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현지취재 | 평창, 그 후 |

46년째 동계올림픽 자원 활용, 삿포로

“동네 뒷산 내려오듯 스키 타는 곳”

  • | 삿포로=이상훈 동아일보 기자·일본 와세다대 방문학자 January@donga.com

46년째 동계올림픽 자원 활용, 삿포로

3/4

스키점프가 국민 스포츠 된 이유

삿포로올림픽박물관 모의체험관에서 스키점프를 배우고 있는 관광객. [이상훈 동아일보 기자]

삿포로올림픽박물관 모의체험관에서 스키점프를 배우고 있는 관광객. [이상훈 동아일보 기자]

패전 이후 빠른 경제 복구에 나선 일본은 올림픽 개최에 재도전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에 이어 1972년 삿포로 겨울올림픽 개최권을 따냈다. 삿포로 겨울올림픽은 일본에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었다. 삿포로 겨울올림픽은 삿포로를 완전히 탈바꿈시켰다. 시내교통의 중심인 지하철 개통과 지하상가 개관이 올림픽에 맞춰 이뤄졌다. 눈과 혹한의 도시 삿포로에서 지하망 건설은 도시 전체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홋카이도 최초의 지역난방 공급이 시작됐다. 당시의 선수촌은 지금도 ‘올림픽단지’라는 이름의 아파트로 불린다. 전 세계 언론이 모였던 프레스센터는 홋카이도청소년회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당시 일본 전역을 올림픽 열기로 뜨겁게 달군 종목은 단연 스키점프였다. 프랑스에서 열린 직전 겨울올림픽에서 노메달의 수모를 겪은 일본은 안방에서 열린 올림픽에서도 좀처럼 메달을 수확하지 못하며 전전긍긍했다. 애타게 기다리던 메달은 스키점프에서 나왔다. 남자 70m 점프(지금의 노멀힐)에서 가사야 유키오 등 일본팀 3명이 금·은·동메달을 모두 휩쓴 것이다. 동·하계를 통틀어 첫 메달 싹쓸이였다. 

일본 열도가 열광했고 미디어는 이들에게 ‘일장기 비행대(飛行隊)’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의미심장한 닉네임이었다. 공군을 의미하는 ‘비행대’라는 명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살공격으로 악명을 떨친 ‘가미카제 특공대’를 연상시킨다. 군국주의 냄새를 짙게 풍기며 금기시되던 단어가 전 국민적 열광 속에 하늘을 장쾌하게 뻗어나가는 스키점프팀의 별칭으로 쓰인 것이다. 

1998년 나가노 겨울올림픽에서 일본 남자 스키점프 단체팀이 폭설이 내리는 악천후를 뚫고 역전 우승 금메달을 일군 스토리는 평창올림픽이 열리는 지금까지도 일본 주요 TV채널에서 ‘추억의 그 순간’으로 방영된다. 올 초 일본 민영방송 TBS가 선정한 ‘역대 겨울올림픽 영웅’ 1위가 나가노 스키점프팀, 3위가 삿포로 스키점프팀이었다. 

평창과 삿포로를 같은 잣대로 비교할 수는 없다. 연간 적설량 200cm에 인구 4만 3000명의 평창과 연 적설량 600cm에 인구 195만 명의 삿포로는 자연환경과 경제적 배경의 차원이 다르다. 삿포로에서 스키장으로 향하는 관광버스에서는 일본어를 듣기 어렵다. 홋카이도에서 겨울을 나는 파란 눈의 서양 스키어, 겨울을 체험하러 온 중국 및 동남아 관광객 등이 버스와 스키장을 메운다. 일본의 국민 스포츠로 통하는 스키점프는 일본스키연맹이 인증한 A급 대회만 매년 25개가 열린다. 선수가 없어 20년 넘게 한 선수가 국가대표 자리를 지키는 한국과 1000명 이상의 선수가 국가대표 선발 경쟁을 벌이는 일본. 스키점프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3/4
| 삿포로=이상훈 동아일보 기자·일본 와세다대 방문학자 January@donga.com
목록 닫기

46년째 동계올림픽 자원 활용, 삿포로

댓글 창 닫기

2019/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