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호

“통일 이후 통합정치 내각제로 준비해야”

강원택 교수

  •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2015-07-22 14: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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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 이후 통합정치 내각제로 준비해야”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정치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동안 ‘한국의 정치개혁과 민주주의’를 비롯해 그가 발표한 저작은 학계는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다. 그뿐 아니라 강 교수는 여러 매체에 활발하게 칼럼을 발표해 현실 정치 문제에 대해서도 주목할 견해를 제시해왔다. 보수와 진보의 경쟁이 갈수록 격렬해지는 상황에서 강 교수의 현실 진단과 대안 제시엔 귀담아들을 만한 내용이 많다. 광복 70년을 맞아 강 교수에게 한국 정치의 과거·현재·미래, 정당 개혁과 헌법 개정 등 우리 정치의 과제에 대해 물었다.

    김호기 1961년생이시죠? 어디서 자랐습니까.

    강원택 서울에서 태어나고 부산에서 컸어요. 아버지가 외국에 나가 계신 동안 어머니가 혼자 힘들어서 3형제와 함께 외가가 있는 부산으로 가 거기서 초·중·고를 졸업했어요.

    김호기 저 역시 강 교수처럼 1970년대에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는데, 그 시절을 어떻게 기억합니까.

    강원택 중·고등학교 시절 한국 사회가 역동적으로 발전해온 시기를 지켜봤던 것 같아요. 소풍 가서야 먹을 수 있는 귀한 과일이 바나나이던 때였는데, 두 가지를 특히 기억해요. 하나는 경제가 활발히 성장했다는 거예요.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수출 100억 달러 금자탑 등이 기억납니다. 빠르게 근대화하는 한국을 지켜봤어요. 다른 하나는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두려움, 막연한 공포였어요. 이철 전 의원, 유인태 의원 등이 관련된 민청학련 사건 같은 게 기억납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신문을 많이 봤는데 너무 많이 봐서 할아버지께 혼난 적도 있어요. 정치적 사안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어요.

    정치학을 선택한 이유

    김호기 당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1979년 ‘10·26 사태’인 것 같아요.

    강원택 저 역시 큰 충격을 받았어요. 고등학교 동기들 중 관심이 있는 친구 몇이서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과 짬뽕을 먹으면서 거기에 대해 토론하기도 했어요.

    김호기 정치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강원택 1981년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해서 학부에서는 지리학을 공부하고 대학원부터 정치학을 공부했어요. 어릴 적부터 정치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더욱 분명해진 게, 사회가 잘 발전하기 위해서는 역시 정치가 중요하다는 것이었어요. 1980년대는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시대인데, 저는 운동권에 뛰어들 성향은 아니었어요. 우리 사회가 고민하고 아파하는 부분에 대해 어떻게 답을 찾고 풀어야 할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가 내린 결론은 ‘결국 정치 아닌가’ 하는 것이었어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어떻게 더 나은 형태로 나아가고, 어떻게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지요.

    김호기 석사과정 때 주로 관심을 가진 분야는 어떤 것입니까.

    강원택 중국 정치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 가운데 정치적 언어에 특히 주목했어요. 어떤 정치적 언어가 중국 농민을 뜨겁게 했는지, 다시 말해 마르크시즘이 어떻게 중국화했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었어요. 마오쩌둥 사상 안에는 마르크시즘과 유가, 도가 사상이 모두 담겼어요. 석사 논문은 그런 주제를 다뤘습니다.

    김호기 강 교수는 정당정치와 민주주의를 연구한 우리 사회의 대표적 학자 중 한 분입니다. 이 분야는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습니까.

    강원택 석사를 마친 다음 박사과정에 입학해 수료할 때까지 다녔어요. 1992년 총선 당시 손봉숙 박사가 주도한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공선협)가 발족했는데, 제가 정책간사를 맡았어요. 그때만 해도 선거가 얼마나 역동적인지 모르던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선거를 지켜보면서 학문적 관심이 확 바뀌었어요. 선거가 재미있구나,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렇게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김호기 영국 런던정경대(LSE)로 유학을 갔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강원택 미국 몇몇 대학에서도 입학허가서를 받았지만, 영국 정치와 영국 선거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LSE로 갔어요. 런던이라는 대도시가 주는 매력도 있었고요. 처음에는 옥스퍼드대로 가려 했는데, 제가 공부하려는 분야의 담당 교수가 은퇴해 그분이 추천해준 LSE 교수가 지도교수가 됐어요.

