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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로 풀어쓴 현대사

체급, 체력 제각각 산으로 가는 EU號

‘그리스 사태’ 잉태한 ‘유로존’

  • 조인직 | 대우증권 도쿄지점장

체급, 체력 제각각 산으로 가는 EU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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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급, 체력 제각각 산으로 가는 EU號
영국 정부는 어차피 국가 간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역내 ERM 체제를 무리하게 유지하느라 부작용이 컸던 것으로 판단했다. 파운드 방어를 위해 고금리 정책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이로 인해 국내산업에 큰 타격을 준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92년의 추억’이랄까, 학습효과가 워낙 강렬한 나머지 영국은 1999년 유럽 공통통화 ‘유로’의 도입에도 마지막까지 반대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15년여가 지난 지금,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들의 위기가 표면화하면서 당시 영국의 선택은 옳았던 것으로 평가받는 분위기다.

우리에겐 ‘늘 부러운 복지국가’로 인식되던 북유럽 선진국들도 당시 비슷한 피해를 입었다. 스웨덴은 1992년에 자국 통화 크로네가 공격받자 ERM 체제를 지키기 위해 정책금리를 한때 500%까지 인상하기도 했다. 이후 영국과 비슷한 과정을 통해 ‘시장 논리’에 순응한 뒤 ERM 체제를 탈퇴하고 변동환율제로 옮겨간 바 있다. 스웨덴은 1980년대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을 확대했고, 일본과 비슷하게 부동산 버블이 형성됐다가 통화 문제가 불거지며 막대한 부실채권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핀란드도 영국 파운드화 공격과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6개 ‘小國’은 자동 유로화

1988년 EC 집행위원장 자크 드롤이 앞서의 ‘베르너 보고서’를 계승하는 ‘드롤 보고서’를 작성해 유럽 내 경제 및 화폐 통합에 이르는 3단계 로드맵을 제시했다. 1990년 7월, 1단계로 EU 가맹국 간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이 허용됐다. 1994년 1월에는 2단계로 유럽중앙은행(ECB, European Central Bank)의 전신인 유럽통화기구(EMI, European Monetary Institute)가 설립됐다. 3단계로 1995년 12월 마드리드에서 열린 EU 이사회에서 새로운 통화의 명칭을 ‘유로’로 하는 안이 결정됐다.

마침내 1999년 1월 1일을 기해 오스트리아, 벨기에, 핀란드,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등 11개 나라가 단일통화 유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2001년 1월부터는 오늘날 채무불이행 사태를 빚은 그리스가 합류했고, 2007년에는 슬로베니아, 2008년에는 키프로스와 몰타, 2009년에는 슬로바키아, 2011년에는 에스토니아, 2014년에는 라트비아가 합류했다. 모나코, 산마리노 등 6개 소(小)국가는 예전부터 프랑, 마르크, 리라 등에 고정환율로 연동된 화폐를 사용해 자동적으로 유로를 도입하게 된 셈이다. 따라서 현재는 유럽 24개국이 ‘유로존’으로 불린다.



유로 도입에 맞춰 1998년 6월에 설립된 ECB 본점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다. 네덜란드 재무장관 출신 빔 도이센베르흐가 초대 총재(1999~2003)를 맡았고, 2대 총재는 프랑스 은행 총재를 지낸 장 클로드 트리셰가 8년간(2003~2011년) 장기 집권했다. 2011년 11월부터는 이탈리아은행 총재 출신의 마리오 드라기가 3대 총재로 집권 중이다. ECB는 유로를 도입한 18개국의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중앙은행 기능을 하고 있는데, 가맹국 중앙은행 총재들은 각각 ECB 하위조직인 정책이사회에 참여하도록 돼 있다. 의사결정기구인 집행이사회는 총재, 부총재를 포함한 이사 6명으로 구성된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중앙은행 출신자들은 반드시 의석을 차지한다.

유로의 도입은 정치적으로는 어떨지 모르나 경제적으로는 적지 않은 문제를 양산했다. 2001년 그리스 이후로 체급이 너무 떨어지는 남유럽 및 동유럽 국가들을 무리하게 한 경제권에 넣은 것은 재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독일만 ‘남는 장사’

유로존의 최우등생 독일과 채무불이행 사태에 직면한 그리스를 살펴보자. 유로 도입 전 독일 마르크와 그리스 드라크마는 시간이 갈수록 격차가 더 커지는 추세였다. 드라크마의 경우 1954년 1달러=30드라크마에서 2000년엔 1달러=400드라크마로 폭락했다. 반면 마르크는 경제부흥과 풍부한 자본 확충으로 인해 2차대전 이후 줄곧, 특히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지속적으로 절상됐다.

그리스는 탈세와 부패라는 고질적 문제를 등에 업고 있었으며, 특히 유로 가입 이후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경상수지가 GDP 대비 마이너스 7~14%의 만성적 적자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반해 독일은 유로 도입 후 경상수지가 더 호전돼 GDP 대비 5~7% 상승을 기록했다. 독일과 비슷한 경제구조, 즉 제조업이나 무역업이 강한 네덜란드와 베네룩스 3국 등도 꾸준히 흑자를 냈기에 이들도 유로의 수혜국으로 볼 수 있다. 다만 프랑스와 이탈리아처럼 선진국이지만 절대적 비교우위 산업이 없는 나라들은 GDP 대비 2~3%의 경상수지 적자를 봤다.

큰 틀에서 보면 독일 외에는 크게 남는 장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유로존 전체는 2012년 -0.7%, 2013년 -0.4%에 이어 2014년에야 겨우 0.9%의 성장률을 보였다. 경제와 화폐에 이어 재정까지 통합된다면 문제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국가별 이해관계가 다른 엄중한 현실에 비춰볼 때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극단적으로 볼 때 재정이 어려운 그리스나 여타 남유럽, 동유럽 국가들은 차라리 유로존에서 탈퇴한 뒤 자국 화폐로 다시 돌아가는 게 낫다는 의견이 많다. 자국 화폐 상태에서 일단 충분히 평가 절하한 뒤 다시 유로에 고정환율로 연동(Peg)시키면 역내 공동체로서 최소한의 위상은 유지하면서 경제적 측면에서는 자국의 약점을 방어할 수 있다는 논리다.

신동아 2015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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