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호

인터뷰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운전석에 제대로 앉은 文 신중하되 속도 내라”

  • 입력2018-02-0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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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압박과 제재 실패…새로운 협상 카드 시도해야

    • 한미연합훈련 연기 먼저 제의… 북의 대화 공간 열어줘

    • 김정은, 국가의 생존방식으로 핵과 미사일에 집착

    • 이전 정부 제기했던 북한 인권 문제 일정하게 계승 필요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차갑게 얼어붙은 남북관계가 2018년 벽두부터 해빙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1월 1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대화 의지를 밝히자 우리 정부는 발 빠르게 고위급회담을 제의했고, 남북 연락채널이 다시 열렸다. 1월 9일엔 판문점에서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렸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빠른 속도로 남북관계가 전환하고 있다. 

    북한이 평창올림픽 참여를 선언하고 우리 정부의 고위급회담 제의를 사흘 만에 받아들이는 등 신속하고 적극적인 대화 의지를 보인 배경은 무엇일까. 남북 대화 정국에서 우리 정부는 대북 컨트롤 능력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을까.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냈고, 통일외교안보 정책 분야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멘토’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의 설명을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1월 5일 세종연구소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기계적 일정’ ‘정치적 일정’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나선 것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그간의 꾸준한 대화 제의에 대한 응답”이라고 해석했으나, 북한이 유엔 제재와 압박에 몰려 어쩔 수 없이 대화에 나온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북한은 이미 자신들이 핵무력을 완성했다고 선언한 상태입니다. 그 주장에 따르면 북한은 핵기술 개발에 있어 ‘기계적 일정’을 끝냈기 때문에 이제 ‘정치적 일정’에 따라 다음 단계로 나아갈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제재와 압박에 ‘굴복’해서 대화에 나선 게 아니라는 얘기지요. 그보다는 우리 정부의 역할이 더 크다고 봐야 합니다. 문 대통령은 그간 끊임없이 대화 의지를 밝혔어요. 3불 원칙 선언, 전쟁은 절대 불용한다는 강력한 의지 표명, 한중정상회담 당시 평화 4원칙 합의 등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 정부의 반전, 평화 입장을 분명히 보여줬습니다. 이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문재인 정부가 보여준 행보의 결과라는 것인가요. 



    “그렇죠. 특히 주목할 것이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과 합의를 거치기도 전에 먼저 한미연합군사훈련 연기를 제안했다는 사실입니다. 신중한 성품을 지닌 대통령으로서는 대단한 결단이었죠. 이렇게 한국 정부가 지난해 말부터 미국의 ‘전쟁 불가피론’과는 다른 자신만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냈기 때문에 북한이 움직인 것입니다. 만일 우리 정부가 말로만 ‘남북 대화 창은 열려 있다’고 하면서 미국의 호전적 발언에 침묵해왔다면 김정은은 이 같은 제의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국과 대화해봐야 얻을 게 없다’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미국과 합의 전 연합훈련 연기를 제의하고 중국에 3불 정책을 약속한 정부 모습에 ‘앞으로 한미 공조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우리로서는 군사훈련 연기를 서둘러 공표해야만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올림픽 개최는 다가오는데, 그에 맞춰 북한을 올림픽에 참여시키고 한반도의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서는 여건을 조성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미국과의 관계를 걱정하지만,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로 한미군사훈련 연기 합의를 이끌어내지 않았습니까. 이미 한국 정부가 남북 대화에서 이니셔티브를 가졌다는 뜻입니다. 미국과 향후 구체적 사안에 따라 때로 의견 조율의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미국으로부터 남북 대화 지지를 얻어낸 상황에서 미국 내 남북 대화 반대여론이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입니다.”

    남북 대화는 우리에게 이익

    우리 정부가 대화 과정에서 북한에 끌려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없지 않습니다. 

    “남북 대화를 위해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여해야 한다,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대화를 하자고 주장한 것이 문재인 대통령이고, 김정은이 그에 대답을 한 것인데, 이게 어떻게 북한에 끌려가는 것입니까. 다시 말하지만 지금의 대화 국면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우리 정부입니다.” 

    그럼에도 북한이 대화를 제의한 ‘숨은 의도’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정은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일반 사람들도 충분히 짐작하고 염려하는데, 정부가 그걸 과연 모를까요? 다 알고 있습니다. 북한은 올림픽 참여와 남북 대화를 통해 국제사회의 제재를 피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죠. 그런 의도가 ‘불쾌하다’고 우리 정부가 화해를 거부해야 할까요? 그러기엔 대화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게 북한보다 훨씬 많습니다.” 