    “통일 이후 통합정치 내각제로 준비해야”
    김호기 박사학위를 일찍 끝낸 것으로 압니다.

    강원택 4년 만에 학위를 받았어요. 하지만 서울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것까지 포함하면 8년 이상 걸린 셈이에요.

    김호기 숭실대 정치외교학과에 몸을 담았는데요.

    강원택 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때가 1997년 외환위기 시절이었어요. 4년 정도 고생하다가 2001년 숭실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로 돌아온 것은 2010년이었고요.

    김호기 정치학이나 사회학은 기본적으로 서양 학문이지만, 자기 사회를 다루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서울대에서 한국 정치를 강의하는 것으로 아는데, 어떤 생각입니까.

    강원택 그전까지는 김학준 교수와 이정복 교수가 가르쳤어요. 한국 정치를 가르치는 것에 상당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끼고 있어요. 두 가지인데, 하나는 한국 정치만큼은 서울대 정치학과가 잘 가르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고요. 다른 하나는 한국 정치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모두 고려한 비교정치적 시각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김호기 강의의 구체적인 내용은 어떤 것인지요.

    강원택 제도로서의 한국 정치를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할 것이냐가 핵심이에요. 그래서 가르칠 때 나눠서 가르쳐요. 대통령, 국회, 선거, 정당, 관료, 행정부, 지방정부, 언론, 시민사회 등이 중요 내용인데, 현재 돌아가고 작동하는 부분에 특히 주목합니다. 국제적인 수준에서 한국 정치학을 미국이나 유럽의 정치학에 끌려가지 않고 독자적인 학문 영역으로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고민이 크지요.

    ‘박정희가 세운 집’

    김호기 ‘신동아’가 광복 70년을 맞아 준비한 이 기획에서 이른바 ‘386세대’로는 김상조 교수에 이어 강 교수가 두 번째로 인터뷰를 하는데요, 정치학 전공자로서 광복 70년을 어떻게 봅니까.

    강원택 광복 70년이 분단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대한민국만을 놓고 보면, 우리 스스로 자랑할 만한 성취를 이뤄왔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이젠 흔한 말이 됐지만 경제적 성장과 정치적 민주화라는 두 과제를 한 세대 만에 이룬 나라가 많지 않아요. 저는 대한민국이 세워지면서 등장한 두 개의 이념적 기초에 주목하고 싶어요. 하나가 반공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이라면, 다른 하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서의 대한민국이에요. 돌아보면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많이 훼손했어요. 그래서 저는 4·19가 큰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요청으로 민주주의에 관한 책을 쓰는데, 흥미로운 것은 1950년대 후반 당시 도시화율도 낮고, 문맹률도 높고, 한 번도 민주주의를 제대로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4·19가 일어났다는 점이에요. 학생들과 언론이 힘을 합쳐서 만든 거잖아요. 한반도에 살기 시작한 이래 시민의 이름과 힘으로 처음으로 권력이 교체된 것 아니겠어요? 4·19를 통해 자유민주주의가 반공주의에 대치하는 가치와 전통으로 우리 사회에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자유민주주의는 서슬 퍼렇고 가장 어두웠던 유신체제와 전두환 정권 아래서도 끊기지 않았어요.

    김호기 4·19의 연장선에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이 있었어요. 우리 민주화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강원택 자세히 보면 한국의 민주화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성취한 것 이외에 별 것 없었어요. 동유럽 민주화는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바뀌었고, 남아공도 마찬가지였어요. 저항세력이 권력을 잡아서 새로운 질서를 끌고 나가는 민주화였지요. 우리나라는 과거의 적대적인 두 세력이 타협을 통해 새로운 라운드로 넘어가는 민주화였고요.

    저는 노태우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에 이르는 20년이 수년 전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가 표현한 ‘박정희가 세운 집’을 시대에 맞게 교정해나가는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북방정책으로 냉전에서 벗어났고, 김영삼 대통령은 문민통치를 시작했어요. 김대중 대통령은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냈고, 노무현 대통령은 탈권위와 균형발전을 추구했지요.

