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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의 역사

근친혼은 강력한 재산 지키기 수단

  • |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chonmyongdo@naver.com

근친혼은 강력한 재산 지키기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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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도 인류의 10%는 사촌과 결혼

영국 화가 조지 헤이터가 그린 빅토리아 여왕 초상화.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빌헬름 2세는 그녀의 외손자다.

영국 화가 조지 헤이터가 그린 빅토리아 여왕 초상화.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빌헬름 2세는 그녀의 외손자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왕실은 결혼을 통해 핏줄이 연결된 경우가 거의 없다. 아득한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백제와 일본 두 나라 왕실이 결혼으로 동맹 관계를 강화했다. 수백 년 뒤 중국의 원나라도 잠시 국제적인 결혼 동맹을 체결했다. 그때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 곧 사위 나라였다. 

하지만 동아시아 각국의 왕실은 자국의 귀족과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귀족들 역시 자국 내에서 배우자를 선택했다. 유럽에 비하면 폐쇄적인 성격이 뚜렷하다. 한마디로 중국, 한국, 일본은 이웃 나라와는 혈연적으로 완전히 단절된 독립국가로 유지됐다. 이 때문에 유럽의 나라들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국 중심적이요, 배타적인 색채가 역력하다. 동아시아 각국은 저마다 고립된 ‘세계’의 중심이었다. 

동아시아 왕실들은 위엄을 높이기 위해 몇 가지 방법을 고안한다. 중국의 명나라 황실은 까다롭고 엄격한 배우자 간택 절차를 마련했다. 일본 왕실은 근친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일왕 히로히토(재위 1926~1989)만 해도 사촌인 나가코와 결혼했다. 

한국의 고대왕국에는 이른바 ‘왕비족’이라는 특수한 가문이 별도로 존재했다. 고구려에서는 절노부가 왕비족으로 특별한 위상을 차지했다. 제나부, 연나부 등으로도 불리던 그들 가운데서 대대로 왕비가 나왔다. 절노부는 왕족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았다. 

고려 후기에는 ‘재상지종(宰相之宗)’이라 불리는 상류 귀족 집단이 있었다. 1308년 충선왕은 왕실과의 혼인이 허락된 15개의 가문을 공포한다. 경주 김씨를 비롯해 여흥 민씨, 평양 조씨, 언양 김씨 등이다. 



이처럼 동아시아 왕실들은 근친혼 또는 국내 최고 귀족들과 통혼하며 왕실의 권력과 부가 지나치게 분산되는 현상을 막고 정치적 안정을 강화하고자 했다. 이런 전략은 때론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때때로 외척의 발호를 낳기도 한다. 그때마다 왕권은 실추했고 왕조의 운명이 흔들렸다. 

유교는 친족 질서를 유독 강조한다. 그래서 유교 국가에서는 사촌 남매가 서로 결혼할 수 없었다. 지구적인 차원에서 보면 과연 어떨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사촌과의 결혼을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한다. 

오늘날 지구상의 모든 부부 가운데 10%가 사촌과 결혼한 사람들이다. 과거에는 더욱 그러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과 그의 남편 앨버트도 사촌 간이었다. 정확히 말해 여왕은 앨버트의 고종사촌누나였다. ‘종의 기원’의 저자 찰스 다윈도 외사촌 누나(에마 웨지우드)와 결혼했다. 다윈은 자신이 근친혼을 했기 때문에 혹시라도 자녀들이 유전병에 걸리지나 않을지 노심초사했다. 고대에도 유전병을 염려해 근친혼을 피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권력과 재산을 온전히 지키려면 유전병 따위를 겁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고대 이집트의 왕가에서는 이복남매끼리도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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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chonmyongd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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