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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현장

마리화나 판매 전면 자유화 선도한 실리콘밸리

캘리포니아에선 비트코인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 글·사진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 · 전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마리화나 판매 전면 자유화 선도한 실리콘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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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일 토요일 오후 1시 30분 미국 샌프란시스코시 우버(Uber)와 트위터 본사 건물이 걸어서 5~6분 거리에 있는 미션스트리트 인근 어느 건물 앞. 뭔가에 취한 듯 초점을 잃은 눈동자의 홈리스들이 구걸을 하거나 보도 곳곳에 앉아 있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한 흑인 남성은 밝은 대낮에 사람들이 지나는 길 가로수에 기대어 노상방뇨를 하고 있었다. 바로 그곳에 있는 한 마리화나(대마초 추출 마약) 판매점. 덩치 큰 흑인 경비가 정문 앞에 둔 의자에 앉아 있었다. 가슴팍에 후안(Juan)이란 이름표를 붙인 이 직원은 판매점 안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붙잡았다. 무슨 일로 왔냐며 그냥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다. 

이곳에 간 이유는 마리화나 판매점에 들어가 보기 위해서였다. 실리콘밸리에서만 5년을 살았지만 마리화나 판매점엔 가본 적이 없다. 하지만 마리화나 판매점 방문 시도는 실패했다. 의사의 처방전 또는 처방전과 함께 발급받는 마리화나 환자카드가 없는 한 들여보내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의료용 마리화나만 판매하는 곳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안에 잠깐 들어가서 구경만 하겠다고 사정해봤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그리고 하는 말. 

“저기 사거리 보이지. 거기서 우회전해서 조금만 걸어가면 처방전 써주는 마리화나 의사 있으니까 거기 가서 얼른 받아와. 그거 받아와서 (캘리포니아 주에서 발급한) 신분증이랑 같이 보여주면 들여보내 줄게.” 

처방전을 그렇게 쉽게, 빨리 발급해주느냐는 내 말에 “의사마다 다른데, 몇 십 달러만 주면 발급해줘”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여기까지 와서 판매점 안 풍경을 확인하지도 못하고 돌아갈 수는 없는 일. 그가 알려준 병원을 찾아갔다.

2017년의 마리화나 판매점

미션 스트리트 마리화나 판매점에서 걸어서 5분쯤 떨어진 거리에 있는 마리화나 의사의 병원 내부 풍경. 오른쪽의 빨간색 옷을 입은 중년 백인남성이 상담 중이다.

미션 스트리트 마리화나 판매점에서 걸어서 5분쯤 떨어진 거리에 있는 마리화나 의사의 병원 내부 풍경. 오른쪽의 빨간색 옷을 입은 중년 백인남성이 상담 중이다.

걸어서 5분 남짓 걸리는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자 먼저 온 두 명의 환자(?)가 각각 직원과 상담하고 있었다. 해진 가죽 소파에 앉아 있는 내게 상담직원이 “처방전을 받으려면 일단 캘리포니아주 신분증을 달라”고 했다. 운전면허증을 건넸다. 그러자 4페이지짜리 서류를 주며 해당란에 기입하라고 했다. 일종의 서면 문진. 일반 병원에 가도 통상 이런 서면 문진을 하는데, 여기라고 다르지 않았다.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 병력, 가입한 건강보험 이름 등등과 함께 어디가 불편해서 마리화나 처방전을 받으려 하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수면을 만족할 만큼 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운동하다 다쳐서 손목, 무릎에 만성 통증이 있다는 식으로 대충 적었다. 잠을 썩 잘 자는 편도 아니고 실제 손목과 무릎이 그리 좋지 않으니 없는 말은 아니었다.



기입한 서류를 건네자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내라고 한다. 총79달러. 처방전과 마리화나 환자카드 발급 비용이라고 한다. 아직 의사는 얼굴도 안 봤는데 처방전은 이미 나오기로 돼 있는 모양이다. 직원이 팔을 걷으라더니 혈압을 잰다. “조금 높네요” 하더니 백발에 60대는 넘어 보이는 백인할머니 의사가 나와 진료실로 이끈다. 자유롭게 풀어 헤친 기다란 백발과 역시 자유로움이 온몸에서 풍겨 나오는 ‘포스’가 ‘히피 할머니’였다. 