    최장집, 임혁백, 강원택

    김호기 강 교수의 연구를 선배 학자들의 연구와 비교해보면, 1960년대 대학을 다닌 최장집 교수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2002)에서 한국 민주화 과정을 비관적으로 평가하는 데 반해, 1970년대 대학을 다닌 임혁백 교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 : 한국 근대정치의 다중적 시간’(2014)에서 낙관적으로 평가하고 있어요.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로서 강 교수는 선배 학자들 연구를 어떻게 보는지요.

    강원택 임 교수는 정보화 이후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봐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낙관적으로 보지는 않아요. 오히려 최 교수의 견해에 더 공감합니다.

    김호기 강 교수는 ‘한국정치 웹 2.0에 접속하다’(2008)라는 책을 낸 적도 있는데요.

    강원택 한때는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에 관심이 많았어요. 하지만 요즘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요. 민주화 이전 많은 사람이 민주주의를 꿈꿨어요. 그런데 최근에 정치도 그렇고 민주주의도 그렇고 근원적인 것에 대한 고민이 사라진 것 같아요. 정치란 공동체의 질서를 만들어내고 합의를 도출해내며 미래를 향해 나가도록 하는 것인데, 한국 정치는 이에 대한 고민은 없고 권력을 통해 자기 잇속을 챙기려는 것에 매몰돼 있어요. 무엇보다 공동체에 대한 고민이나 교육이 없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보여준 것처럼 국가가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명확해요. 명확한 한계라는 것은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발전국가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거예요. 국가는 계획하고 주도하며 책임을 지는 것이었고, 사람들은 이 국가를 따라가기만 하면 됐어요. 그동안 일정한 성과가 있었지만, 이제는 국가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제한돼 있지 않습니까.

    이 과정에서 비국가적 영역인 경제와 시민사회가 훨씬 효율적이고 영향이 큰 것으로 바뀌었어요. 이제는 국가가 강제로 끌고 나가는 게 아니라 시민 개개인이 공동체적인 흐름에서 자기의 역할이나 기여해야 할 부분을 고민하면서 함께 시대적 변화를 끌고 가야 하는데, 이게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아요. 여전히 국가 중심적인 생각을 가진 거죠. 문제는 국가가 주도하는 시기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김호기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슬로건이 큰 성공을 거뒀어요. 우리나라는 여전히 ‘문제는 정치야’인 것 같아요. 지금 우리 정치의 핵심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폐쇄적인 정당정치

    강원택 가장 큰 문제는 폐쇄적인 정당 체계예요.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어요. 하나는 내용적인 면이고, 다른 하나는 정당의 수와 관련돼 있어요. 내용적으로 본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삶과 관련된 것입니다. 교육, 직업, 연금, 주택, 의료보험 같은 것들이에요.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삶과 관련된 문제로 이동했는데, 정당이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어요. 정당의 인프라스트럭처는 삶의 문제를 다루는 반면, 상부구조는 여전히 지역주의에 머물러 있어요.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가 조응하지 않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가진 고민들을 정치가 드러내지 못하는 겁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폐쇄적인 정당정치가 계속되는 까닭은 지역주의와 선거제도가 결합했기 때문이에요. 그동안 민주화를 성취하고 진전도 이뤘지만 중앙정치에서 보면 다당적 경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지역 수준으로 가면 경쟁이 부재한 정당정치가 수십 년째 지속되고 있어요. 밖에서 뭐라고 하든지 보수 정당은 국회의 120석 이상을, 진보 정당은 100석 이상을 차지해왔어요. 이것은 어마어마한 기득권입니다. 한마디로 우리 정치는 독과점, 카르텔 구조인 거죠.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 소비자인 유권자에 대한 반응성이나 책임성을 가질 수 없어요. 정치가 그들만의 폐쇄적 영역이 된 거죠. 대표해줄 집단이 없으니 지지 정당이 없고, 그러다가 어느 인물이 주목을 받게 되면 그 인물에 쏠리는 포퓰리즘과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김호기 정당정치에 대해선 학계 안에서 두 모델이 경합해왔어요. 하나는 최장집 교수로 대표되는 대중정당 모델이고, 다른 하나는 정진민 교수로 대표되는 선거전문가 정당 모델이에요. 전자의 대표 격이 독일 정당이라면, 후자의 대표 격은 미국 정당들인데요. 강 교수가 보기에 어느 모델이 우리 정당이 가야 할 방향인가요.

