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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에 길을 묻다

사욕에 찌든 ‘배신의 정치’를 경계한다

‘지록위마(指鹿爲馬)’와 망국(亡國)

  • 김영수 | 사학자, 중국 史記 전문가

사욕에 찌든 ‘배신의 정치’를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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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욕에 찌든 ‘배신의 정치’를 경계한다
더 크고 심각한 문제는 절대 황제 진시황이 남긴 통일제국 그 자체였다. 그 규모, 즉 통치 영역의 확대에 따른 통치 방식의 획기적 전환이 뒷받침되지 못했다. 전례가 없는 광활한 통치 영역과 새로운 시스템을 통치는커녕 통제할 역량도 없는 인물들이었다.

진시황이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단행한 각종 통일정책과 정치 · 경제 · 군사 · 문화를 아우르는 교통망 정비가 오히려 감당할 수 없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단적인 예로 진시황이 닦아놓은 도로망은 봉기군이 진의 수도인 함양으로 진격하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루트가 됐다.

진시황의 거대한 야심으로 형성된 제국, 갑자기 만들어진 각종 통일정책과 시스템을 따라잡기에 호해와 조고의 역량은 턱없이 모자랐다. 게다가 통일 이전의 습속에 길든 백성들의 ‘관성력(慣性力)’이 새로운 통일제국을 향한 ‘향심력(向心力)’으로 전환되기도 전에 제국의 선장이 쓰러졌고, 후임 선장은 전혀 신뢰감을 주지 못했다. 그렇다보니 통일제국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이심력(離心力)’이 ‘저항력(抵抗力)’으로 바뀌어 격렬한 화학적 반응을 일으킴으로써 제국을 송두리째 흔들어놓기에 이르렀다.

조고는 정략과 정치적 술수에는 능했을지 몰라도 권력관계를 조절하는 균형감각은 갖추지 못했다. 정적을 제거할 줄만 알았지 이용할 줄은 몰랐다. 최고권력자를 자신의 영달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할 줄만 알았지 제국과 백성을 위해 활용할 줄은 몰랐다.

호해는 현장 경험이 거의 없는 평범한 왕자에 지나지 않았다. 아버지와 형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잡힌 보통 청년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니 권력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조고가 던진 무한권력을 덥석 떠안았다. 준비되지 않은 리더였고, 리더십이랄 것도 없었다. 욕심만으론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제국을 이끌 ‘조타수’란 어불성설이었다.



권력의 크기와 통치 규모의 크기는 결코 정비례하지 않는다. 더욱이 욕심의 크기와 권력의 크기가 비례하는 것도 아니고, 욕심의 크기와 통치 규모의 크기가 비례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권력을 뒷받침하는 리더십의 질적 심화 없이는 크기를 감당할 수 없다. 과도한 부담, 능력의 범위를 벗어난 영역을 호해는 제대로 인지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력자, 이른바 측근이 필요했다. 호해는 갈수록 조고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규모의 정치 구역과 새로운 시스템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사람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과도 통한다. 형제들에 대한 무자비한 살육과 이사의 제거는 그 단적인 예다. 신하들과의 소통에 문제가 발생한 것은 당연했다. 거대한 통일제국을 이끈 아버지 진시황은 호해에게는 오를 수 없는 산이었다. 그래서 호해는 아버지를 극복하는 대신 통치 스타일을 그저 원숭이처럼 흉내 냈다.

문제는 그나마 이 스타일을 유지할 만한 최소한의 통치 철학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칼을 쥐고 있다고 다 무사(武士)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무작정 칼을 휘두르는 자는 무사가 아니라 무부(武夫)에 지나지 않는다. 이사와 장군 풍겁 등이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의 와중에 엄청난 인력과 재정이 드는 아방궁 축조를 중지해달라고 건의하자 호해는 이렇게 답했다.

천하를 차지한 고귀한 사람은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군주는 엄하게 법령을 밝혀 아랫사람으로 하여금 감히 나쁜 짓을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천하를 통치하는 것이다. (…) 지금 짐이 즉위한 이후로 2년 동안 도적이 일어났는데도 너희들은 막지 못하였다. 게다가 선제의 업적마저 내버리려 하니, 이렇게 해서는 위로는 선제에 보답할 수 없고 아래로는 짐을 위해 충성을 다하지 못하게 되는데 그러고도 무엇을 믿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단 말인가.

통치의 본질에 無知

진시황이 남긴 통일제국은 그때 막 개혁의 시작 단계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종 통일정책은 전례가 없는 획기적인 정책들이었고, 방대한 교통망은 통일된 각 지역 간의 전방위 교류를 위한 최상의 네트워크였다. 진시황의 정책이 시간을 갖고 백성들로부터 당위성을 인정받고 공감대를 끌어냈더라면 제국의 향방은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문제는 역량과 경륜이 전혀 뒷받침되지 않은 호해와 조고 따위가 제국을 떠맡았다는 것이다.

통치 영역이 확대되거나 새로운 시스템이 들어서면 그에 따른 보다 더 정교한 시스템 장착, 리더의 무분별한 결정을 저지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는 일이 급선무다. 2세의 자질이 떨어질 때는 더욱 그렇다.

진시황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죽음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불로장생에 대한 지나친 욕망과 죽음이란 단어조차 혐오할 정도로 신경질적인 집착은 결국 후계자 문제를 미리 정리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실책으로 이어졌다. 진시황이 조금만 일찍 후계 문제를 대외적으로 공표했다면 조고는 쿠데타 엄두를 못 냈을 것이다. 어떤 면에선 진 제국 조기 퇴장의 궁극적 책임은 진시황에게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물론 능력 밖의 영역을 탐한 조고, 호해, 이사의 책임 또한 진시황 못지 않다. 통치의 방식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닌 통치의 본질을 인지하는 최소한의 자질마저 이들은 갖추지 못했다. 어쩌면 이 역시 전혀 새로운 제국의 시스템이 이들의 자질을 질식시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패한 정치인들이나 사이비 언론들은 흔히 ‘지록위마’와 같은 행태로 국민을 편 가르고 상식을 뒤틀고 판단력을 흐트러뜨리려 한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의미는 그런 사악한 의도를 비판하는 역사적 차원에 놓여 있다. 나아가 고의로 진상을 가리고 시시비비를 뒤바꾸는 행태, 자기 편과 그렇지 않은 편을 확인하려는 비열한 술수를 꼬집는다. 지금 우리 정치가들과 정치판이 벌이고 있는 자기기만적 정치 쇼가 ‘지록위마’와 하등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기로에 선 정치

큰 정치가들이 사라지고 사욕에 찌든 지역 패권주의자들이 펼치는 ‘배신의 정치’만 넘쳐나는 우리 정치판의 한계가 이제 임계점에 다다른 느낌이다. ‘지록위마’의 정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벌써 혹자는 최고통치자에 대한 ‘탄핵’을 염두에 둔 발언을 쏟아내고, 신당 창당을 비롯한 정계 개편 바람이 꿈틀거린다.

조고가 연출한 ‘지록위마’가 한 나라의 멸망을 암시하는 정치 쇼였다면, 지금 그리고 앞으로 수도 없이 벌어지고 벌어질 우리 정치판의 ‘지록위마’는 과연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국민은 저들이 말이라고 가리키는 사슴의 실체를 똑똑히 봐야 한다. 자칫 저들의 술수에 말려들면 민심은 찢기고 국론은 분열될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국가의 몰락을 초래할 수도 있다. 우리 정치는 지금 기로에 섰다.

신동아 2015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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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 사학자, 중국 史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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