    우리가 얻을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첫째,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여와 남북 대화를 통해 최근 악화된 한반도 위기 국면을 전환시킬 수 있습니다. 이미 그런 효과를 보고 있고요. 적어도 올림픽 기간까지는 전쟁에 대한 위협이 상당 부분 해소된 것이죠. 둘째, 북한이 참여함으로써 평창올림픽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물론이고 북한이 선수단과 함께 예술단, 고위 대표단을 파견할 경우 세계적 이슈가 될 것입니다. 

    셋째, 우리는 북핵 문제와 별도로 휴전선에서 벌어질 수 있는 무력 충돌을 관리해야 한다는 전통적 안보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은 이런 갈등을 관리할 수 있는 북과의 소통 창구조차 부재했어요. 이제 대화 채널을 열었기 때문에 그만큼 한반도의 우발적 충돌 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위기관리 능력이 생겼습니다. 마지막으로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대화가 원활히 진행되면 이것이 북핵 문제를 풀 수 있는 고리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얻을 것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북한의 의도’를 이유로 대화에 소극적으로 나선다면 우리 손해가 너무 큽니다. 그들의 의도를 아는 만큼, 우리가 전략을 확실히 수립하고 대응해나가면 됩니다.”

    북, 제재 이겨낼 내구성 가져

    이종석 전 장관은 그간 ‘압박과 제재 일변도’ 정책에 한계가 있다고 꾸준히 주장해왔다. ‘원유 공급을 중단하고 해외 송금을 차단하는 등 제재를 가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시각에 회의적이다. 북한의 객관적 실상을 잘못 판단해서 나온 주장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북한은 김정은 체제에서 식량 자급도를 일정 수준까지 높여놓은 상태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가해지더라도 버틸 수 있는 내구성을 이미 상당 수준 갖췄다는 것이다. ‘추우면 추운 대로, 배가 고프면 배가 고픈 대로’ 견딜 준비가 되어 있다. 제재가 ‘무용’할 뿐 아니라 오히려 불필요한 국지적 갈등을 촉발할 수 있는 스트레스 요인이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국제사회가 압박과 제재를 철회한다고 과연 북한이 핵실험을 중단하고 미사일을 더 이상 발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9년간 우리 정부는 북을 ‘제재’해왔습니다. 미국도 북이 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제재를 계속 강화해왔습니다. 그래서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멈췄나요? 오히려 제재가 강할수록 더 도발했습니다. 제재-도발의 악순환이 반복되었죠. 그렇다면 ‘제재’는 실패한 정책인 것입니다. 실패가 확인되었으면 다른 방법을 시도하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북한이 원하는 것을 제시하며 협상하는 것입니다. 북한이 가장 원하는 것은 바로 체제 유지입니다. 북한에서 볼 때 자신들의 체제 안정을 보장해줄 나라는 바로 미국입니다. 미국이 북한에 ‘체제를 인정하고 공격을 안 할 테니 핵을 포기하라’고 협상 카드를 내밀어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북한이 핵을 포기하리라는 확신은 그 누구도 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시도조차 않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접근이 핵 문제 해결에 새로운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전 장관은 그동안 ‘체제 인정’과 ‘공격 중단’을 약속하는 구체적 실현 방안으로 ‘북미수교’와 ‘미국의 대북 불가침조약’을 제시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1992년 한중수교가 이뤄진 시점입니다. 자신들이 국제적으로 고립되었다고 생각해 위협을 느낀 것입니다. 북한과 미국 간의 수교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수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리비아 카다피는 대량살상무기 포기 대가로 미국과 외교를 수립하기로 합의를 받았음에도 2011년 리비아 민주혁명 때 미국이 주도한 나토군의 공격으로 사망했습니다. 그 몇 달 뒤 집권한 김정은은 북한 헌법에 ‘핵무기 보유’를 등재했습니다. 리비아의 경우를 보고 학습한 결과죠. 수교만으로는 북한을 안심시킬 수 없으니 불가침조약까지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북한과 미국 양자 사이에서만 맺어지는 조약이 아니라, 중국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이 보장해주는 장치가 필요하지요.”

    김정은에 대한 객관적 시각 부족

    이종석 전 장관은 최근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주도권을 확실하게 잡았다고 평가했다.

    이종석 전 장관은 최근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주도권을 확실하게 잡았다고 평가했다.

    이종석 전 장관은 이 대목에서 ‘핵 문제’만 해결한다고 한반도 안보위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국제사회에서는 핵 문제가 뜨거운 감자이지만, 앞서도 지적했듯 우리는 또 다른 위기관리를 해야만 한다. 바로 수십 년째 이어지는 재래식 군사대결이다. 

