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호

‘남·원·정’도 없고 ‘천·신·정’도 없고

‘헌정 사상 최약체’ 여야 초선 의원들

  • 송국건 |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5-07-24 13: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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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정’도 없고 ‘천·신·정’도 없고
    2012년4월 11일실시한19대 총선을 통해 처음 금배지를 단 초선 의원은 전체 의원 300명의 절반에 달하는 148명(49.4%)이다. 18대 총선 때의 134명(44.8%)에 비해 4.6%포인트 늘었다.

    이후 각종 재보선이 치러지면서 초선 비율에 약간의 변동이 있었지만 큰 줄기는 그대로다. 7월 15일 현재 전체 의원 298명(지역구 246명, 비례대표 52명) 가운데 초선은 146명(49.0%)이다. 여전히 절반을 차지한다. 새누리당(53.1%)이 새정치연합(46.9%)보다 조금 높다.

    19대 국회의원은 임기가 10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은 초선 의원의 이름도, 성도, 얼굴도 모른다. 무엇이 19대 초선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19대 국회는 ‘식물국회’로 불린다. 주요 법안 처리 때마다 회의장을 난장판으로 만든 ‘동물국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회선진화법(일명 ‘몸싸움방지법’)이 태어났다. 그 부작용으로 식물이 된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은 2012년 5월 2일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이에 따라 19대 초선 의원들은 ‘선진화법 첫 세대’로 불리기도 한다.

    선진화법 탓에 집권 여당은 어떤 법률도 소신껏 통과시킬 수 없었다. 이 때문인지 여야 막론하고 상당수 19대 초선 의원은 ‘헌정 사상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전 초선들에 비해 존재감이 없고 무기력, 무능력, 무소신 3무(無)의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당 쇄신을 외치며 선배 의원에게 대들고 정풍, 쇄신운동을 치열하게 벌이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여야 충돌과정에서 상대당 지도부에 직격탄을 날리며 ‘저격수’ 노릇을 하는 초선 의원도 드물다.



    “자기 이름 걸고 말 못해”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되기 전 초선 의원들에게 주어진 역할이 하나 있었다. 국회에서 물리적 충돌이 일어났을 때 ‘돌격대’로 나서는 일이다. 초선 의원은 아무리 나이가 많고 경륜이 풍부해도 대부분 국회 본회의장의 맨 앞줄에 앉는다. 단상에서 몸싸움이 벌어지면 초선들이 앞장서 뛰쳐나간다. 상대당 의원들의 발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우~” 하고 야유를 보내거나 “그만해!” “때려치워!”라고 고함을 지르는 것도 초선의 몫이다.

    새누리당 3선 중진인 A 의원은 “내가 초선 때는 의욕이 넘쳐나서 물불 가리지 않고 덤벼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오버한 때도 있었지만 선배 의원들은 귀엽게(?) 봐줬다. 요즘 초선들은 너무 얌전하기만 하다”고 했다.

    일부 초선들은 이상한 방식으로 사고를 쳤다. 김형태 전 새누리당 의원은 제수 성추행 의혹으로 물의를 빚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었다. 태권도 국가대표 출신인 문대성 새누리당 의원은 논문표절 시비에 휘말려 탈당했다. 임수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탈북자에게 막말을 했다가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이석기·김재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은 부정 경선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일이 아니면 대체로 새누리당 초선들은 무력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새정치연합 초선들 중 일부는 막말 논란을 일으켰는데 이들 역시 당내 최대 현안인 극심한 소용돌이 속에 밀어 넣은 ‘유승민 사퇴 파동’ 때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보기만 했다.

    청와대의 심상찮은 기류를 읽던 차에 김무성 대표의 ‘묵언(默言)’ 지시가 나오자 이들은 일제히 입을 닫았다. 심지어 이들은 자신에게 공천을 준 박근혜를 지지하는지, 아니면 내년에 공천권을 행사할지도 모르는 김무성·유승민을 지지하는지도 불분명해 보였다.

    오히려 재선 의원 20명이 ‘유승민 사퇴 불가’ 연판장을 돌리는 소신 있는 행동을 했다. 초선들은 뒤를 받쳐주지도, 반대하지도 않았다. 청와대, 유승민 원내대표, 김무성 대표의 눈치를 살피느라 바빠 보였다.

    당 관계자는 “사실 유승민 파동은 초선 의원들이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였다. 정의감과 개혁정신에 불타는 초선이라면 이런 중차대한 일이 터졌을 때 뭐라고 한마디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그러나 대부분 면벽수행만 했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초선 B 의원도 이런 지적에 동의하면서 필자에게 자성의 말을 했다.

    “우리 당 초선 의원들은 무슨 일이 터지면 일제히 숨을 죽인다. 개인 소신은 찾아볼 수 없다. 당 지도부와 청와대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기 이름을 드러내고는 말 한 마디도 못 한다. 그러나 사적인 자리에서는 온갖 말을 한다.”

