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노래가 있는 풍경

뭍 그리던 섬처녀 가슴 짙푸르다 못해 검게 탔다

이미자 ‘흑산도 아가씨’

  • 글·김동률 |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 yule21@empas.com 사진·석재현 | 대구미래대 교수, 사진작가 | 동아일보

뭍 그리던 섬처녀 가슴 짙푸르다 못해 검게 탔다

3/3
初秋 陽光의 멜랑콜리

앞서 언급한 노래 탄생의 결정적 모태가 된 심리초교는 처참하다. 저마다의 색동 꿈을 가지고 서울로 수학여행을 떠난 그 시절의 초등학교는 이제 폐허에 가깝다. 운동장의 철봉은 녹슬다 못해 아예 무너져 내렸고, 바닥엔 망초, 개망초, 벌개미취, 산국, 쑥부쟁이가 가득하다. 대낮에도 귀신이 나올 것만 같은 황폐한 교실들은 닭장으로 변했고, 토종닭 수십여 마리가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에 깃을 다듬고 있다. 그 한쪽 귀퉁이 낡은 벽면에 무슨 시 구절 같은 것이 새겨져 있다.

‘끝없는 푸른 하늘 지붕을 삼고/ 가없는 푸른 바다 울타리 삼아/ 희망의 샛별등대 우러러보며/ 우리는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심리 심리 심리 어린이/ 외딴섬에도 우리들은 자란다.’

아, 아득한 과거가 돼버린 이 학교의 교가다. ‘외딴섬에도 우리들은 자란다’는 마지막 후렴구가 찾는 이의 마음을 쓰라리게 한다.

섬을 둘러보는 일정은 아쉬움 속에 끝났다. 드론을 이용해 촬영한, 하늘에서 본 섬은 여전히 검다. 떠나는 여객선 선창은 다시 이미자다. 흑산도에선 아이비도, EXID도 들을 수 없다. 노래에서만큼은 시간이 딱 멈춰 있다. 섬 여행은 이미자 노래로 시작해서 이미자 노래로 끝난다. 섬 여행도, 노래도 당연히 빠른 비트는 없고 끊어질 듯 말 듯하다 이어지는, 몸을 휘감는 유장함이 있다.



그 노래 속엔 섬사람들의 슬픔이 배어 있다. 그래서 ‘흑산도 아가씨’를 듣노라면 (낱)잔 소주를 사서 들이켜던 그 시절이 불현듯 떠오른다. 그러나 잠시 깊은 페이소스와 멜랑콜리가 함께하는 노래는 항구를 한 바퀴 휘돌다 잦아들고 여객선은 점차 넘실대는 파도 속으로 사라진다.

아, ‘흑산도 아가씨’를 함께 불러본 사람들은 안다. 이 노래는 중반을 넘어가면 대개 합창으로 바뀐다는 것을. 폭탄주에 취해 졸던 사람도, 손바닥 위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던 사람도 마지막 대목에서는 저마다 목청껏 냅다 따라 지르게 된다.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그 옛날 아득한 육지를 바라보던 흑산도 처녀의 눈은 짙푸르다 못해 검게 타버렸을 것이다.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짧은 가을도 저만치 떠나간다.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 번 만 번 밀려오는데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한없이 외로운 달빛을 안고

흘러온 나그넨가 귀양살인가

애타도록 보고픈 머나먼 그 서울을

그리다가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신동아 2015년 11월호

3/3
글·김동률 |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 yule21@empas.com 사진·석재현 | 대구미래대 교수, 사진작가 | 동아일보
목록 닫기

뭍 그리던 섬처녀 가슴 짙푸르다 못해 검게 탔다

댓글 창 닫기

2021/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