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호

정재민의 리걸 에세이

구속영장, 발부와 기각 사이

  • 입력2017-12-2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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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쌀한 초겨울 오전이었다. 나는 휴가를 내고 구치소를 향해 차를 몰았다. 가까운 지인을 면회하기 위해서였다. 내비게이션에는 구치소 이름이 나오지 않아 인근의 다른 건물을 입력해야 했다. 주차를 하고 걸어 올라가니 긴 계단 위에 터 잡은 커다란 단층 건물이 민원실이라는 팻말을 붙이고 있었다. 그 계단 위에서 지인의 모친과 처를 만났다. 모친은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셨다. 나는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해 말없이 허리를 더 숙여 인사할 뿐이었다. 점잖고 품위 있는 어른이었다. 자식이 옥중에 있는 와중에도 예를 갖춰 맞아주시니 더 안타까웠다. 

    민원실 안으로 들어가니 구청 민원실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얼굴에 근심이 서린 사람들이 접견 신청서를 써 들고 창구 앞 직원들에게 제시하고 있었다. 직원은 나에게 기자가 아닌지 거듭 확인하고는 우리에게 면회번호를 내줬다. 더 깊숙한 곳에 있는 대기실로 들어갔더니 이번에는 대형병원의 로비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일렬로 놓인 긴 의자들 앞에 대형 모니터가 놓여 있었고 모니터 화면에는 면회실 번호 밑에 면회자 번호가 시간대별로 나와 있었다. 

    면회시간이 되자 우리는 소지품 검사를 받고 면회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병원 진찰실 같은 문들 앞에 작은 대기 의자가 놓여 있었다. 우리는 그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다가 앞사람들이 나오자마자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영화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좁은, 고시원 방만 한 공간이었다. 철창 쳐진 유리벽 너머에 지인이 앉아 있었다. 가슴에 커다란 숫자가 적힌 옥색 수의를 입고 있었다. 뽀얀 피부에는 까만 수염이 까끌까끌 자라나 있었다. 그 옆에는 제복을 입은 교도관이 작은 책상 앞에 앉아 사무적 표정으로 우리의 대화를 메모하고 있었다.

    면회실 풍경

    주어진 시간은 단 10분. 유리벽 아래의 정사각형 전자시계가 10, 9, 8, 7…로 분 단위로 숫자를 줄여가며 시간을 재촉했다. 그 때문에 그의 말은 평소보다 빨랐다. 말이 느린 나도 스피드퀴즈를 하듯 말을 서두르게 됐다. 유리벽이 두터워서 서로의 목소리가 마이크와 스피커를 통해서만 전해졌다. 그는 애써 밝은 표정으로 괜찮다, 잘 지낸다고 말했지만 모친과 처가 걱정할까봐 배려하는 것 같았다. 그는 처에게 어린 딸에게는 아버지가 어디 갔다고 말했느냐고 물었고, 처는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 먼 나라에 출장 갔다고 둘러댔다고 답했다. 그가 멋쩍게 웃으면서 구치소 안에서 달리기를 할 때에는 눈을 감고 예전에 가족과 함께 갔던 스위스라고 상상한다고 말했을 때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종종 함께 식사도 하고 술도 한잔씩 하던 사이였다. 그때는 넓은 공간에서도 함께 있었다. 그런데 이 좁은 공간에서 창살로, 유리벽으로, 수의로, 엿듣는 교도관으로, 10분의 시간으로, 재촉하는 전자시계로, 마이크와 스피커로 서로 격리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영화세트장 안에 잠시 걸어들어온 것만 같았다. 



    그는 좋은 집안에서 자라나 번듯한 일을 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성실하고 유능한 데다 성품도 유순하고 따뜻했다. 불법과 불의와 위선이 싫다고 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직장도, 가족도, 안정된 미래도 잃어버리고 수의를 입고 감옥에 갇힌 것이었다. 본인은 여전히 결백을 주장했고 그만큼 억울하고 당혹스러워했다.
    온화한 표정으로 아들 말을 듣고 있던 모친은 면회실에서 나오자마자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아들이 할 말이 많은 거 같아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참고 듣기만 했다고 하셨다. 모친 말로는 애 아버지는 오늘 아침에 식사를 하다가도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아버지는 오고 싶어도 주중에 면회한 사람은 주말에 못 오기에 주말까지 기다린다고 하셨다. 