문진 서류를 훑어보더니 처방전 받는 게 처음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통증을 완화하는 데엔 이런 종류의 제품이 좋고, 수면을 잘 취하는 데엔 저런 제품이 좋다고 설명한다. 무릎이 얼마나 아픈지 확인이라도 하겠지 싶었는데 더 이상 묻지도 않는다. 그러고는 나를 데리고 나와 컴퓨터가 있는 책상 앞에 앉히더니 사진을 찍고 뭔가 문서 작업을 하는 듯 하더니 즉석에서 마리화나 환자카드를 인쇄해준다, 처방전과 함께. 

의사의 책상 위에는 자메이카의 음악가이자 ‘레게의 전설’ 밥 말리가 했다는 말이 적혀 있다. “When you smoke the herb, it reveals you to yourself.”마리화나를 피우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고? 정말? 이런 쓸데없는 상념에 빠진 시간을 포함해 사무실에 들어가서 다른 환자들 상담이 끝나길 기다리고 처방전을 받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총 30분도 되지 않았다. 

다시 아까 그 마리화나 판매점 정문 앞을 지키던 후안을 찾아갔다. 카드를 보여주자 신분증도 보여달라고 한다. 캘리포니아주 운전면허증을 보여주자 안으로 들여보내준다. 드디어 내부에 진입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고객 등록을 마치자 음료 시음행사처럼 신제품 마리화나를 전자담배 형태로 피우는 장치를 한번 빨아보라고 권한다. 한사코 물리쳤다. 

이제 자유롭게 내부를 살필 시간이다. 마리화나 종류가 참 많기도 하다. 말린 마리화나만 해도 20종류 가까이 진열돼 있었다. 마리화나 성분으로 만든 통증완화 로션과 크림, 빨아먹는 마리화나 사탕, 마리화나 쿠키, 마리화나 성분이 들어간 음료 등 별의별 상품이 다 있다. 이게 다 마리화나란 말인가. 

손님들, 아니 환자들도 참 다양했다. 판매점 한켠에 마리화나를 피울 수 있는 ‘라운지’란 이름의 장소가 있었다. 앉을 의자 하나 없는 이 라운지에는 눈이 풀린 두 남성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서서 전자담배 장치로 액상 마리화나를 피우고 있다. 그사이 가죽부츠와 부티 나는 재킷을 입은 백인 중년여성이 들어와 말린 마리화나 한 봉지를 사갔다. 15분 남짓 상점에서 머무는 동안 본 손님 숫자는 10명. 

아무것도 안 사고 있으니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직원이 자꾸 “도와줄까”를 연발한다. 가뜩이나 묘한 냄새에 메스꺼움이 심해지던 차였다. 마리화나 진열대를 뒤로하고 문을 나서자 정문 앞을 지키는 직원 후안이 다시 인사한다. 꼭 다시 오라면서.


2018년 빗장 풀리는 마리화나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미션 스트리트에 있는 마리화나 판매점에서 판매하는 다양한 마리화나 제품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미션 스트리트에 있는 마리화나 판매점에서 판매하는 다양한 마리화나 제품들.

샌프란시스코만 이런 상황인 건 아니다. 의료용 마리화나 판매점 영업이 허용돼온 캘리포니아주 도시에서는 모두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2013년 여름 로스앤젤레스 지역에 있는 베니스 해변에 갔을 때 해변가 바로 앞 상가 앞에서 40달러만 내면 의료용 마리화나 처방전을 발급해주니 마리화나를 사서 피우라는 홍보전단을 받은 적이 있다. 마리화나 판매점과 처방전을 발급 하는 의원이 거의 붙어 있어 ‘상부상조’하는 듯했다. 

실리콘밸리를 포함한 샌프란시스코만(灣) 지역 중 샌프란시스코와 산호세는 마리화나 판매점이 밀집한 대표적인 도시로, 샌프란시스코에는 40여 개, 산호세에는 16개가량의 허가받은 판매점이 영업 중이다. 모두 의료용 마리화나 판매점. 미션 스트리트에 있는 마리화나 판매점 같은 상점이라고 보면 된다. 처방전이나 마리화나 카드, 그리고 캘리포니아주에서 발급한 (캘리포니아 거주를 증명하는) 신분증을 갖고 있어야 출입과 구매가 가능한 상점들이다. 

