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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근의 古傳幻談 | 예로부터 전해진 기이한 이야기 |

살인자를 쫓는 밤

  • 윤채근 단국대 교수

살인자를 쫓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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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궁의 은밀한 초대

정조가 1795년 8일간에 걸쳐 화성에 있는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에 행차했을 때 거행한 주요 행사를 병풍에 그린 ‘화성능행도병’ 8폭 중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화폭에 담은 ‘봉수당 진찬연’. 봉수당은 화성행궁의 정당으로 혜경궁의 만수무강을 빈다는 의미로 지어졌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정조가 1795년 8일간에 걸쳐 화성에 있는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에 행차했을 때 거행한 주요 행사를 병풍에 그린 ‘화성능행도병’ 8폭 중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화폭에 담은 ‘봉수당 진찬연’. 봉수당은 화성행궁의 정당으로 혜경궁의 만수무강을 빈다는 의미로 지어졌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서호수는 비범한 사람이었다. 역학과 천문지리학은 물론 각종 측량기술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는 계산가였고 탁월한 전략가였다. 그런 서호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오랜 사행으로 수척해진 얼굴엔 병색도 완연했다. 

“이 검서. 번암공을 만났다지?” 

서호수의 목소리는 갈라지기까지 했다. 번암은 채제공의 호였다. 

“네. 원임 어른. 김은애 사건의 전모를 알아야겠기에 문의드리고 왔습니다.” 

잠시 눈을 감았던 서호수가 갑자기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분노한 그가 야무지게 한 마디씩 끊어가며 말했다. 



“우리 존재 목적이 뭔가? 주상을 수호해 태평성대를 여는 걸세. 누가 우리 편이고 적인지는 알아야 않겠나? 번암이 어떤 자인가? 탕평의 명분으로 저 자리에 앉아 있지만 두루뭉술한 인간일세. 믿을 수 없는 자야.” 

이덕무는 등에 소름이 돋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머릿속은 하얘져 어떤 생각도 해낼 수 없었다. 서호수는 자신이 부재한 동안 벌어진 김은애 사건 처결 과정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채제공이 말한 역린이란 단어가 퍼뜩 뇌리를 스쳤다. 그 순간 바깥 뜨락에서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호수가 문을 열자 가마 두 대가 대기해 있었다. 앞쪽 가마에 먼저 올라탄 서호수가 두 검서관에게 뒤쪽 가마에 타라고 손짓했다. 

가마는 검서청 뒤 운한문(雲漢門)을 지나 봉모당(奉謨堂)을 거쳐 책고(冊庫) 옆 은행나무 숲을 통과했다. 신료는 지나갈 수 없는 후원 비밀통로로 우회해 창경궁 궐역에 들어선 두 대의 가마는 자경전(慈慶殿) 앞에서 멈췄다. 왕의 모친 혜경궁 홍씨가 기거하는 곳이었다. 가마 밖으로 나서던 이덕무는 마침내 근자에 벌어진 사건의 진상을 깨달았다. 

혜경궁 홍씨는 문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겨울누비옷 세 벌을 궁녀들을 통해 하사했다. 무한한 의미가 담긴 옷이었다. 옷을 받아 든 이덕무는 하례를 올리고 나서 불충을 용서해달라고 세 차례 외쳤다. 답은 없었지만 자경전의 모든 불빛이 꺼진 것으로 답이 돌아왔다. 알았으니 물러가라는 뜻이었다. 

선물을 받아 든 세 사람은 다시 가마 안에 몸을 숨긴 채 규장각으로 은밀하게 이동했다. 가마 안에서 몸을 웅크린 이덕무는 소리 없이 흐느꼈다. 은혜를 저버리고 잠시나마 왕을 의심한 어리석음에 대한 회한 탓이었다. 그는 왕이 폭군 기질을 드러내는 건 아닌가 하고 넘겨짚었다. 의심이야말로 그의 삶을 지탱해온 힘이었다. 한데 진실은 다른 곳에 있었다. 자신과 남편의 명예를 위해 살인마저 감행한 김은애는 남편인 사도세자를 잃고 아들인 금상을 지키기 위해 인간이 견딜 수 있는 모든 모욕을 겪어낸 혜경궁 홍씨의 다른 모습이었다. 따라서 김은애의 석방은 아들이 왕위에 오르고도 오랜 세월 숨죽이며 은인자중해야 했던 혜경궁 홍씨가 이제 세상 밖으로 당당히 나설 것임을 예고하는 왕의 전교이자 선포였던 셈이다.


※김은애 사건 관련 서술은 사실에 입각해 있다. 1789년 전남 강진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1790년 원자 탄생을 기념해 조정에서 시행하려던 특별사면의 심리 대상에 포함됐다. 원자는 훗날 순조가 된다. 침식을 잊고 사건들을 심리한 정조는 김은애에게 각별히 주목해 사면 조치하고 검서관 이덕무에게 이를 기록하도록 하교했다. 이 기록이 이덕무 문집에 ‘은애전’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잔혹한 살인범이었던 김은애에 대한 사면은 영의정 채제공을 필두로 많은 반대를 낳았다. 남편 김양준을 진범으로 확신한 백동수가 강진으로 탐문을 나가는 장면은 여기에 착안한 허구다. 그러나 그가 이덕무와 더불어 1790년 ‘무예도보통지’(10월 말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 결정)를 간행한 것과 정조의 총신이던 서호수와 채제공이 불화를 빚은 것, 그리고 서호수·박제가·유득공이 1790년 5~12월 만수절 사행을 다녀온 것은 사실이다. 다만 ‘무예도보통지’는 창경궁 앞 어영청 인근에 있던 장용영 내영에서 주로 저술돼 6월에 편찬 완료됐으며 ‘은애전’ 역시 같은 6월에 탈고됐다. 이덕무가 자경전의 초대를 받는 마지막 장면은 허구지만 정조는 이 시점부터 혜경궁 홍씨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계획을 빈틈없이 진행해 1795년 수원 화성능행에서 어마어마한 회갑연을 개최한다.


윤채근
살인자를 쫓는 밤

● 1965년 충북 청주 출생
● 고려대 국어국문학 박사
● 단국대 한문교육학과 교수
● 저서 : ‘소설적 주체, 그 탄생과 전변’ ‘한문소설과 욕망의 구조’ ‘신화가 된 천재들’ ‘논어 감각’ ‘매일같이 명심보감’ 등




신동아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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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근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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