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훈 전 시장이 고려대 연구실에서 자신의 저서를 펴들고 있다. 책장 위는 그와 가족을 묘사한 그림들.
“서울의 가장 큰 자산이 한강 같은 자연이죠. 평균 강폭이 1km인 아름다운 이 강을 잘 보존하면서 관광자원으로도 이용해야죠. 환경단체가 한강르네상스를 비난하자 박 시장이 그 분위기를 너무 탔어요. 그러다 중앙정부가 여의도 한강변 등을 관광지로 좀 쓰자고 하니까 마지못해 끌려가는 듯해요. 인천 앞바다에서 여의도로 배가 다니게 뱃길이 돼 있고, 제가 양화대교도 손봤어요. 박 시장은 허락만 하면 되는데 안 해요. 환경단체와 서울시는 밤섬이 훼손돼 안 된다고 하는데, 배가 다닌다고 섬이 망가지나요? 기술력과 예산으로 보완할 수 있어요.”
▼ 수자원공사는 여객선의 사업성이 높다고 하더군요.
“사업성은 갈수록 높아지죠. 서울에 1000만이 넘는 중국 관광객이 들어오잖아요. 지금은 하늘길밖에 없으니 물길도 만들어주자는 거죠. 상하이, 칭다오, 웨이하이에서 배를 타고 서해와 아라뱃길을 지나 여의도 선착장까지 와서 입경(入境) 절차를 밟도록 해줘야 해요. 굉장히 많은 사람이 오갈 테니 그 수혜는 계산이 안 될 정도입니다. 그걸 결사반대하니 답답한 노릇이죠.”
“전임자 일 무턱대고 無化”
오 전 시장에게 내년 총선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지 물어봤다. 그는 서울에서 대중적 인지도가 있다. 공무원연금 등 복지 지출에 의한 국가재정 고갈 논란이 일면서 그가 시장을 포기하면서까지 부르짖은 ‘복지 포퓰리즘 반대’가 선견지명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 내년 총선 때 종로에 출마할 생각이 있는 것으로 들었는데요.
“기본 원칙은 당이 필요로 하는 곳에 가겠다는 겁니다. 야당 분열, 오래 안 갑니다. 연말 되면 정리될 거고요. 지금은 새누리당이 누구를 꽂아도 이길 것 같죠? 천만에요. 그렇다면 긴장해야 하는데. 장수가 있어야 합니다. 권역별로, 서울·경기 이끌 장수, 충청 이끌 장수가 필요해요. 서울·경기는 누가 어떤 얼굴로 선거를 치를 수 있겠습니까. 종로가 옛날보다 정치적 상징성이 약화됐지만 선거방송 하면 어디가 제일 먼저 나오죠?”
▼ 종로.
“그런 상징성이 있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당이 가장 필요로 하는 곳이 종로일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
▼ 서울·경기의 장수로서 상징성 있는 종로에 출마해 수도권 총선을 이끌어보겠다?
“어쨌든 당에 필요한 인물이 돼야 하지 않겠어요? 박근혜 정부 성공을 위해선 과반을 확보해야 합니다. 아니면 대통령은 바로 레임덕이죠. 어디에서 이겨야 과반이 됩니까.”
▼ 의석 수가 많은 수도권.
“정해진 거죠. 서울·경기에서 승리하려면 있는 것 없는 것 다 끌어와 총력을 기울여야 해요. 그 총력전의 와중에 오세훈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뭘까, 그 고민을 안 할 수 없는 거죠.”
▼ 내년 총선 때 수도권에서 박원순 시장의 시정 공과(功過)같은 것을 이슈화할 건가요.
“제 입으로 박 시장에 대해 전체적으로 평가하기는 조심스럽지만, 필요한 정책적 이야기는 좀 해야 되겠죠. 선거를 앞두고 어떻게 안 할 수 있겠어요.”
▼ 복지 포퓰리즘 반대에 시장직을 걸었고 그 일로 결국 물러났는데요. 신념은 변함없더라도 시장직과 연계한 방법론에선 후회하지 않습니까.
“후회합니다. 후임 시장이 들어와….”
▼ 박원순 시장이 오세훈 정책을 없애고 격하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나요.
“아, 그러니까 후임 시장이 누가 들어오든, 박원순 시장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참 안타까운 것이, 수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투자한 사업이 틀린 겁니까. 아니잖아요. 박원순 시장만의 문제는 아니고요. 전임자가 한 일을 무턱대고 무화(無化)하는 것, 정말 국민이 엄중한 시선으로 지켜보면서 심판해야 합니다. 도덕적으로, 실용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아요.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정말 우리 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하고 올바른 길로 가도록 지도하셔야 합니다. 선거를 통해서.”
‘대통령의 몸부림’
오 전 시장은 의원 시절 소장파로 알려졌지만, 이후론 친이명박계로도, 친박근혜계로도 분류되진 않는다.
▼ 박근혜 대통령을 어떻게 봅니까.
“박 대통령이 애국심이 투철하고 신뢰와 원칙을 중시하는 정치인이라는 점은, 그분을 좋아하는 분이건 싫어하는 분이건 동의할 겁니다. 다만 그런 애국심을 정책으로 요령 좋게 녹여내는가 하는 점에 대해선 여러 설(說)이 있을 수 있죠. 대통령도 사람이다보니 실수할 수도 있고 타이밍을 놓칠 수도 있고 비판을 들을 수도 있죠. 그렇지만 그분이 대한민국호(號)의 선장이잖아요. 기운이 펄펄 나서 일할 수 있게 국민이, 여야가 도우면 좋겠어요. 요즘 국정이 탄력을 받고 지지율도 상승해 다행입니다. 박 대통령이 이런 좋은 기운을 잘 모아 좀 늦었지만 하고 싶었던 일을 기술적으로, 정책적으로 성공시켜나가길 바랍니다.”
▼ 박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주셔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대통령의 이런 말을 이해하는지….
“끝까지 장악력과 지도력을 유지하기 위한 5년 단임제 대통령의 몸부림이겠죠. 그런 언어가 다소 투박하고 거부감이 드는 의사소통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정책을 추진할 힘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대통령의 간절한 염원 같은 게 배어 있다고 본다면 꼭 비판받을 일인가 싶어요. 개인에 대한 감정표출로 낮춰서 폄하하니까 그런데, 저분이 왜 저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 시장 재임 시절 권영진 대구시장이 서울시 부시장으로 도운 것으로 압니다. 대구는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기도 한데요. 대구에 대해 어떤 생각이 있습니까.
“대구에 평소 관심과 애정이 많았어요. 권 시장 취임 후 그게 훨씬 높아졌죠. 대구를 위해 고민을 많이 해요. 제 파트너이던 그분이 성공해야 저도 보람이 있으니까요. 현실은, 대구는 위기의 도시입니다. 사람을 끌어 모으는 도시가 발전하는 도시인데, 젊은이가 대구에서 지속적으로 나갑니다. 대구는 이런 추세를 돌려놔야 해요. 서비스, 문화, 관광, 창조산업이 성장동력이 될 수 있어요. 어떤 막연한 이미지가 도시를 매력적으로 만듭니다. 감수성과 세련미를 느낄 수 있게 하면 되죠. 건축가, 디자이너, 음악가, 미술가, 공연예술인, 스포츠 종사자, 매스컴 종사자, 회계사, 컨설턴트, 교육자 같은 분들이 정착하고 싶은 도시로 만들면 대구는 발전합니다. 안 그래도 대구시 공무원들을 상대로 강연 일정이 잡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