    구치소에서 돌아온 뒤에도 마음이 무거웠다. 11년 판사로 재직하는 동안 구속영장에 무수히 서명했지만 그때는 구속의 무서움을 이 정도로 체감하지 못했다. 판사 시절에는 구치소에 가본 적도 없다. 판검사는 구속되는 과정을 실제로 체험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나 혼자 실행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구속의 필요성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온라인 여론조작 활동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구속적부심사에서 석방결정을 받고 2017년 11월 22일 오후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나고 있다. 서울지방법원 영장전담판사의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구속된 지 11일 만에 같은 법원 형사합의부에서 석방결정을 내려 논란을 낳았다.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온라인 여론조작 활동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구속적부심사에서 석방결정을 받고 2017년 11월 22일 오후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나고 있다. 서울지방법원 영장전담판사의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구속된 지 11일 만에 같은 법원 형사합의부에서 석방결정을 내려 논란을 낳았다.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그렇다고 해서 과거에 구속을 가볍게 여겼던 것은 아니다. 그때도 구속이 피의자에게 큰 타격을 주므로 영장발부를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구속되면 구속 기간에 피의자가 직장을 다닐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석방된 이후에도 복직이 요원해진다. 사업을 하고 있었다면 부도나기 십상이다. 피구속자의 어린아이들이나 봉양하던 노부모도 한순간에 보호받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자유롭게 지내다가 몸이 좁은 공간에 갇히고 통제된 생활을 하게 되면 그 자체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수사받던 사람들 중에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도 구속이 주는 고통이 큰 몫을 차지한다. 이런 말들을 진작부터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으나 막상 지인이 구속되는 것을 보니 구속의 무거움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럼에도 구속을 허용하는 것은 수사의 실효성을 위해서다. 수사(搜査)란 범죄혐의를 조사하고, 범인을 잡고, 증거를 수집하는 활동을 말한다. 수사 도중에 피의자가 도망을 가버리거나 증거를 인멸해버리면 수사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러한 우려가 있을 때 일정한 요건하에서 피의자의 구속을 허용하는 것이다. 

    문제는 재판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도 전에 구속이 집행된다는 데 있다. 유죄판결이 난 뒤에 형을 집행해도 오판으로 인해 억울한 사람들이 나오는데 재판을 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구속하면 억울한 사람이 얼마나 더 많이 나오겠는가. 아무리 수사상 필요성이 크다고 해도 억울한 사람들이 구속으로 인해 인생이 망가지는 일을 쉽게 허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법은 크게 두 가지 장치를 두고 있다. 하나는 영장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불구속수사의 원칙이다. 헌법은 체포, 구속, 압수수색을 할 때에는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벌과 구속의 권한이라는 무시무시한 칼을 쥐고 있는 수사기관이 스스로 그 권한 행사를 절제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수사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특별히 악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사람과 조직의 본래적 성향이기 때문이다. 

