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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근의 고전환담古傳幻談

평양 사내 이충백傳 식인귀와 함께 걷는 길

  • | 윤채근 단국대 교수

평양 사내 이충백傳 식인귀와 함께 걷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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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귀와의 대작

기녀와 유곽의 풍경을 그린 혜원 신윤복의 ‘유곽쟁웅’. [사진제공 간송미술관]

기녀와 유곽의 풍경을 그린 혜원 신윤복의 ‘유곽쟁웅’. [사진제공 간송미술관]

식인병은 팔도로 퍼져 회복할 수 없을 지경으로 스며들었고 어떤 식인귀들은 권세를 쥐고 인육 대신 다른 걸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전쟁이라도 터진다면 그들은 또 사람을 잡아먹는 악귀들로 돌변할 것이다. 

“충백이. 우리 같은 상것들은 이미 개돼지라서 그 병이 잘 안 옮는 기라. 옮았어도 전쟁 끝나고 다 살해됐다 아이가. 훈련원 자들하고 어영청 관군들이 시체 먹는 것들 모조리 잡아다가 태워버렸다카이. 다 잊그라 마.” 

그렇게 그날 밤 소동은 끝났다. 이후 충백은 지체 높은 식인귀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종묘 너머 시전 쪽으론 얼씬도 하지 않았다. 딱 한 번 실수로 피맛골 창기집에서 잠들었다 식인귀와 마주친 적은 있다. 상대는 창기의 기둥서방인 악소년이었다. 창기를 끼고 발가벗은 채 누워있던 충백은 인기척에 눈을 떠 문 쪽 벽을 바라봤다.

시커먼 그림자가 어둠 속 얼룩처럼 미동 없이 서 있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충백이 태연히 말했다. 

“우리 술 한잔하지?” 



손에 쥔 칼을 내려놓은 악소년이 창기를 깨워 주안상을 차려오게 했다. 호롱불 건너편 악소년의 눈빛에서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충백은 패도를 꺼내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냈다.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 살점을 상대에게 내밀자 살 냄새를 맡은 악소년이 괴로운 표정을 짓다 술만 벌컥대며 마셔댔다. 자신의 살을 우적우적 씹어 먹은 충백이 악소년이 건넨 술사발을 받아 한숨에 들이켰다. 그렇게 밤새 마셔댄 두 사람은 새벽녘에 말없이 헤어졌다. 

1619년 여름 무렵 귀에 거슬리는 소식이 연이어 평양으로부터 도착했다. 박엽이 충백 아비를 옥에 가두고 아들이 나타나지 않으면 물고를 내겠다며 매일 매질한다는 내용이었다. 충백은 즉시 훈련원 친구들을 찾아가 갑옷과 무기를 빌렸다. 패두에게 사실을 고하고 영별식을 치른 그는 지체 없이 삼일 밤낮을 말을 몰아 평양성에 당도했다. 

감영 뜰에서 업무를 지시하던 박엽은 갑작스러운 이충백의 등장에 어안이 벙벙했다. 온몸을 무장한 충백은 제지하는 군졸들을 거꾸러뜨리고 뜰에 들어서서 큰 소리로 외쳤다. 

“나 이충백이 박엽을 보고자 한다. 엽은 나와라.” 

상대를 지그시 노려보던 박엽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군교 김한풍(金漢豐)을 불렀다. 충백의 패기가 마음에 든 박엽은 상대를 살려줄 구실을 만들고자 서북도 최고 싸움꾼 김한풍과 씨름으로 겨룰 것을 명했다. 실낱같지만 아비를 살릴 희망을 본 충백은 바로 갑주를 벗고 김한풍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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