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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장편소설

둔주곡(遁走曲) 80년대

제1부 / 帝國에 비끼는 노을 | 8화. 조짐 혹은 참사

  • 이문열

둔주곡(遁走曲) 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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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노 부장과 통화를 끝내는 대로 택시를 잡아탄 그가 동대구역 광장에 내렸을 때는 1시 가까울 무렵이었다. 그 무렵 그가 새로 채비한 국산 낚시 세트까지 기대 세운 크고 작은 여행 가방 둘을 내려놓고 아이들과 함께 대합실 입구 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는 흔치 않은 식구들만의 주말 나들이를 쑥스러워하면서도 환하기 그지없는 얼굴이었다. 아이들은 더했다. 둘 다 여름휴가라도 떠나는 것 같은 차림에 큰놈은 챙 넓은 모자에 작은 배낭까지 메고 있었다. 

“어디로 가려고요? 기차역으로 나오라니 얼른 짐작이 가지 않아서….” 

아내가 그러면서 그의 눈치를 살폈다. 질문을 받고 보니 실은 자신도 명확히 정한 데가 없어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밀양으로 한번 가보았으면 해. 크게 변하지 않았다면, 남천강 줄기가 읍내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있으니까 가까이에 며칠 머물 물가가 있을 거야. 아니, 읍내에 숙소 정하고 매일 강가로 나가도 되고.” 

“그것도 좋겠네요. 밀양은 나도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거기 가는 기차 시간은 어떻게 돼요?” 



“경부선 하행(下行)이니까 그리 기다리지 않아야 될걸. 보자….” 

그가 그러면서 맞은편 열차 시간표 아래로 다가가 가까운 하행 열차를 알아보았다. 밀양은 아직 읍이지만 통일호 무궁화호도 서는 곳이라 늘 시간에 쫓기는 그로서는 거의 습관적으로 특급 쪽부터 살폈다. 부산으로 내려가는 특급은 한 시간 넘게 있어야 오고 보급(普急)도 30분은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이거 꽤 기다려야 되겠네. 그럼 특급으로 기차표부터 끊고 어디서 점심이라도 먹을까.” 

그가 그러면서 매표구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보고 있던 시간표 아래쪽으로 이어진 완행열차 시간표가 퍼뜩 눈에 들어왔다. 특급이나 통일호 무궁화호 같은 표시가 없어 좀 전에 지나쳐본 발착 시간표 아래 칸에 15분 뒤 지나가는 보통열차가 있었다. 

“아, 저기 완행이 있었구나, 15분 뒤에 지나가는. 저걸 타자. 점심은 오랜만에 기차 칸 벤토(도시락) 한번 먹어보지 뭐.” 

그가 그렇게 말하자 잠깐 아내의 얼굴에 뭔가 의아해하는 낯빛이 비쳤다 스러졌다. 그러나 까닭을 묻지는 않고 여행 가방에 기대놓은 낚시도구 세트 주머니를 그쪽으로 살그머니 밀었다. 거기 달린 멜빵끈을 받아 쥐며 그가 변명하듯 아내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여기서 밀양까지는 완행이나 급행이나 그게 그거야. 괜히 사람들 눈에 띄는 대합실에 식구대로 몰려 있는 것보다 아무거나 잡히는 대로 기차를 타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 멀리 가버리는 게 좋아.” 

그러자 다시 아내의 얼굴에 반짝, 하듯 의아해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번에는 공연히 다급해진 그에게 그걸 풀어줄 여유가 없었다. 낚시도구 주머니를 어깨에 걸치며 아내를 재촉하듯 말했다. 

“내 얼른 매표구로 뛰어가서 기차표 끊어 올 테니, 어서 아이들 데리고 개찰구 앞으로 가 줄 서 기다려.” 

하지만 결과로 보아서는 해명으로 늑장을 부리지 않은 게 잘한 일이 되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그날따라 매표구와 개찰구가 다 붐벼 그가 허둥대며 기차표를 끊어 개찰구 쪽으로 갔을 때는 아내와 아이들 앞에도 제법 긴 줄이 서 있었다. 플랫폼으로 나가자 그곳도 혼잡하기는 마찬가지, 아이들 손을 잡고 식구대로 한 객차에 몰려 타기도 그리 쉽지 않을 정도였다. 

객차 통로에서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던 그들 네 식구는 기차가 청도역에 도착해서야 겨우 함께 앉을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가방과 짐은 열차 시렁에 얹고, 그사이 심사가 나서 칭얼거리기 시작하는 둘째를 안아 옆자리를 비워주면서 아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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