    칼을 휘두르는 사람이 냉정해지기는 어렵다. 일단 칼집에서 칼을 빼 들고 나면 아무것도 자르지 않고 다시 칼집에 꽂는 것도 민망해진다. 그러다 보면 무리해서 칼을 휘두르게 될 때가 있다. 그러므로 칼을 빼 든 다음에도 칼을 휘둘러도 되는지를 판사에게 물어보게 한 것이다. 판사 시절 검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더러 듣곤 했다.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은 몰라도 검사가 직접 수사해서 청구하는 구속영장만큼은 되도록 기각하지 말아달라고. 그러나 위와 같은 영장주의의 취지를 생각해보면 오히려 검사가 직접 수사하면서 청구한 영장을 더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속 판단이 엇갈리는 이유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017년 12월 14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세 번째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그는 다음 날인 15일 새벽 결국 구속됐다.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017년 12월 14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세 번째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그는 다음 날인 15일 새벽 결국 구속됐다.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형사소송법은 불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예외적인 경우에만 구속을 허용한다. 구속 요건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피고인이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다. 둘째, 주거부정/증거인멸 우려/도망 우려 중 하나 이상의 사유가 있을 때다. 다만 판사가 이를 판단할 때에는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나 중요 참고인을 위해할 우려 등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요건이 충족되었을 때 흔히 “범죄가 소명된다”고 하고, 충족되지 못했을 때 “소명이 부족하다”고도 한다. ‘소명’은 ‘입증’보다는 낮은 정도의 증명을 말한다. 형사소송에서 범죄를 ‘입증’하려면 피고인이 범죄자가 아닐 수 있는 모든 합리적 의심을 불식할 정도로 입증해야 한다. 민사소송에 비해서 요구되는 입증의 정도가 훨씬 높다. 그러나 아직 재판이 열리지도 않았고, 수사가 완료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이 정도의 입증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따라서 법은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를 소명하는 것으로 영장을 발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범죄의 소명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영장이 발부되는 것은 아니다. 그 경우에도 주거부정/증거인멸 우려/도망 우려 중 하나 이상의 사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를 판단하는 데에는 판사 개개인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요건 자체가 ‘우려’다. 엄격히 따지자면 ‘우려’가 없는 사건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우려’를 쉽게 인정하면 불구속수사의 원칙이 허물어진다. 

    우려의 대상이라는 것도 죄다 미래의 일이다. 어떤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지, 도망갈지를 예측하는 것은 어찌 보면 점술사가 하는 일과 닮았다. 피의자 본인도 자신이 앞으로 증거를 인멸할지, 도망갈지 마음의 갈피를 못 잡는 경우가 허다한데 판사가 어떻게 정확히 예측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판사마다 판단 차이가 크다. 검찰이 법원의 영장발부 기준이 자의적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마찬가지 이유로 경찰도 검찰의 영장청구 기준이 자의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래서 법원이나 검찰은 실무상 어떤 사정이 있으면 구속사유가 있다고 보는 관행을 형성하기도 한다. 가령 피의자가 범죄를 자백하면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거나 반대로 범죄혐의를 다투고 있으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범죄혐의를 논리적으로 다투면서도 증거를 인멸하지 않을 사람도 상당히 많다. 

    만약 내가 억울하게 혐의자로 몰리면 그렇게 할 것이다. 혐의를 벗어나려면 여기저기 다니면서 법률 조언도 얻고 알리바이를 내세울 증거도 내 나름대로 수집해야 하는데 다툰다고 구속하면 억울함을 풀 수 있는 길이 요원해진다. 이에 피의자가 다투더라도 판사가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라는 문구를 쓰면서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러나 사견으로는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는 법률에 나오는 영장 요건은 아니므로 판사로서는 그저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고 판단하면 족하다고 본다. 

    최근 검찰은 “중대범죄를 범해 무거운 처벌이 예상되면 증거인멸과 도주 염려가 있다고 일응 간주”되고 다시 피의자 개인별로 구속사유를 따지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는 과거 상당수의 검사나 판사가 실무상 일응 적용하던 구속 기준의 하나로서 일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피의자가 중대범죄를 범했다는 것을 재판을 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단정할 수 없고, 중한 형이 예상된다고 대다수 사람이 증거인멸 또는 도망을 시도하는지도 의문이다. 구속 기준을 피의자 개개인의 사정에 비추어 개별적으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면 판사가 영장실질심사를 할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도 법과 재판의 존재 의의는 우리 사회가 사람을 함부로 ‘간주’하지 않는 데 있다.

    정재민


    ● 서울대 법대 졸업,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사법연수원 수료(32기)
    ● 前 판사, 舊유고유엔국제 형사재판소(ICTY) 재판연구관, 외교부 영토법률자문관
    ● 세계문학상, 매일신문 포항국제동해문학상 수상
    ● 저서 : ‘보헤미안랩소디’ ‘국제법과 함께 읽는 독도현대사’ ‘소설 이사부’ ‘독도 인 더 헤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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