이런 풍경은 2018년 1월부터 크게 바뀐다. 의사의 처방전이나 마리화나 환자카드 없이도 마리화나 판매점을 자유롭게 드나들고 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마리화나 판매점 앞에서 경비를 서는 후안 같은 직원이 있다고 해도 21세 이상 성인인지만 확인할 뿐 다른 건 확인할 필요가 없어진다. 캘리포니아주 상당수 도시에서 마리화나 판매 규제가 확 풀리기 때문이다.

이건 2016년 11월 대통령선거 때 함께 치러진 캘리포니아 주민투표에서 기호용 마리화나가 합법화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법안 통과 후 1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여러 도시에서 기호용 마리화나 판매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것이다. 실제 말 그대로 마리화나 전면 합법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기호용 마리화나 합법화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인이면 누구나 마리화나를 사서 피울 수 있고, 성인이면 누구에게나 마리화나를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의료용 마리화나의 경우 캘리포니아주 정부가 발행하는 신분증(운전면허증 등)을 가진 거주자여야 했지만 그런 제약도 사라진다. 21세 이상이기만 하면 캘리포니아 거주자든 아니든 마리화나를 살 수 있게 된다. 외국인이 사서 피웠다가 해당 국가의 국내법에 어긋나서 처벌을 받든 말든 그건 캘리포니아주가 상관하지 않는다. 주 정부와 시 정부는 마리화나 판매점 허가를 내주면서 수수료 수입을 올리고 마리화나 판매가격에 세금을 붙여서 세수를 확충하면 그만이다. 

그렇다고 마리화나 전면합법화에 저항이 없는 건 아니다. 예컨대 해당 시의회가 관련 조례를 통과시켜서 판매를 허가해줘야 그 시에서 판매가 가능한데, 일부에선 주민 반발이 거세 눈치를 보고 있거나 절차가 더딘 곳도 있다. 샌프란시스코도 홍역을 치렀다.


실리콘밸리는 왜 마리화나에 관대할까

마리화나 처방전을 발급해준 의사 책상 위에 세워진 ‘레게의 전설’ 밥 말리 사진 위에 ‘마리화나를 피우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의미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마리화나 처방전을 발급해준 의사 책상 위에 세워진 ‘레게의 전설’ 밥 말리 사진 위에 ‘마리화나를 피우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의미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선 정치·경제·사회 전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계 주민들이 마리화나 상점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며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차이나타운이 있는 도시가 샌프란시스코. 주민 85만명 중 3분의 1이 아시아계인데 그중 가장 강한 세를 과시하는 집단이 중국계커뮤니티다. 그런가 하면 마리화나 사업을 하고 있거나 준비하는 측에서 도시의회를 상대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며 로비를 했다. 

핵심 쟁점은 마리화나 판매점이 학교 시설로부터 얼마나 거리를 두어야 할지 기준을 정하는 일이었다. 이 기준에 따라 허가를 받는 판매점 수도 결정되기 때문에 이목이 집중됐다. 기존 의료용 마리화나 판매점 허가 기준은 1000피트(305m). 완화해야 한다는 측에선 학교나 청소년 시설로부터 반경 600피트(183m)를 들고 나왔다. 600피트는 주류와 담배 판매점의 허가 기준이자캘리포니아주 정부의 권고안이었다. 규제 강화를 외친 중국계 주민은 1500피트(460m) 밖에 허가해야 한다고까지 압박했는데, 결국 시의회 표결에서600피트로 결정됐다.

아시아계 주민들은 대체로 마리화나에 부정적이지만 실리콘밸리와 주변지역의 정서는 그와 사뭇 다르다. 실제 캘리포니아주의 마리화나 합법화에는 마리화나에 관대한 샌프란시스코베이 지역의 정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개인의 표현과 자유를 중시하고 기득권에 저항하는 건 실리콘밸리 기업문화일 뿐 아니라 거슬러 올라가면 1960년대 이후 이 지역에 뿌리내린 카운터컬처(counterculture·반문화 또는 대항문화로 번역됨)였다. 당시 카운터컬처는 환각제 LSD와 마리화나 같은 약물을 동반했다. 

