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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그리 일레븐! 그 안에 ‘이을용’ 있다”

청춘FC 이을용 감독

  • 이영미 | 스포츠 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

“헝그리 일레븐! 그 안에 ‘이을용’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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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의 ‘러브콜’ 거절

“헝그리 일레븐! 그 안에 ‘이을용’ 있다”
▼ 2002년 월드컵 이후 히딩크 감독이 에인트호번으로 오라고 제의한 적 있다면서요.

“맞아요. (이)영표나 (박)지성이가 가기 전에 제가 가장 먼저 러브콜을 받았어요. 그런데 테스트를 받고 입단하라는 말에 테스트 받고 가진 않겠다며 협상을 거부했죠. 그 후 피스컵 때인가? 에인트호번을 이끌고 히딩크 감독님이 다시 방한했는데 그때 하얏트호텔로 저를 부르시더라고요. 두 번째 러브콜이었죠. 그때는 에이전트 회사에서 거절했어요. 그쪽에서 제시한 협상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봐요. 후회요? 에이, 그런 거 없어요. 영표와 지성이가 가서 잘했잖아요.”

▼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후 은퇴를 발표했을 때 주위에선 너무 이른 거 아니냐는 의견이 분분했어요. 대표팀에서도 ‘선수 이을용’을 필요로 했고.

“적당한 타이밍에 결정을 잘했다고 생각해요. 대표팀에서 나온 이후 단 한 번도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으니까요. 사실 당시 운재 형도 있었고, 남일이, 정환이가 모두 남았기 때문에 제 은퇴가 빠르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던 것 같아요. 내가 다들 같이 은퇴하자고 얘기했거든요. 그런데 동참하지 않더라고요(웃음). 결국 다른 친구들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이후 자연스럽게 물러날 수밖에 없었죠. 제가 은퇴를 서두른 가장 큰 이유는 대표팀에서 더 이상 제가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독일 월드컵에서 제대로 활약하지 못한 탓도 컸지만, 남이 아쉬워할 때 물러나는 게 옳다고 본 거죠.”



2002년 월드컵을 끝내고 이을용은 터키 트라브존스포르로 이적했다. 터키에서 성공적인 활동을 이어간 그는 2006년 독일 월드컵 직후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눈앞에 뒀지만 월드컵에서의 부진으로 큰 기회가 사라지는 아픔을 맛봤다.

▼ 2006년 독일 월드컵은 회한이 많은 대회일 것 같아요. 본선에서 뛸 기회가 많지 않았으니까요.

“이적 문제와 관련해선 속상했죠. 월드컵 전까지만 해도 사인만 하면 될 만큼 완벽한 상태로 계약이 진행됐거든요. 기왕이면 월드컵 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그다음 계약해도 늦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영국 쪽 에이전트들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런데 월드컵에서 좋은 모습을 못 보여준 까닭에 입단 조건이 큰 폭으로 수정됐어요. 이전 조건과 심하게 차이가 나니까 결정을 못하겠더라고요. 굳이 이런 조건을 받아들이면서까지 그곳으로 가야 하나 하는 고민 끝에 포기한 겁니다.”

소원대로 고향 팀서 은퇴

▼ 프리미어리그행이 결렬됐지만 다시 터키로 돌아갈 수 있었잖아요. 트라브존스포르에선 재계약을 원했던 것으로 아는데….

“터키뿐만 아니라 다른 리그에서도 제안이 들어왔어요. 며칠 고민했는데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더라고요. 때마침 FC서울에서 저를 간절히 원했어요. 에이전트까지 나서서 K리그 복귀를 만류했지만 고집을 피웠습니다.”

이을용은 2002년 7월 트라브존스포르에 입단했다가 1년 만에 FC서울로 복귀했고, 이후 또 1년 만에 다시 터키로 이적했다가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치렀다.

▼ 2009년 강원FC 창단 멤버로 참여했죠.

