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부자와 미술관

미국의 대영박물관 꿈꾼 ‘영국 양반’의 자존심

보스턴 미술관

  •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미국의 대영박물관 꿈꾼 ‘영국 양반’의 자존심

3/3
우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가

카유보트는 파리의 상류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다. 변호사이자 엔지니어였을 정도로 재능이 많았다.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도 상속받았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참전한 그는 전쟁이 끝난 후에야 본격적으로 그림에 입문해 드가 등 인상파 화가들과 교류했다. 1876년 2회 인상파전 때 8점의 그림을 발표하며 정식으로 데뷔했다.

그는 34세에 그림 그리기를 중단하고 정원 가꾸는 일과 요트 경기 등에 몰입했다. 예술, 문학, 철학, 정치학 등에도 많은 관심을 쏟았다. 결혼은 하지 않고 11세 아래 하층계급의 여자와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녀에게 많은 재산을 남기고 45세의 짧은 생을 마쳤다.

카유보트는 오랫동안 화가로서보다는 예술가 후원자로 더 많이 기억됐다. 1950년대에 이르러 후손들이 그의 작품을 팔기 전까지 그의 작품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사망한 지 70년이 지나고서야 미술사학자들은 그의 예술적 재능을 재평가했다.

폴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는 보스턴 미술관의 대표 소장 작품 중 하나다. 1897년 타이티에서 그린 대작(139×375cm)으로, 고갱은 그림 왼쪽 위에 이 세 가지 질문을 불어로 직접 써넣었다. 고갱은 유년 시절 가톨릭 학교에서 선생으로부터 이 질문을 들었다고 한다.



고갱은 1891년 프랑스령의 남태평양 타이티 섬으로 건너갔다. 이 그림을 그린 1897년경은 그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시절이었다. 그해 사랑하는 딸이 죽었고 빚에도 허덕였다. 자살 시도도 여러 번 했다.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철학적 사상에 빠져들면서 이 그림을 그린 것이다.

작품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인생의 세 단계가 묘사됐다. 맨 오른쪽 세 여인과 한 아이는 인생의 시작을 나타낸다. 중간에는 어른들의 일상생활을 그렸다.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다. 맨 왼쪽에는 종착역에 도달해가는 인생 여정을 나타냈다. 이 그림은 후기 인상파로 나아가는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된다. 고갱은 1898년 이 그림을 파리로 보냈고, 미술상 볼라르의 손에 들어갔다. 그림을 공개한 전시는 성공적이었고, 볼라르는 1901년 2500프랑(2000년 가치로 1만 달러)에 한 수집가에게 팔아넘겼다. 이후 이 그림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1936년 뉴욕의 한 화랑에 입수됐고, 바로 그해 보스턴 미술관이 이 그림을 사들였다.

미국의 대영박물관 꿈꾼 ‘영국 양반’의 자존심
못다 이룬 사랑, 누드화로 남다

미국의 대영박물관 꿈꾼 ‘영국 양반’의 자존심
보스턴 미술관에는 또 한 점의 독특한 누드 작품이 있다. 한 쌍의 연인이 발가벗은 채 부둥켜안고 춤추는 그림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의 ‘누드 연인(Two Nudes(Lovers))’으로 그림 속 남녀는 화가와 그의 애인이다(하지만 코코슈카는 정작 표현주의 방식의 초상화 풍경으로 유명한 작가다).

상대 여인은 오스트리아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의 미망인 알마 말러. 코코슈카는 1913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빈에서 알마에 대한 사랑의 징표로 이 그림을 그렸다. 당시 빈은 두 사람의 스캔들로 꽤 떠들썩했는데, 그림에는 그런 사랑의 환희가 그대로 녹아 있다.

알마의 아버지는 오스트리아의 유명 화가였다. 알마는 피아노 작곡가로 성장했고, 그런 재능 덕인지 스물세 살인 1902년 당대 최고의 음악가 말러와 결혼했다. 말러는 알마보다 19세나 많았다. 알마는 타고난 미모와 활달한 성격으로 뭇 남성들을 사로잡으며 빈 사교계를 심심치 않게 했다. 화가, 음악가 등 많은 예술가가 그녀의 상대로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독일 종합미술학교 바우하우스를 만들고 교장까지 지낸 건축가 월터 그로피우스와의 염문도 유명하다.

남편 말러가 1911년 심장병으로 사망한 이후 알마의 연애 상대가 바로 코코슈카였다. 1914년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코코슈카는 군에 징집돼 둘은 헤어지게 됐고, 알마는 이미 군에 가 있던 옛 애인 그로피우스와 재회하고 1915년 그와 결혼했다. 5년 후 이혼한 그녀는 이번엔 프라하 태생의 시인이자 작가 프란츠 베르펠과 동거하다 1929년 결혼했다. 프랑스에 살던 이 부부는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하자 베르펠이 유대인인 까닭에 1940년 미국으로 탈출,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했다.

미국의 대영박물관 꿈꾼 ‘영국 양반’의 자존심
최정표

1953년 경남 하동 출생

미국 뉴욕주립대 박사(경제학)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 건국대 상경대학장

저서 : ‘재벌들의 특별한 외도’ ‘한국재벌사연구’ ‘공정거래정책 허와 실’ ‘한국의 그림가격지수’ 등

現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경실련 공동대표


코코슈카는 한평생 알마를 흠모했다고 한다. 화가이자 시인이고 극작가이던 그는 그녀를 그리워하며 ‘Allos Makar’라는 시 또한 남겼다. 2차 세계대전 중 영국으로 탈출해 그곳에서 오래 산 그는, 새 남편과 대서양 건너 미국으로 떠나버린 알마를 언제까지나 떠올리며 그리워했을까. 비록 그림만이라도 그녀가 있는 미국 땅에 있다는 사실이 코코슈카에게 위안이 됐을까.

신동아 2015년 8월호

3/3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목록 닫기

미국의 대영박물관 꿈꾼 ‘영국 양반’의 자존심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