    강원택 꼭 선택해야 한다면 최 교수 모델을 지지하고 싶어요. 두 개 모두 이념형이에요. 두 개를 극단의 형태로 놓고 논의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연속선상에 놓고 토론해야겠지요.

    저는 2004년 이후의 정치개혁이 한국 정치를 망가뜨렸다고 생각해요. 원내정당 모델의 핵심은 국회의원들에게 자율권을 주자는 거였어요. 문제는, 국회의원이 자율권을 갖는 것은 좋지만 정당이 갖는 고유한 이념적 지향점이나 구현하고자 하는 목표를 등한시하는 데 있습니다. 조직화한 집단이라면 일정한 기호와 규율과 리더십을 갖는 게 당연하고 필요해요. 하다못해 학교 동창회에서도 몇 번 빠지면 벌금을 내게 돼 있잖아요. 2004년 이후 정당의 약점은 조직으로서의 정당이 약화됐다는 데 있어요. 리더십이 계속 교체되는 것이 큰 문제예요. 리더십이 약화되면 변화하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영국 노동당이 바뀐 것도 토니 블레어의 리더십에 힘입은 겁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현역 의원을 기득권자로 만들었다는 점이에요. 유럽 시각에서 보면 말이 안 되는 게 지구당 폐지예요. 현역 의원은 의원사무실을 열 수 있지만, 경쟁자들은 조직이나 공간을 가질 수 없게 됐어요. 정당한 경쟁이 아닌 거지요. 지구당 폐지는 지역주의 정치 아래서 영남에선 새누리당을, 호남에선 새정치연합을 더욱 유리하게 만들었어요. 제왕적 당 총재로부터 의원들에게 자율성을 주겠다는 취지엔 공감하지만, 그것이 극단적으로 가면서 오히려 우리 정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통일 이후 통합정치 내각제로 준비해야”


    김호기 정당 개혁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강원택 정당을 스스로 변화하게 하는 것이 중요해요. 법으로 강제하는 게 아니라 정당이 유권자의 뜻을 주목해 스스로 개혁해야 하는 겁니다. 기업이 좋은 제품을 많이 팔아 돈을 많이 버는 게 목표인 것처럼요. 정당 구조가 열려서 ‘샤오미’와 같은 정당이 나타나 유권자의 호감을 얻으면 기존의 거대정당도 살아남기 위해서 바뀔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생태계 속에서 정당들의 변화가 나타나야 하는 거죠. 지구당 문제도 그렇고 오픈 프라이머리 문제도 그렇고, 변화하지 않아서 살아남을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정당은 당연히 변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봐요.

    ‘87년 헌법’의 한계

    김호기 노무현 대통령이 강 교수의 ‘한국의 정치개혁과 민주주의’(2005)를 언급해 큰 화제가 됐슴니다. ‘87년 헌법’을 어떻게 보는지요.

    강원택 저는 ‘87년 체제’가 처음부터 제한적인 의미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87년 헌법에 담긴 핵심 사항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당시 헌법 개정을 주도한 양 김씨(김영삼과 김대중)의 의도가 담긴 ‘대통령 직선제’였고, 다른 하나는 유신이 모든 것을 망가뜨렸기 때문에 1962년에 개정된 헌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문제는 이것이 옛날 헌법이라는 데 있어요. 자유로운 토론과 정치활동이 보장되지 않던 시절에 만들어진 헌법이니까 기본권이나 분권 등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87년 체제가 성취하고자 했던 목표는 견제받는 권력, 장기집권 방지, 절차적 민주주의 확립이었어요. 현 시점에서 이런 가치들은 거의 다 이뤄졌기 때문에 그것을 넘어서 새로운 가치를 구현해야 할 지점에 도달했어요. 하지만 이 과제 해결이 단기적으로 가능해 보이지는 않아요. 지금 헌법 개정을 하자면 찬성과 반대가 6대 4 정도일 터인데, 이 6 가운데서도 어떻게 바꿀 것이냐에 대해 의견이 다양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호기 권력구조 개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강원택 아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권력구조에 대한 논의도 활성화할 필요가 있지만, 정치사회에서 다양한 주장을 펼칠 수 있는 다당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내각제적 형태에 마음이 기울어요.