구글의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를 열성팬으로 거느린 ‘그레이트풀 데드(Grateful Dead)’의 사례를 보자. 실리콘밸리 팰러앨토 출신들로 구성돼1960, 70년대 카운터컬처를 대표하는 이 밴드는 약물을 떼어놓고는 얘기하기 어렵다. 밴드의 첫 공연 장소가 실리콘밸리 남부 지역인 산호세에서 열린 LSD 파티였을 정도다. 밴드가 미국 전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해간 계기는LSD를 투약하고 마리화나를 피우는 히피 청년들이 도로를 가득 메운 1966년의 샌프란시스코 라이브 거리공연이었다. 1996년 캘리포니아주가 미국에서최초로 의료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는 법안을 주민투표로 통과시킨 것도 이 같은 정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리화나 특수 앱과 우버의 등장 

샌프란시스코만 지역의 이 같은 정서와 문화가 캘리포니아주의 전면적인마리화나 합법화로까지 이어졌다면, 이젠 마리화나 합법화가 실리콘밸리 등샌프란시스코만 지역에 새로운 기회를 가져올 것이란 기대가 충만하다. 마리화나가 산업으로서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추정이다. 캘리포니아주 정부는 마리화나 전면 합법화로 인해 캘리포니아 마리화나 산업 규모가 50억달러(약 5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2016년 초 ‘ArcView Market Research’라는 시장조사업체는 미국 내 합법적 마리화나 시장이 2020년까지 220억 달러(22조 원) 규모로 확대될 것이란 보고서를 냈다. 

캘리포니아에서만 5조 원이란 어마어마한 규모를 예상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관광과 테크(tech). 미국 내에서 마리화나를 즐기러 오는 여행객이 몰려들어 관광산업이 더욱 활성화되고, 그러면서 관련 산업도 성장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굴뚝산업에도 신기술을 적용해 새로운 첨단산업으로 이끈다는 실리콘밸리가 있지 않은가.

실리콘밸리에서 마리화나 산업에 테크놀로지를 적용하는 시도는 2016년11월 마리화나 합법화 법안 통과를 기점으로 본격화하고 있다. 마리화나 판매점 위치 정보를 제공하고 판매점별 정보, 소비자 별점 등을 제공하는 ‘마리화나계의 옐프(Yelp·지역별 소비정보 제공 소셜미디어)’도 등장했다. 주문만 하면(2017년까지는 마리화나 카드 소지자에 한정) 몇 시간 만에 집으로 마리화나를 배달해주는 ‘마리화나계의 우버’로 불리는 샌프란시스코 스타트업 ‘Eaze’. 이 회사는 창업 2년 만인 2016년 2500만 달러를 투자받는 등 지금까지 5000만 달러가량을 벤처투자사 등에서 투자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담배처럼 마리화나 액상을 넣어 피우는 기기 등을 판매하는 스타트업도 막대한 투자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2016년 11월 경제전문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실리콘밸리 기술기업을 떠나 마리화나 스타트업에 뛰어든 성공적인 기업인 11명을 소개하는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들 사이에 마리화나가 기호품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있는 것도 사실이다. 의료용 마리화나 사용자 상당수가 실리콘밸리 엔지니어이고, 이들은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마리화나를 애용한다는 게 마리화나판매상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현금 장사’만 가능한 마리화나

2017년 11월 캘리포니아주 정부 회계국은 희한한 내용을 발표했다. 2018년부터 마리화나 판매점에서 세금을 거둬들일 때 반드시 무장 경비요원이 있는 차량을 이용토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금을 걷는 데 무장 경비차량을 이용해야만 한다고? 다른 세금처럼 온라인뱅킹으로 내든지 아니면 아직도 미국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수표(personal check)를 편지봉투에 넣어 부치면 될 텐데 무장 경비차량은 또 뭐란 말인가. 

이유는 마리화나 사업이 현금 장사이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는 주법으로 마리화나를 합법화했지만 상위법인 미국 연방법에선 여전히 마리화나가 금지약물이다. 연방법으로 마리화나 사업은 불법이기 때문에 은행 대부분이 마리화나 판매업자, 재배업자, 배달업자 등 마리화나 관련 사업을 하는 업체와 신용거래를 하지 않는다. 