    “핵 문제로 인한 갈등이 심화되면 휴전선이나 NLL(북방한계선) 같은 ‘약한 고리’가 터진다. 한반도 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 그래서 핵 문제가 고조될수록 핵 관리와 별개로 남북 대화와 휴전선 안전 보장을 위한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문 대통령이 나토 사무총장을 만나 ‘서울과 휴전선은 45㎞도 되지 않아 핵과 장거리미사일이 아닌 재래식 무기에 의해서도 재앙에 직면할 수 있다’고 군사행동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평화적 해법을 강조한 것도 그런 의지의 표현이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대선 후보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들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표지석을 찾았다. 맨 오른쪽이 이종석 전 장관. [동아DB]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대선 후보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들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표지석을 찾았다. 맨 오른쪽이 이종석 전 장관. [동아DB]

    북한과 김정은에 대한 우리의 객관적 시각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자주 하셨습니다. 

    “우리가 북한과 김정은을 적대적 감정으로만 바라보면 북한 체제를 ‘비이성적이고 기괴한 사회’로, 김정은을 ‘광포한 미치광이’로 치부해버리기 십상입니다. 실제 많은 우리 국민이 북한을 오해하고 있기도 하고요. 북한은 절대 독자적으로 형성된 기괴한 체제가 아닙니다. 자신을 둘러싼 외부 환경에 끊임없이 적응하고 길항하며 자신의 체제를 구축했죠. 그들은 무모하지 않습니다. 나름의 계산에 따라 형성되었고, 그런 셈법에 따라 행동하는 체제입니다. 

    김정은의 미사일 도발도 ‘무모한 미친 짓’이 아닙니다. 미국의 적대적 대북 정책에 대응하고 외부 세력의 물리적 개입을 차단함으로써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수단을 확보하고자 치밀한 계산에 따라 이뤄진 것이죠. 그래서 댄 코츠 미 국가정보국장은 ‘김정은은 미치지 않았으며 자신과 국가의 생존방식으로 핵과 미사일에 집착하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그는 제재에 대비해 냉철하게 준비를 해온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지난 정부의 통일 정책 중에 계승하고 지켜나가야 하는 부분도 있을 듯합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북한 인권 정책은 일정하게 계승해도 된다고 봅니다. 인권이라는 화두는 인류 보편적인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남북관계 현실을 고려하되 기본적으로 이전 정부의 정책을 현 정부가 이어가는 게 맞다고 봅니다. 하지만 지난 정부 통일 외교 정책에서의 수많은 시행착오는 꼼꼼히 성찰해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개성공단 폐쇄 과정이 일례입니다. 당시 통일부는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 노동자들에게 지급된 임금이 북핵 개발 비용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이유로 개성공단 폐쇄를 결정했는데, 사실 당시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고 지금까지 그 문제는 투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의문과 의구심을 하나하나 풀어가고 국민의 오해를 해소시키는 게 앞으로 우리 정부가 해나가야 할 과제 중 하나입니다.”

    소극적 대북 정책에 쓴소리도

    이종석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 초기 ‘정부의 소극적인 대북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전쟁 불사론’을 언급할 때 “한국 정부가 나서서 반전 시위라도 해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했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3불 원칙’ 천명과 다자간 협력 노력 등을 평가하며 점차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었지만, 지난해 12월 초 사전 인터뷰 때만 해도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문제 운전수 역할’에 대해 “아직 부족한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로부터 한 달. 그의 평가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현시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에 점수를 매긴다면. 

    “지난 한 달 사이 두 가지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중국과의 회담에서 평화 4원칙과 함께 전쟁 절대 불가를 천명했습니다. 여기서 ‘절대’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그건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거든요. 또 하나는, 앞서 말했듯 한미연합훈련 연기를 먼저 제의해 김정은이 대화 테이블로 나올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이제 우리 정부가 운전석에 제대로 앉았다고 봅니다. 

    물론 북한의 의도를 조심해라, 대화에 신중을 기하라는 우려의 목소리는 귀 기울여 들어야 하지만 조심만 해서는 차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정확한 목적지, 즉 평창올림픽에 북한을 참여시켜 평화적으로 성공시킴으로써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데 일조한다는 목표가 설정되었으니 그 목표를 향해 머뭇거리지 말고 속도를 내야 합니다. 그러다 일정한 계기를 만나면 더 속도를 내야 하고요. 변수가 발생할까 봐 걱정해 일을 만들지 않는 것보다, 변수를 대비하면서 일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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