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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근의 古傳幻談 | 예로부터 전해진 기이한 이야기 |

살인자를 쫓는 밤

  • 윤채근 단국대 교수

살인자를 쫓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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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관 백동수

규장각의 복원된 검서청. 오른쪽 난간이 설치된 누마루가 동이루다. [윤채근 제공]

규장각의 복원된 검서청. 오른쪽 난간이 설치된 누마루가 동이루다. [윤채근 제공]

장흥방 집에 예고 없이 들이닥친 이덕무를 본 백동수는 반색하며 주안상을 준비했다. 주당인 두 사람은 연거푸 잔을 비워댔다. 음률과 의학에 두루 밝은 백동수는 조선 최고의 책벌레 이덕무에게 썩 잘 어울리는 처남이었고, 같은 서자로서 젊은 날의 지독한 가난을 함께 견딘 동지이기도 했다. 술기운이 돈 백동수가 말했다. 

“김은애 말이요. 잘 살고 있었소. 남편과 행복해 보이더란 말이지.” 

팔짱을 낀 채 남산을 바라보던 이덕무가 웃으며 물었다. 

“그 남편, 김양준(金養俊)이란 자는 만나보지 못했다고?” 

고개를 끄덕인 백동수가 씁쓸한 표정이 되어 대답했다. 



“그러기 직전 놈들이 들이닥쳤으니까. 객점 마당에서 세 녀석과 칼을 섞었는데, 아까 말했다시피 내 조금 방심했었지. 팔뚝을 베여 칼을 놓쳤는데도 그냥 조용히 사라집디다. 떠나라는 경고였던 거지. 주상이 왜 그런 것 같소?” 

이덕무가 한 잔 더 들이켰다. 그가 보기에 범인은 김양준이었다. 칼의 달인 백동수에 따르면 범인은 반드시 한 명이어야 했고 힘이 강해야만 했다. 안 노파는 늙었지만 완력이 은애보다 두 배는 셌다. 다양한 저항흔을 고려할 때 잠들었다 당한 건 결코 아니었고 심한 격투를 벌였음에 틀림없었다. 게다가 시신에 난 깊은 상처는 남성의 힘으로도 벅찬 것이었다. 

“처남 말이 맞았던 거야. 김양준이 아내 옷을 입고 노파를 살해한 거지. 그리고 서로 옷을 갈아입고 연극을 한판 벌인 거네. 영리한 자들이야.” 

이덕무가 말을 마칠 때쯤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곁말 한 마리를 더 몰고 나타난 자는 후배 검서관인 박제가(朴齊家)였다. 이덕무는 그를 덥석 끌어안았다. 

“청나라에서 돌아왔단 얘긴 들었네, 박 검서. 원임(原任) 어른께서도 무탈하신가?” 

원임이란 왕을 도와 규장각을 설계하고 창설했으며 오랫동안 직제학으로서 조직을 이끌던 서호수(徐浩修)를 지칭했다. 규장각을 상징하던 서호수에게 왕은 원임직제학(原任直提學)을 제수해 업적을 치하했다. 소론이던 서호수는 노론으로부터 왕을 보위하는 임무를 묵묵히 수행했지만 서로 협력해야 했던 남인 채제공과는 알력을 빚고 말았다. 덕분에 정계를 떠나 있던 그를 다시 불러들인 왕은 청 황제(건륭제)의 팔순 생일을 축하하는 만수절(萬壽節) 사은부사(謝恩副使)로 파견했다. 박제가는 금년 5월에 출발한 이 사행단의 수행원이었다.
 
6개월여의 여정을 마치고 막 귀국한 사행단은 왕에게 복명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터였다. 다급한 표정의 박제가는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서둘러 말했다. 

“어서 규장각으로 갑시다. 원임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놀라는 이덕무를 말에 태운 박제가가 앞장서 말을 몰며 이덕무를 돌아보고 외쳤다. 

“형님도 참 고집이 심하십니다. 몇 개월을 못 참고 일을 벌이시오?” 

박제가가 한 말의 속뜻을 미처 다 헤아리기도 전에 두 사람은 창덕궁에 당도했다. 이덕무는 착잡했다. 규장각 뜰 분위기가 이번엔 이상하게 을씨년스러웠다. 모든 게 불안하게 느껴졌다. 집무실 문을 열기 전 술기운을 떨쳐낼 겸 규장각 뒤편 향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크게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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