“고향 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고향 팀에서 뛰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했고요. 서른여섯의 나이에 소원대로 고향 팀에서 은퇴식을 치렀습니다. 현역에서 은퇴할 때도 대표팀에서 은퇴할 때처럼 주위의 만류가 엄청났습니다. 제 생각은 하나였어요. 미련이 남았을 때 끝내자는 거였습니다. 체력이 남아 있을 때, 더 뛰고 싶은 욕심이 생길 때 접는 게 옳다고 판단했습니다. 선수 생명을 1년 더 연장한다고 축구 인생이 얼마나 달라지겠어요. 선수 생활보다 그다음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본 거예요.”

▼ 은퇴 후 지도자 연수를 위해 유럽과 터키를 돌며 축구 공부를 했다고 들었어요.

“2011년 10월에 은퇴했고, 이듬해 3월부터 독일 축구를 둘러봤어요. 독일에서 손흥민·구자철, 영국에선 박지성 등 많은 후배를 만났습니다. 경기도 많이 봤고. 그 후 터키로 들어가 페네르바체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았어요. 페네르바체를 이끄는 에르순 야날 감독(전 터키 국가대표팀 감독)과의 인연이 그곳으로 저를 이끈 거죠.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큰 도움이 됐어요. 백수이면서 백수가 아닌 것처럼 생활했는데, 언제 또 그렇게 축구 경기만 보면서 유럽을 활보할 수 있을까 싶어요.”

터키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이을용은 강원FC 스카우터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했다. 2년여 동안 선수들을 가르치다 그만두고선 잠시 쉬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청주대의 반란

▼ 프로 리그에만 있던 사람이 대학으로 눈을 돌린 배경이 궁금해요. 청주대 코치로 간다는 얘기를 듣고 긴가민가했거든요. 그것도 감독이 아닌 코치로.

“어차피 지도자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이상, 프로에만 머물기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앞으로의 축구 인생에 더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어요. 그전엔 내 것만 하기에 바빴어요. 주위를 돌아볼 여유도 없었고요. 축구인들, 선배 지도자들에 대해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프로’라는 울타리 안에서 편하게 생활했죠.

지금은 대학팀 감독들, 고등학교 감독들과 교류하면서 정보도 주고받고, 아마추어 축구에 대해 많은 걸 배우고 있어요. 청주대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걱정이 많았어요. 그러나 지금은 청주대로 온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정도입니다. 여기 안 왔으면 ‘왕년의 스타 이을용’이란 타이틀에 집착하면서 그렇고 그렇게 살았을 거예요.”

▼ 조민국 감독이 이을용 코치에게 직접 전화했다면서요? 같이 일해보자고. 과거에 인연이 있었나요.

“전혀요. 감독님이 청주대를 맡고 나서 제게 연락하셨을 때 저도 제 귀를 의심했다니까(웃음). ‘왜 나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러나 고민은 잠깐만 했어요. 경험 많은 감독님 밑에서 뭐라도 배워보자는 생각에 곧바로 부탁을 받아들였습니다. 감독님은 제게 많은 역할을 부여하셨어요. 큰 그림만 그려주시고 대부분은 제가 선수들을 이끌어나가길 바라세요. 그게 힘도 되고 부담도 되더라고요.”

청주대는 올해 1월 조민국 감독과 이을용 코치가 팀을 맡은 후 U리그에서 8전 전승을 내달렸고, 대학연맹전에서도 파란을 일으키며 승승장구했다. 비록 8강에서 그 기세가 꺾였지만, 무명이나 다름없던 지방 팀의 반란은 축구 관계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 짧은 시간 동안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선수들을 변화시킨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어떻게 해서 그게 가능했을까요.

“대학팀은 처음이라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어요. 조민국 감독님의 도움이 컸죠. 감독님은 고려대와 실업팀, 그리고 프로팀까지 경험한 베테랑이잖아요. U리그 대회를 준비하면서 일대일 맞춤형 지도에 들어갔습니다. 선수들과 개별 미팅을 통해 장단점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해결 방안을 제시한 후 내가 제시한 해법이 그라운드에서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끊임없는 잔소리와 격려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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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 스포츠 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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