    실제로 유승민 파동 기간에 필자가 만난 초선 의원들은 ‘비보도’를 전제로 자기 견해를 쏟아냈다. 하지만 언론에 실명으로 기사화되는 건 극도로 꺼렸다. 두 차례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도 초선들은 그다지 많은 발언을 하지 않았다. 수위도 극히 조심스럽게 조절했다고 한다.

    대구의 초선 의원 7명 중 대부분은 2월 원내대표 경선 때 유승민 당선을 위해 똘똘 뭉쳤다. 그러나 유승민 파동 때 그나마 존재감을 드러낸 초선 그룹은 대구 출신 김희국·김상훈 의원 등에 그친다. 김희국 의원은 파동 초기 “(유승민 원내대표가) 사퇴할 이유가 없다. 끝까지 간다”고 말했다. 7월 8일 의원 총회 직후 김무성 대표가 유 원내대표를 찾아 의원들의 ‘사퇴권고’ 결정을 전했다. 그 자리에 김희국 의원은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와 함께 배석했다. 김의원은 그날 저녁 김포에서 열린 원내대표단 고별 생맥주 회동에도 참석했다. 그는 끝까지 의리를 지켰다.

    ‘개혁소장파’ 전통 소멸

    ‘남·원·정’도 없고 ‘천·신·정’도 없고
    역대 국회마다 초선 의원들은 별도의 모임을 뒀다. 18대 국회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모임으로는 ‘민본 21’이 꼽힌다. 이명박 정부 시절 18대 총선에 당선된 새누리당 초선들은 전체 소속의원 153명 가운데 82명(53.6%)이었다. 이들은 ‘명박돌이’로 불렸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 바람을 타고 여의도에 입성한 까닭이다.

    18대 국회 때도 물론 ‘초선이 무기력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개혁 성향 ‘민본 21’ 소속 초선들은 이명박 정부와 여당을 향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은 ‘미래지향적 변화’를 추구했다. 이들은 ‘남 ·원 ·정’(남경필, 원희룡, 정병국) 내지 미래연대로 대표되는 여권 내 개혁소장파의 전통을 어느 정도 계승했다. 이 12명의 멤버 중에는 권영진 대구시장,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이 포함됐다.

    권영진 시장은 유승민 파동 때 “제 정치철학으로는 유 원내대표가 물러날 이유가 없어 보인다. 1차 의원총회에서 신임을 결정해놓고도 눈치만 살피는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비겁하다. 공천 때문에 소신이고 철학이고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일갈했다.

    19대 국회에도 초선 모임이 있다. 새누리당 초선 의원 정책개발 모임인 ‘초정회’(회장 강석훈)가 그것인데, 초선 의원 대부분이 참여한다. 각 계파가 뒤섞이다보니 통일된 목소리를 내는 일은 좀체 없다. 사안에 따라 회원 중 일부가 모여 입장을 발표할 뿐이다. 유승민 파동 때도 초정회 소속 의원 22명이 모였다. 그러나 사퇴 찬반에 대한 의견이 팽팽하게 갈리는 바람에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헤어졌다.

    초·재선 쇄신파 의원 모임인 ‘아침소리’도 활동 중이다. 간사인 하태경 의원과 김영우·안효대·강석훈·김종훈·박인숙·이노근·이이재 의원 등이 참여한다. 이들도 유승민 파동 때 당청 간 소통을 촉구하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핵심인 사퇴 찬반은 유보했다. 쇄신파라면서 쇄신파의 패기는 어디로 갔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새누리당에는 이 밖에도 여러 형태의 초선 의원 모임이 존재한다. 하지만 눈에 띄는 활동은 없다. 한 초선 모임의 멤버인 새누리당 C 의원은 “단순히 술 마시고 밥 먹는 사교모임 수준이 대부분이다. 18대의 ‘민본 21’ 같은 개혁적이고 할 말 하는 모임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초선 의원의 존재감이 없는 것도 그런 구심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결론적으로,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에 걸쳐 이어져온 ‘남·원·정&미래연대’ 개혁소장파 전통은 19대 초선에 이르러 완전히 소멸했다고 보는 게 옳은 해석일 것 같다.

    ‘문재인 키즈’의 생존법?

    새누리당 초선 의원 대부분은 금배지를 달 때부터 계파색이 덧씌워졌다. 공천을 받으면서 특정 계파 수장이나 중진의 지원을 받은 까닭일 수 있다고 한다. 이 중엔 의원이 된 뒤 계파를 바꾼 초선도 적지 않다.

