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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근의 고전환담古傳幻談

조선 화가 최북傳

사랑이라면 도톤보리 운하에서

  • | 윤채근 단국대 교수

조선 화가 최북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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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재’의 자화상

이한철의 서명이 들어간 최북의 초상화.

이한철의 서명이 들어간 최북의 초상화.

그날 밤 마쓰시마 유곽의 연회는 새벽까지 이어졌고 도화서 소속 공식 화사 이성린(李聖麟)은 스무 폭이 넘는 그림을 그려 번주(藩主)의 신료들에게 선물했다. 70을 바라보는 오사카의 유명 화가 오오카 순보쿠(大岡春卜)는 화첩을 만들기 위해 이 그림들을 따로 받아 모았는데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애꾸눈의 수행원이 마음에 걸려 이성린에게 물었다. 

“저 말석에 앉은 애꾸눈의 수행원은 누구요? 계속 심통 난 표정으로 날 보는 것 같은데.” 

이성린이 난처한 낯빛으로 대답했다. 

“개인 자격으로 따라온 별화사입니다. 주사가 심해 운하 산책이나 하고 오라 했건만 갑자기 돌아와 저렇게 퍼마시고 있군요.” 

상대에게 흥미를 느낀 오오카는 최북 옆으로 다가가 정중하게 그림을 부탁했다. 이미 만취한 최북은 붓을 멋대로 희롱해 좌석의 인물을 한 명씩 그려나갔다. 기이하게 왜곡된 인물화들을 지긋이 감상하던 오오카는 대나무 하나를 그려 답례했다. 그러자 최북이 해당 화폭에 똑같은 대나무를 하나 더 그려 되돌려주었다. 감탄한 오오카가 미농지(美濃紙)를 잔뜩 가져오게 해 최북 옆에 쌓아두고 계속 술을 권했다. 하나오기에게 한 말과 달리 최북은 끝없이 그림을 그렸고, 그림마다 ‘거기재(居基齋)’라 서명했다. ‘거기 있다’라는 조선말을 이용한 농이었다. 쓰러지기 직전 최북이 외쳤다. 



“오오카 선생. 오늘밤 하나오기를 내게 주시오.” 

그리하여 1748년 4월 18일 새벽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오사카의 오이란 하나오기는 최북과 마쓰시마 유곽에 머물렀다. 중인 출신의 빈한한 화사였지만 도화서에 소속되길 거부하고 자유인으로 머무르려 한 최북은 왜경(倭京) 교토에 이르기 직전 자신을 알아주는 첫 사람을 만났다. 그는 하나오기의 등에 하나오기의 초상을 그려주었다. 그녀가 말했다. 

“제가 볼 수 없는 제 초상이란 과연 뭘까요? 하나오기의 실물이 그리 못났나요?” 

그녀의 등에 물을 끼얹어 그림을 지우고 이번엔 자신의 초상을 그리며 최북이 대답했다. 

“제대로 감상해줄 사람 없는 그림은 쓰레기지. 하나오기 모습은 이미 내 마음속에 있으니까 다른 건 더 필요 없어.” 

“지금은 뭘 그리시나요?” 

“나, 최북.” 

고개를 돌려 최북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하나오기는 화공이 아니라 마음속에 당신을 그릴 수 없어요. 화폭으로 남겨주세요. 부탁입니다.” 

하나오기 등에 입 맞춘 최북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화상을 그려 하나오기에게 선물했다. 그림은 에도로 떠났던 최북이 귀국길에 다시 오사카에 들를 때까지 훌륭하게 표구되어 마쓰시마 유곽 접객실 히치테차야(引手茶屋)에 내걸렸다. 6월 12일 지쿠린지 숙소로 돌아온 최북은 하나오기와 재회해 두 번의 밤을 더 보냈고, 15일 아침 요도우라(淀浦)에 정박해 있던 사신 선단의 판옥선에 올랐다. 대마도에 근접한 항구 아카마세키(赤間關)로 연결되는 긴 내해(內海)를 지나는 동안 그는 하나오기를 추억하며 잠 못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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