    그 이유는 대통령제의 한계에 있어요. 첫째, 우리 사회가 대통령이 될 만한 자질을 가진 인물들을 효과적으로 키워내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역대 대통령들을 보면 카리스마도 있었고 권위도 있었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2004년 탄핵이나 2008년 광우병 파동을 보면 대통령의 권위가 옛날과는 다른 것으로 보여요. 문제는 준비되지 못한 인물들이 어느 날 다른 분야에서 거둔 성공을 통해 정치권에 들어오는 것인데, 이들을 정치적으로 검증해본 적이 없어요. 더불어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가져요. 전형적인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에서도 대통령은 권력을 연방 주지사와 나눠 가집니다.

    두 번째는 5년 단임제의 한계예요. 정권이 교체되면 이전 대통령이 추진하던 주요 정책이 다 단절돼요. 장기적 국가 과제를 실현할 수 없는 구조예요.

    김호기 정책은 물론 사용하는 말까지도 거의 모두 바뀌게 되는 것 같아요. 노무현 정부에서는 ‘로드맵’이란 말을 썼는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니 로드맵은 모두 사라지고 ‘액션 플랜’이 그 자리를 대신했지요.

    강원택 흥미로운 것은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같은 뿌리인데, 지금 ‘녹색’은 다 사라졌다는 점이에요. 전임 대통령의 것이라면 다 없어지게 돼요. 이런 시스템이라면 박정희 대통령이라고 잘했겠어요? 오래했으니까 가능했던 변화예요. 대처가 영국병을 치료한 것도 장기집권이 가능했기 때문이지요. 개인의 장기집권이 아니라 집단이 같이 끌고 나가는 형태의 시스템을 만들어내면, 정책의 연속성이라는 면을 잘 살려낼 수 있어요. 또 정치적 책임성도 명확히 물을 수 있고요.

    이 점에서 정당들이 개방적으로 경쟁하는 내각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현재 정당정치를 염두에 두는 것은 아니고, 통일 이후의 한국을 고려할 때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할 것으로 보여요. 통일 이후의 한국은 지금의 이질적인 두 사회를 포용적인 한 사회로 변화시켜야 하는데, 지금은 승자독식 체계예요. 메르켈은 독일 통일 15년 만에 동독 출신으로 총리가 됐는데, 우리 사회의 경우 북한 출신이 15년 만에 그러기는 힘들 겁니다.

    김호기 선진국들을 보면 미국을 제외하곤 대다수가 내각제로 운영돼요. 우리 사회에서 점증해온 사회갈등을 고려할 때 합의민주주의로 가야 하는데 대통령제에서는 불가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강원택 지금까지 대통령제가 꼭 나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 훌륭한 분이 많아요. 정치적 역량은 없지만 사회통합에 적합한 분이 대통령을 맡는 거예요. 정부와 체제를 분리해 영국 여왕과 캐머런 총리처럼 대통령은 체제를 대표하고, 총리가 정부를 대표하면 되지요. 지금은 대통령이 싫으면 체제 자체가 싫은데, 이런 상황은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목공 일 배우고 싶어

    “통일 이후 통합정치 내각제로 준비해야”
    김호기 내각제 개헌을 포함한 헌법 개정이 적절한 시점에 추진돼야 할 것 같아요.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공정한 시장과 더불어 포용적 정치가 필요조건이지요. 강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전문적 연구와 대중적 칼럼 쓰기를 병행하는 드문 지식인인데, 앞으로 어떤 연구 계획을 갖고 있습니까.

    강원택 정치제도, 권력구조, 분권화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어요. 요즘 쓰는 책은 내각제에 관한 것이에요. 한국 정치를 다룬, 잘 알려진 영어 텍스트가 많지 않아서, 길게 보아 한국 정치를 알리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통일 이후까지를 포함해 민주주의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 어떻게 정치적 안정을 이룰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 싶습니다.

    김호기 개인적인 버킷리스트는?

    강원택 꼭 해보고 싶은 것은 퇴임 후 목공을 배우는 거예요. 몇 해 전 연구년에 목공을 배우려고 강좌에 등록했는데, 일정이 잘 안 맞아서 취소한 적이 있어요. 나중에 목수가 돼서 취미생활로 해보고 싶어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니까 여기저기 다녀보고 싶기도 해요. 알래스카와 남미를 가보지 못했는데, 한번 다녀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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