시대의 사고로도 발휘되기 어렵습니다. 민주화가 민주적 자발성에 근거하기보다는 이념화했기 때문입니다. 산업화도 민주화도 모두 앞선 나라를 따라가는 일이었지요. 창의력이 튀어나오는 문화적 조건, 철학적 환경, 자유로운 기풍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더 중요할 것입니다.

창의력이 발휘되는 수준에 도달하면 그게 바로 선진화 단계입니다. 기존의 단계와는 차원이 달라요. 창조력이 발휘되려면 내면이 독립적 자발성으로 꽉 차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대답은 잘하는데 질문은 잘 못해요. 궁금증, 호기심이 적은 겁니다. 독립적 자발성은 자기에게만 있는 고유한 힘인 궁금증, 호기심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창조력은 선언이나 구호가 아니라 세상을 예민하게 바라보면서 궁금증, 호기심을 발동할 때 발휘됩니다. 산업화나 민주화 시대의 이념에 갇혀서는 창의력이나 창조성이 발휘되는 미래를 열지 못합니다.”

그는 이 대목에서 “공자의 철학은 산업화 시대에 걸맞고, 노자의 사상은 21세기와 잘 맞는다”고 말했다.

“유가는 국가권력을 강화해 민간을 이끌어가는 이념입니다. 노자는 국가 권력을 줄이고 민간의 자율성을 강조합니다. 지방자치는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과 잘 맞습니다.”

▼ 놓아둠의 다스림?

“그렇죠. 규율과 규제를 최소화하는 겁니다. 이념적 지배를 거부하죠. 덩샤오핑의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이 전형적 노자 사상이에요. 반면 마오쩌둥은 전형적으로 유가적이었죠.”

▼ 도덕경을 읽다보면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장 보드리야르 같은 포스트모던 철학자가 떠오릅니다.

“맞아요. 동양의 유학과 서양의 모더니즘이 실체론 혹은 본질론에 가깝다면 노장(老莊) 사상은 관계론에 속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 불교가 노자의 생각과 유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가치론적 판단 기준을 걷어내고 세계를 사실 그대로 드러나게 하려는 것이 노자가 말한 무위(無爲)입니다. 가치가 사라지면 사실만 남습니다. 불교는 만물이 서로 관계돼 있다고 봅니다. 인간이 고통스러운 이유를 집착에서 찾는데, ‘더 좋은 것’ ‘진짜’라고 가치판단을 하기에 집착하는 겁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사실을 가치관이나 이념의 틀에 가두는 것이 소유(所有), 그런 틀을 벗어버리는 것이 무소유(無所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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