    새누리당 D 초선 의원은 의원회관 주변에서 ‘처세의 달인’으로 불린다. D 의원은 18대 때 친이계 중진의 도움을 받아 금배지에 도전했다 실패했다. 절치부심 끝에 19대 총선에선 친박계 모 핵심 의원의 지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D 의원은 초반엔 당연히 친박계로 분류됐다. 그러다 19대 국회 중반 무렵 그는 비박계로 말을 갈아탄 것으로 알려졌다. 비박계로 분류되는 핵심 당직자에게 딱 붙어 그가 있는 자리에는 어디든 달려갔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유승민 파동을 거치면서 친박계가 다시 힘을 얻자 도로 친박 핵심 의원에게 줄을 댄다는 얘기가 들린다.

    ‘박근혜 키즈’ 중 상당수는 17대 국회 ‘탄돌이’의 전철을 밟게 될지 모른다는 관측이 많다. 2004년 17대 총선 때 기성 정치에 식상한 민심을 등에 업고 여야를 합쳐 무려 188명(62.9%)이 처음 금배지를 달았다. ‘탄돌이’는 이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반대 열풍을 타고 수월하게 국회의원이 된 초선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 초선은 108명으로 전체 소속 의원 152명의 71%를 차지했다.

    이들은 진보-운동권 성향이 대부분이었다. 초반엔 활발한 토론 문화를 선보이며 정치판을 긴장시켰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운동권 특유의 독선과 분열이라는 생태적 한계를 드러냈다. 나중엔 열린우리당 중진들이 이들 초선 108명을 ‘108번뇌’라고 불렀다. 그 다음 18대 총선에서 이들 108명 중 무려 73명이 낙선했다.

    박근혜 키즈는 너무 존재감이 없는 편이고 탄돌이는 너무 튀는 편인데 이런 성향은 둘 다 유권자에게 ‘비호감’일 수 있다.

    요즘 새정치민주연합 초선들도 당 내 친노-비노 계파전쟁 과정에서 갈팡질팡한다. 이들 역시 새누리당 초선들처럼 존재감이 별로 없다. 비례대표 초선들이 주축인 ‘문재인 키즈’는 계파 논리를 충실히 따른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야당 초선들은 ‘정치’가 아닌 ‘불미러스운 사고’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낸다. 야당에서 눈에 띄는 초선은 국회 입성이 처음인 문재인, 안철수 의원 정도”라고 비꼬듯 말했다. 2000~2001년 새천년민주당(새정연 전신) 정풍운동 때 ‘천 ·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 소장개혁파가 맹활약을 펼치던 장면은 이제 ‘전설’이다.

    비례대표 초선인 김현 의원은 ‘대리 기사 폭행 논란’ 꼬리표를 달고 다닌다. 장하나 의원은 2013년 말 ‘대선 불복’을 선언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했다. 페이스북에 “대통령, 당신은 국가의 원수(怨讐)”라는 글을 올렸다. 여러 차례 막말로 구설에 오른 김광진 의원은 지난해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느닷없이 ‘문재인 대통령론’을

    꺼내 실소를 자아냈다. 그는 군 장성 인사 편중 문제를 따지던 중 “문재인 의원께서 대통령이 되셔서 해결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묵묵하고 성실하게 의정 활동”

    새정치민주연합 비례대표 초선들의 관심은 내년 총선에 출마할 지역구를 확보하는 데에 있다. 한 정치평론가는 “이들에게 지역구 공천을 주기 위해 비노계가 현역으로 있는 선거구를 중심으로 내부 교통정리를 하는 것으로 안다. 이 때문에 기존 지역구 의원들의 불만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전투력이 뛰어난 비례대표 초선 E 의원은 ‘언론 플레이’에 목을 맨다. 어떤 행동을 해야 언론에서 더 주목할지 고민이 크다고 한다. 일단 목소리가 크면 유리하다는 생각에서 돌출 행동을 자주 한다. 이 때문에 그는 여론의 비판을 자주 받는다.

    선수(選數)가 계급인 국회에서 초선이 좋은 이미지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엔 한계가 있다. 국회에 들어오기 전 각계 고위직에 있던 초선도 사회 경력이 짧은 재선 의원을 존중해야 한다. 장관급에 있었던 F 초선 의원은 “의원들끼리의 회식 자리에서도 새까만 사회후배보다 말석에 앉는다. 간혹 젊은 재선 의원들이 반말투로 말을 건네기 도 한다. 그럴 땐 자괴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군 장성 출신 재선인 G 의원은 “초선 때 괜히 의원이 됐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군에선 수만 명의 병력을 지휘했지만 국회에선 졸병 노릇을 해야 했다”고 한다.

    특히 재·보선으로 금배지를 단 이른바 0.5선 초선들은 더 군기가 바짝 든다. 이들은 중간에 들어온 탓에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애를 먹기도 한다. 이 때문에 재선급 의원을 ‘멘토’로 삼아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을 의원회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국회 사무처 한 관계자는 “여든 야든 19대 초선 의원 대부분은 묵묵하고 성실하게 의정활동을 수행한다. 편 가르기를 하고 정쟁에 뛰어드는 게 바른 정치는 아니다. 초선 의원들이 재선 이상 의원들보다 법안 발의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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