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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로 풀어쓴 현대사

저출산 · 고령화는 200년 전에도 고민거리

재정(財政)과 사회보험의 탄생

  • 조인직 | 대우증권 도쿄지점장

저출산 · 고령화는 200년 전에도 고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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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철혈재상(鐵血宰相)으로 알려진 비스마르크의 주도로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등 주변국과의 분쟁 끝에 첫 ‘통일독일’의 꿈을 이루지만 모든 국민으로부터 동질한 애국심을 얻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예컨대 바이에른 지방 출신들은 다른 지역 출신들을 향해 ‘촌뜨기’라고 야유하거나 ‘우리는 바이에른인이지 독일인이 아니다’라고 반응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비스마르크는 독일이라는 하나의 우산 안에 있다는 연대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사회보장제도 도입을 결정했다. 1883년에 질병보험, 1884년에 화재보험, 1889년에 노령자보험을 창설했는데, 이것이 지금 한국에도 이어진 ‘갹출형 적립보험’의 원형이다.

인구가 줄면 행복하다?

철혈재상이라는 별명답게 국가의 물리적 통일에는 무기와 병사를 동원했지만, 국민의 마음을 얻는 정신적 통일 작업에는 각종 보장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통일 후 중공업을 중심으로 자본주의가 급성장하고 노동자 수도 늘어났지만, 앞서의 3대 보험이 독일 국민의 마음속 든든한 버팀목이 된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중산층 계급이 두터워지고 통일된 학교교육이 보급되며 국민 간 연대의식이 높아졌다.

1967년 미국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은 국민연금 같은 사회보장제도를 ‘폰지게임(Ponzi Game · 피라미드형 사기)’이라고 일컬은 바 있다. 젊은 층 인구가 피라미드 구조처럼 늘어나면서 윗세대는 자신이 낸 돈보다 더 많이 가져간다는 의미다. 물론 저출산·고령화가 급속히 지속되면서 이 같은 논리는 설득력을 잃고, 특히 선진국을 중심으로 연금 조기 고갈 우려가 상존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적어도 20세기까지의 패러다임은 그랬다.



‘출산율이 낮아지고 인구가 감소하면 행복하다’는 논리는 식량 증산이 어렵던 18, 19세기에 흥했다. 영국 경제학자 맬서스가 집필한 ‘인구론’의 영향이 컸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구절이 가장 유명하다. “인구의 증가분이 식량의 증가분을 상회하면 인간은 빈곤에 빠지고, 그 현상을 회피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 수단인 전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역병이야말로 하늘이 준 선물이다. 전쟁 같은 인위적 수단 말고 자연적으로 인구를 줄일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같은 위험천만한 주장도 합리화했다.

맬서스는 14세기 전 유럽 인구의 절반을 몰살한 것으로 알려진 페스트로 인해 오히려 살아남은 자들이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한 훌륭한 예술가들의 르네상스 문화 창달을 앞당겼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의 번식행위는 막을 수 없으므로, 차라리 최저생계가 가능한 빈곤층을 많은 수로 억제하고 상류층은 잉여의 부를 누리게 하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지금 생각하면 천부인권에 반하는 말도 안 되는 논리 같지만, 당장 식량의 한계를 전망할 수밖에 없는 당시 유럽 사회에서는 진화론과 함께 제국주의 사상의 든든한 뒷받침이 됐다.

현재 한국과 일본의 출산율이 1.1~1.2명으로 1명을 간신히 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일본은 2020년부터는 65세 노인인구가 전체의 3할이 되는 초고령화 사회가 될 것이라고 한다. 저출산 경향이 ‘선진국병’으로 불리면서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처럼 인식되지만, 프랑스의 경우를 보면 이미 200년 전에 시작된 문제다.

자녀 수 비례해 감세

저출산 · 고령화는 200년 전에도 고민거리
1820년대 프랑스 인구는 3000만 명으로, 1000만 명이던 영국을 압도했고, 2700만 명이던 독일보다 많았다. 이후 100년 가까이 프랑스 인구는 정체됐다. 1910년대 프랑스 인구는 4000만 명으로 30% 정도 증가한 반면, 독일은 2배가 넘는 6500만 명, 영국은 3배가 넘는 3800만 명으로 급증했다. 이런 흐름은 계속 이어져 현재 인구는 프랑스 6600만 명, 독일 8000만 명, 영국 6300만 명으로 집계됐다.

1896년 프랑스 통계학자 자크 베르티용의 주창으로 ‘프랑스 인구 증가를 위한 국민연합’이 설립돼 정부와 의회 차원에서 저출산 타개책이 강구되기 시작했다. 당시 베르티용이 분석한 인구 정체의 원인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가 축적될수록 안주하고, 후세의 사람들과 경쟁하기 싫어하는 심리적 배경이 컸다고 볼 수 있다.

첫째, 당시 프랑스의 영토가 비옥하고 생산성이 높아 중소 소작농도 쉽게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런 가정에서는 요즘처럼 자녀 1인당 들어가는 교육비 부담이 커서 다출산을 결심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둘째, 19세기 후반 산업혁명에 따른 고도성장으로 공장지대를 중심으로 도시형 생활 스타일이라 할 만혼화(晩婚化) 현상이 나타났다.

셋째 요인은 프랑스혁명 이후 탄생한 나폴레옹 법전에서 민법을 새로 제정, 상속재산의 자녀 균등배분 원칙을 확립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장남이 모든 재산을 상속받는 것이 보장돼 있었으나 이 법에 따라 차남 이하에게도 균등배분이 가능해지면서 부의 대물림이 줄어들 것을 우려해 출산 자체를 꺼리는 경향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베르티용 측이 마련한 대책도 요즘과 큰 틀에서는 비슷하다. 출산 자녀 수에 비례해 감세를 해주고, 자녀가 적을수록 상속세율을 높였다. 출산장려금 지원, 가족수당 지급, 대출 알선 정책까지 시행했다. 3인 이상 자녀를 보유한 부모 중 한 명은 공무원으로 고용하는 파격적인 정책도 동원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금 급속한 저출산 경향을 보이면서 1990년대 일본, 2010년대 한국이 등장하기 전까지 대표적인 저출산 국가로 꼽혔다.

신동아 2015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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