의료용 마리화나 판매가 합법화된 뒤 한동안 신용카드 거래가 이뤄졌었다. 그러다가 2012년 7월 연방정부가 신용카드 거래를 제재하기 시작하면서 현금 다발이 오가는 사업이 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시 연방정부는 마리화나가 합법인 주에서 합법적으로 사업하는 경우 금융기관이 거래할 수 있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하지만 은행들은 정부가 지침을 제시하자 오히려 몸을 사렸다. 굳이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거래를 했다간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는 위협으로 느낀 것이다.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의료용 마리화나에는 주 정부 차원의 세금이 붙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엔 세금 징수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기호용 마리화나에는 15%의 세금이 붙는다. 이 때문에 세금을 안전하게 거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현금 보따리 싸들고 주정부 청사에 세금 내러 오라고 했다가 강도라도 당하면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은행과 연계해서 안전하게 징수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다. 모양새는 영 어색하다. 무장경비차량을 동원해 세금을 수금한다니. 마피아가 상인들에게 수금하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샌프란시스코베이 지역의 마리화나 판매점들도 대부분 현금 거래만 한다. 신용카드나 현금카드(debit card)로 현금을 인출할 수 있는 현금인출기(ATM)를 들여놓고 영업하는 판매점들은 있다. 캘리포니아만 지역의 판매점 5곳에 전화로 문의해봤다. 모두 같은 답변이었다. “우리는 현금 거래만 한다. 신용카드는 받을 수가 없다. 양해 해달라.


물 만난 비트코인

그 때문에 주목받는 게 비트코인이다. 은행에 계좌를 만들 필요 없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비트코인 계좌를 개설해 비트코인으로 거래하면 이런 제약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가정해보면 은행에서 현금으로 바꾸려 하지만 않는다면 비트코인만으로 마리화나 생태계가 운영될 수도 있다. 고객, 판매업체, 생산업체, 배달업체 등 마리화나 산업 생태계 내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비트코인으로만 거래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비트코인 ATM도 늘고 있고, 비트코인을 현금화하는 수단이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기도 하다. 발 빠르게 비트코인으로 마리화나를 구매할 수 있는 일종의 상품권을 만드는 회사도 등장했다. 이런 식으로 비트코인이 마리화나산업 생태계에 자리를 잡게 되면 무장한 경비직원의 경호를 받으며 현금 뭉치를 금고로 옮기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사라질 것이다. 

시애틀이 있는 워싱턴주에서 창업한 ‘POSaBIT’. 이 회사는 신용카드로 마리화나를 구매할 수 있게 지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마리화나 판매점에 손님이 방문해서 현금이 아닌 신용카드로 구매하겠다고 하면 키오스크 서비스를 이용하게 한다. 손님은 POSaBIT가 설치해둔 키오스크에서 사고 싶은제품의 가격만큼 신용카드로 비트코인을 사서 그걸로 제품 값을 치를 수 있고, 손님이 제품 값을 치르면 POSaBIT는 그만큼의 돈을 판매점 은행계좌에 현금으로 입금해준다. 회사 측은 손님이 키오스크를 이용할 때 건당 수수료로 2달러가량 받아 수입을 올리는 구조다. 

태생부터 비트코인은 마리화나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성장한 가상화폐이기도 하다. 비트코인이 세상에 알려진 대표적인 계기가 2013년 10월 ‘마약시장의 아마존’ ‘검은 이베이’로 불리던 ‘실크로드(Silk Road)’ 운영자 로스울브리히트가 붙잡힌 사건이었다. 마리화나, 헤로인, 코카인 등 금지 약물을 익명의 판매자와 익명의 구매자가 거래하는 장터로 급성장한 실크로드에서 사용된 가상화폐가 비트코인이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지금도 일정 한도에서는 추적이 불가능하다. 어느 비트코인 주소에서 특정 비트코인 주소로 일정 금액의 비트코인이 이동하는 거래 기록은 모두에게 공개되지만 그 주소를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해당 비트코인을 가상화폐거래소에서 팔아 그 돈을 은행 계좌로 입금하는 경우엔 추적이 가능하지만 말이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포틀랜드가 있는 오리건, 시애틀이 있는 워싱턴, 콜로라도, 네바다, 알래스카 등 마리화나를 전면 합법화하는 주는 늘고 있고, 현금 장사 쟁점은 더욱 뜨거워지는 상황이다. 비트코인은 마리화나 산업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킬 에너지원이다.




신동아 201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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