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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근의 古傳幻談 | 예로부터 전해진 기이한 이야기 |

살인자를 쫓는 밤

  • 윤채근 단국대 교수

살인자를 쫓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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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이덕무

넓은 소매 안에 지필묵을 넣고 두꺼운 누비솜옷을 걸친 이덕무는 검서청을 나선 뒤 미끄러운 규장각 앞 전돌길을 조심스레 걸어 출입문으로 향했다. 교정 업무를 맡은 각신(궐내각사 소속 신료) 서너 명이 눈인사를 하며 지나갔다. 잽싸게 금호문(金虎門)을 나오며 수문장청 경비병들과 맞닥뜨렸지만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왕은 그의 개인적 수사를 이상한 방식으로 방해했지만 추가 제재 조치를 취하진 않은 것 같았다. 광화문 앞 의정부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마침내 좌의정 채제공(蔡濟恭)이 기다리는 정본당(政本堂)에 도착한 그는 크게 숨을 몰아쉬고 안으로 들어섰다. 

정승들 집무실인 정본당 안채에서 책장을 넘기고 있던 채제공은 앞자리에 앉는 상대에게 눈길을 주지 않으며 물었다. 

“이 검서도 참 끈질긴 사람일세. 뭘 더 알고 싶어 이러나?” 

잠시 뜸을 들이던 이덕무가 강진을 다녀온 백동수 얘기를 꺼내자 책을 덮은 채제공이 비로소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쓸데없는 짓을 벌였군. 주상의 뜻을 거스를 순 없네. 이미 사면령을 내리셔서 김은애를 다시 잡아들일 수도 없어. 그냥 묻어버리세.” 



“재심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좌상 영감. 소신에게 사건의 시말을 자세히 기록해 널리 알리고 내각(규장각)에도 보관하라는 명을 내리신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주상이십니다. 청사에 남을 기록이온데 어찌 소홀히 처리하겠습니까?” 

담뱃대를 입에 물고 길게 한 모금 빤 채제공이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자네의 지나친 호기심이 자칫 주상의 역린을 건드릴 수도 있어. 물론 이 사건은 이상해. 그래서 나도 여러 차례 사면 불가를 주청했지 않았는가? 형조의 판결도, 의정부의 건의도 다 묵살하신 분일세. 그리고 백 초관(哨官)을 공격한 게 진정 장용영 쪽이라면, 그건 이 문제를 더 파고들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일세. 멈추게.” 

의정부를 나선 이덕무는 차가운 겨울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경복궁 쪽을 한참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는 처남이 사는 남산 아래 장흥방을 향해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왕의 행동은 참으로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규장각 안에서 가장 엄밀하고 깐깐한 자신에게 사건 기록을 맡기고도 중립적으로 서술한 초고를 올리면 곧바로 수정하라는 어명이 내려오곤 했다. 진정 왕이 바라는 건 무엇일까?


‘김은애 사건’

1년 전인 1789년 윤5월 26일 초경 무렵, 강진 탑마을의 김은애는 처녀 시절부터 자신에 관한 거짓 소문을 퍼뜨려온 같은 동네 안 노파 집에 침입해 노파를 난자했다. 무고의 내용인즉슨 그녀가 처녀 시절부터 안 노파 시댁 쪽 소년과 밀통하는 사이라는 것이었다. 평소 허언증이 심하던 노파는 창기 출신에 자식도 없었으며 남편의 삯일로 입에 겨우 풀칠이나 하는 신세였다. 정숙한 양갓집 규수에겐 견디기 힘든 모욕이었지만 살해 수법이 잔학하며 치밀했다. 

사건을 처음 접한 강진현감 박재순(朴載淳)은 김은애의 어미를 의심했다. 강한 힘으로 베이고 찢긴 시신 상태로 볼 때 작고 유약한 은애의 짓으로 보기 힘든 데다 어미와 노파 사이엔 채무관계도 있었다. 하지만 피로 범벅이 된 은애의 옷과 달리 그녀 어미의 옷에선 많은 혈흔이 발견되지 않았다. 게다가 목격자들에 따르면 노파를 살해한 은애는 추문을 퍼뜨리는 데에 공모한 노파 시댁 쪽 소년 최정련(崔正連) 집을 향해 곧장 달려가고 있었다고 했다. 이 두 번째 살인을 중간에 막은 인물이 바로 은애 어미였다. 틀림없이 공범이 있을 것으로 여긴 현감이 은애를 더욱 강하게 압박했지만 그녀는 자복하지 않았고 별다른 추가 증거물도 찾을 수 없었다. 

공범이 없다고 확신한 현감은 은애를 동정해 관찰사 윤행원(尹行元)에게 사건을 보고하며 사실을 다소 미화했다. 윤행원도 공범을 의심해 아홉 차례나 추가 신문을 진행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단독 범행으로 결론을 낸 그는 즉시 은애를 처형해야 했지만 망설였다. 그녀는 사람들로 하여금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매력이 있었고 사건은 윤상(倫常)을 지키기 위해 감행한 절개 있는 행동이란 명분도 갖추고 있었다. 처형은 이듬해로 미뤄졌다. 

이듬해인 1790년 경술년, 원자가 태어나는 경사가 있자 특사 대상 사형수 명단을 올리라는 어명이 내려왔다. 그사이 바뀐 관찰사 윤시동(尹蓍東)은 김은애 사건을 더욱 아름답게 포장해 조정에 올렸고, 6월 내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옥안(獄案)을 심리하던 왕에게 이 사건이 눈에 뜨이는 순간 잔인한 살인은 대단한 절행으로 뒤바뀌어 칭송되기에 이르렀다. 왕은 은애를 방면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이 일을 미담으로 기록해 삼남 지역 방방곡곡에 알리라고 명했다. 검서관 이덕무와 왕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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